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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치료와 마취

by rextoys

치과에서 환자분들의 충치를 치료할 때 은근히 고민되는 순간이 있다. 충치 치료시 일정 부분 치아를 갈아내야 하는데, 애매하게 넓거나 깊은 충치를 치료할 때가 문제다. 아예 그냥 충치가 확 깊게 파먹었으면 마취를 해버리는데, 마취를 할지 말지 고민되는 딱 그 정도의 크기. 이 시린게 더 고통인지? 마취 주사 맞는게 더 고통인지? 애매한 크기 말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환자마다 이 시린 것과 마취 주사 아픈 것 중 더 잘 견디는 종목(?)이 다르다. 일단 나는 치료 전 '좀 시리겠지만 마취 없이 진행할께요' 라고 밑밥을 슬쩍 깐다. 그럴때 '네 그러시든가' 하고 시큰둥하고 무뚝뚝하게 반응하는 환자분들이 있다. 이 분들은 남자 여자 상관 없이 그냥 치아나 잇몸 통증을 별로 크게 안느끼는 것 같다. 환자분이 통증을 느끼면 술자는 금새 알아챌 수 있는데, 환자분들이 자신도 모르게 가느다랗게 몸을 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무뚝뚝한 환자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한 자세를 유지한다.


그에 반해 이 시린 것에 기겁을 하는 환자분들도 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면 조금 예민하고 꼼꼼한 성격인 경우가 많다. 실은 나 역시 그렇다. 어릴때 충치치료 할 때 치과에서 이 시린 치료 받는걸 죽기보다 싫어해서 무조건 마취를 요구했으니까. 내 성격도 예민 꼼꼼 쪽이다.


한편 시린 건 상관 없으니까 주사는 절대 싫다는 분들도 있다. 이 분들 중 상당수는 별로 시린 것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분들이고, 시리긴 하지만 주사 보다는 참을만 하다는 분들도 꽤 된다. 하여간 주사는 무조건 싫다!라는 느낌이랄까.


충치 치료를 할 때도 이렇게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매 번 느낀다. 같은 자극에도 누구는 아픔을 크게 느끼고, 누구는 신경도 안쓴다. 누구는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오랫동안 속앓이를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심한 욕설을 받아도 무덤덤하게 받아 넘기고 곧 잊어 버린다. 자라온 환경의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기질적인 차이도 그만큼 크다. 예술가나 학자, 기능공처럼 꼼꼼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예민한 성격이 꽤 있고, 사업가나 운동 선수 중 호탕한 성격이 많다. 각자 타고난 바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우리는 꽤 자주 나와 옆의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을 잊고 지낸다. 분명 나와 성격도, 취향도, 생각하는 패턴도, 살아온 환경도 비슷한 친구 혹은 연인이 왜 내가 원하지 않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지 이해를 못하며 화를 낸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비슷해도 끝까지 서로 다르게 타고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다.


각자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열정이 넘칠만큼 좋아하는 것 역시 다르다. 인정하냐, 인정 못하냐 두 가지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상대를 바꿀 수는 없다. 치과 치료가 공포스럽다고 알려져 있고 나 역시 그렇지만, 치과 치료를 그냥 감기약 먹는 것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환자분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걸 알고 나도 놀랬다. 사람들이 그렇게 다른 거다. 하지만 치과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보고 '뭘 그렇게 겁내~아무렇지도 않구만' 하고 핀잔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취를 원하는 환자에게 '에이~ 별로 안아파요. 그냥 할께요' 라고 할 수도 없는 거다.


나와 남의 차이를 인정하면 외로워질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치아와 치아에 연결된 내 신경 남의 신경도 다 제각각으로 생겨먹은 걸 뭐 어쩌겠는가.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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