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가 사라지면

이 세상에서 치과 업종이 아예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치과의사, 치위생사, 치기공사가 모두 사라지고 치과 관련된 모든 지식과 기술이 증발해 버린다면? 

일단 대표적인 치과 질환인 치아 우식과 치주 질환은 유전적인 속성이 강하다. 즉, 부모가 치과 질환이 잘 발생하는 체질이면 자식도 그럴 확률이 높다. 과거에도 타고나길 구강 건강이 좋은 사람은 나이 들어서까지 식사 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물론 과거엔 지금보다 구강 건강에 안좋은 음식들을 많이 안먹었고, 술담배를 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구강 건강과 유전이 관련 깊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치과가 사라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 더 건강한 식습관을 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특히 부모가 치과 질환으로 고생한 사람들일수록 구강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음식에 특히 더 신경을 쓸 것이다. 당 섭취를 줄이고, 술담배도 줄이고, 샐러드를 많이 먹으며 일찍부터 저단백 저지방 저탄수화물 식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치통은 상당히 괴롭다. 아마 직장엔 치통 관련 휴가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치통이 발생하면 몇 일 쉬는 걸로. 문제는 치통을 유발한 치주 감염 등이 점점 악화될 경우다. 치주병이 발생하면 구강내 미생물 생태계가 바뀌고 영양 섭취가 쉽지 않아 몸의 면역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로 인해 전신 질환이 발생하고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구강 질환이 유독 심한 사람은 입에서 냄새도 많이 날 것이고, 연애도 하기 힘들어 자손을 낳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또한 구강 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는 곧, 유전적으로 구강 건강이 취약한 사람들이 도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응적 진화가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몇 세대만 지나면 지금보다 유전적으로 구강 건강이 좋은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날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치아가 많이 상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씹지 못할테니 육류 소비가 줄어들테고, 삶은 야채나 끓인 죽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오히려 좋지 않을까? 육류를 줄이고 부드러운 식사로,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식습관은 성인병 발병율을 낮추는데도 도움이 된다. 오히려 지금보다 건강한 노인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결론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뭐 그리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란 소리다. 이는 암병동에도 적용된다. 암환자를 치료하는 과가 통째로 사라지면, 사람들은 더더욱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소아나 젊은 암 환자들은 자손을 남길 수 없으니 암에 취약한 유전자는 인류 사회에서 점점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고, 노인 암환자들이 일찍 죽으면 고령화 속도도 줄고 증여세가 발생하니 국가 재정도 탄탄해지며 세대간 빈부 격차가 줄어드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싸이코패스적인 생각일 수 있겠으나, 요지는 인간 사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잘 적응하고 살거란 의미다. 참혹한 전쟁이 수없이 많이 발생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잘 살아남아 오늘날에 이르렀다. 자연 재해와 같은 재앙이 발생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고의 기억을 잊고 현실에 잘 적응하고 살아간다. 전쟁, 사고나 재앙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거나 그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사람들의 예방 활동을 늘리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또한 그만큼 그 어떤 조직이나 단체도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조직과 단체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고, 자기들 이익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는 오만함은 인간의 적응력을 무시하는 생각이다. 아무리 중요한 사람도,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는 조직이나 단체도 인간의 적응력 앞에 그 존재 가치를 잃을 수 있다. 이기적으로 움직이는 이해관계 조직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깎아먹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