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중도는 없다는 말이 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보수 혹은 진보, 좌파 혹은 우파로 반드시 갈라지게 되어 있다. 중도는 말이 좋아 중도지 그냥 정치에 썩 관심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이야기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야기 구조로 해석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즉, 내가 원하는 욕망이 있고 - 그 욕망을 방해하는 적대자가 있으며 - 그 적대자를 나의 능력 혹은 누군가의 조력을 받아 물리쳐 - 결국 내 욕망을 채우게 되는 기-승-전-결 흐름을 뜻한다. (크게 보면 3막 구조)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져온 근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현실의 어떤 상황이든 이야기 구조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것에 사람들은 쉽게 몰입한다.
대표적인 예가 스포츠다. 스포츠 응원에 중도는 없다. 한일전에서 한국과 일본 아무나 이겨라! 라고 외치는 사람은 그 날 스포츠 중계 방송을 아예 보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자기가 몰입을 할 수 있는 편이 생기면, 자기가 응원한 팀이 적대자인 상대팀을 이기는 것을 마치 내가 철천지 원수를 이겨 승리를 쟁취하는 이야기 상황처럼 여기게 된다. 스페인 - 러시아 전이라 할지라도 두 나라 중 왠지 모르게 응원하고 싶은 나라가 생긴다면 누구나 경기에 몰입할 수 있다.
정치에 중도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정치적 상황과 지식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고 뭐 그래서가 아니라 - 물론 학자들은 그렇겠지만 - 대부분은 정당 정치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승리하면 마치 적대자 (상대 정당) 를 물리치고 내 욕망이 실현되는 듯한 쾌감을 느낀다. 각 정치 정당들은 사람들의 이같은 심리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래서 언론에 나온 정치인들은 단순화된 캐릭터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 무조건 자기 정당은 옳고 무조건 상대 정당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인물...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현실에서 자기 욕망이 좌절된 사람들이 (극우, 극좌라든지 등등) 정치에 과몰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은 이들은 스포츠 같은 것에도 잘 몰입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욕망을 채우지 못한 이유를 자꾸 외부의 적대자에서 찾고자 하는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반대측 정당, 내가 지지하는 스포츠 팀의 라이벌 팀 때문에 내가 내 욕망을 충분히 채우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거다. 그래서 정치 정당과 스포츠 팀에 과몰입해 그들이 승리하는 모습을 통해 내 욕망도 같이 충족될 수 있다고 쉽게 믿어버린다.
사람들이 몇몇 모인 곳에서 괜히 편갈라 자기 편 외의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사람을 꼭 한 명 이상 찾아볼 수 있는데 - 현실을 이야기처럼 과몰입해서 사는 부류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 자신의 욕망이 크거나 결핍된 욕망이 있어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야기 구조를 현실에서 재현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데, 이 때 어떤 계기로 그의 욕망이 꽉 채워지게 될 경우 그 사람이 모은 파벌은 순식간에 해체될 수 있다. (대부분은 치명적인 매력을 갖춘 연애 상대에게 푹 빠진 경우)
정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면 역시나 중도 입장은 과감히 버리고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스탠스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편갈라서 싸워야 이야기가 성립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