'예민한' 이라는 단어는 < 신경증적, 감각이 섬세한, 예술적 감각이 있는, 생각이 많은, 마음이 여린, 쉽게 우울해지는 > 등등의 속성을 모두 포괄해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MBTI에서 말하는 I, N, F, P 성향과 관련이 깊다. 성격 이론의 주류인 빅5이론에서도 예민한 성격을 설명하는 분류가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서 괄호 안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위 속성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으면 그냥 '예민하다' 라고 퉁쳐서 말하는게 편할 뿐이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사회의 부조리함이나 인간 관계의 허무함, 탐욕에서 비롯된 죄악 등등의 주제를 다뤄왔다. 욕망에 사로잡혀 남과 비교하기 바쁘고, 그러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며 막판에 벌을 받아 후회한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각종 소설, 영화, 드라마의 단골 플롯으로 쓰이고 있다.
헌데 그런 이야기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작가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의 예민한 사람들일 뿐일지 모른다. 교훈적인 이야기와 달리, 세상엔 마음이 탄탄한 사람들이 무척 많다. 욕망에 사로잡혀 돈만 밝히고 남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더 많은 부를 추구하며 살아도 별로 끄떡 없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실제로 현실에서도 부를 쌓고 말년에 후회 없이 잘 살다 간다. 현실이 이야기와 다른 예는 많은데, 살인을 하고 감옥에서 남은 인생을 탕진하면서도 하루하루 만족하고 잘 사는 사람도 많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데 집착하며 살아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져도, 뭐 그런대로 자기 위치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 역시 충분히 많다.
진실한 사랑,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설파하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 그건 작가의 생각이고 ] 현실에서는 사랑 자체에 별 관심이 없거나 조건으로 맺어진 부부 중에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 많다. 적성이나 좋아하는 분야를 포기하고 좀 더 물질적으로 더 나은 길을 선택해 후회 없이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가치관은 다양하며, 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든 스스로 만족을 잘 느끼고 적응하도록 태어났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는 어떤 일이든 디테일하게 마무리를 잘하고 남들이 갖지 못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한들 그런 성격이 본인 스스로 세상을 사는데 있어 썩 장점이 되진 못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가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예민한 성격들은 그다지 인정을 못받아왔으며, 특히 무력으로 통치되어 왔던 사회나 전반적으로 국민들이 가난한 사회에선 특히나 비난 받는 성격이었다.
예민한 성격이란 그저 타고난 성격일 뿐 고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심리학적 근거들이 그동안 꽤 많이 쌓여왔다. 또한 예민한 사람들의 섬세함이 사회 각 분야에서 꽤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다소 자본주의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예민한 성격에 대한 관심도 같이 올라온 듯 하다. 본인이 예민한 성격인 경우 더욱 그럴 것이고. 정신과나 심리 상담소의 주 고객도 어차피 대부분이 예민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역설적으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일수록, 만족하며 잘 살기 위해선 자기 뚝심이 강해야 한다. 예민한 성격은 결코 다수가 아니며, 세상은 예민한 사람들을 위해 잘 맞춰져 있지 않다.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본모습으로 건강히 잘 살기 위해선 다소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한 측면도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또 예민한 사람들이 현실주의적인 성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스스로 골치도 아프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악순환을 한 번쯤 겪곤 한다.
어쩌겠는가. 예민할수록 때론 보통 사람들 이상으로 둔하게 마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이는 것이 숙명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