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때의 일이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그 시절만해도 학교엔 학생주임 담당 선생님이 있었다. 학생주임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르지만. "학주 떴다!" 라고 누가 소리치면 나를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공포에 떨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재빨리 자리에 반듯하게 앉아 숨을 죽이곤 했다.
언젠가부터 "학주 떴다!" 라는 말은 "꽁치 떴다!" 라는 말로 바뀌었다. 학생들이 꽁치라 불리는 선생이 학생 주임을 맡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가느다랗고 V자로 째진 눈, 광대뼈가 보이는 길쭉한 얼굴, 머리의 반이 흰머리, 키가 크고 말랐던 꽁치 선생. 아이들 사이에서 꽁치는 잔인함과 두려움의 대상 그 자체였다. 어떤 학생이 꽁치에게 맞고 기절했다더라, 응급실에 실려갔다더라, 저번 학교에서 선생을 패고 여기로 전근 온 거라더라 등등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 학생들 사이에 떠돌았다.
수업이 끝난후 방과 후 특별학습? 이 있던 날 오후. 특별학습 수업 시간이 시작되었지만 담당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복도로 나가 장난치기 시작했다. 피가 끓어 넘치는 사춘기 중2들을 교실에 몰아넣었으니 어지간히 좀이 쑤셨을까. 나 역시 복도로 슬쩍 나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복도에서 난데없이 싸움이 벌어졌다. 학생 둘이 서로 맞붙어 주먹질을 시작했고, 어느새 주변엔 아이들이 몰려들어 싸움 구경이 벌어졌다. 교실 안에 있던 학생들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싸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 때. 멀리서 "야 이새끼들아! 뭐야!" 라는 소리가 들렸다. 싸움하는 학생 둘을 남기고 다른 아이들이 쏜살같이 교실 안으로 사라졌다. 나 역시 급하게 교실 문으로 들어서는데 다시 한 번 고함 소리가 들렸다. "지금 밖에 있는 새끼들 다 나와!"
재빨리 책상에 앉아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교실 안은 언제 싸움이 있었냐는듯, 고요했다. 보이진 않았지만 싸우던 학생 둘은 복도에 그대로 서 있는듯 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긴박한 순간에도 눈짓으로 대화를 나눴다. '나오라고 하면 어떡하지? 나가야 하나?'
고개를 숙이고 긴장하던 그 때. 밖에서 꽁치가 싸움을 하던 학생들에게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로 와. 대!" 그 순간, 내 안의 불안하던 마음을 호기심이 뚫고 나왔다. 아마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복도를 내다봤다. 복도에서 먼 곳에 자리가 있는 아이들도 일어서서 목을 길게 빼고 바깥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꽁치가 학생 한 명의 볼을 향해 손으로 싸대기를 날리는 순간.
"퍼~억"
그랬다. "짝" "짜~악"이 아니라, "퍼~억" 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거의 2미터를 날아가 쓰러졌다. 분명 손바닥으로 싸대기를 날렸는데 주먹을 맞은 소리가 났고, 학생이 날아갔다. 액션 영화에서도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영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었던 거였구나. 그 장면을 본 아이들은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누구 하나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공포가 반 전체를 지배했다. 그 뒤에 연이은 "퍼~억" 소리와 1초 후에 들린 "꽈당" 소리..아무도 그 광경을 목격하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꽁치의 전설 하나가 더 만들어졌다. 싸대기를 날렸더니 학생이 목이 돌아가며 5미터를 날아갔더라, 공중에서 2회전을 하며 쓰러졌다더라..부풀려진 이야기였지만 만든 학생도, 듣는 학생도 그 말을 전부 믿었다. 아니, 믿고 싶어했다. 다들 '전국 최고로 잔인한 선생'이란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했던 걸까. 꽁치라는 잔인한 선생 캐릭터를 만들어 그를 악의 실체로 만들고 싶어했던 심리였을까.
해가 바뀌고 우리는 모두 학년이 올라갔다. 3월 초,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아침 조회를 하던 날, 가운데 교단에는 교감 선생님을 중심으로 양 쪽으로 선생님들 몇 분이 서 있었다. 교감 선생님은 왼쪽에 있는 선생님들이 새로 오신 선생님이라 소개했고, 오른쪽에 있는 선생님들은 학교를 떠날 선생님들이라고 소개했다. 교감은 그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에 가셔서도 좋은 일이 있기를 다같이 바란다며 한 분씩 어디를 가시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그 줄 끝에는... 꽁치가 있었다.
아이들은 수군댔다. 꽁치 우리 학교 온지 3년 밖에 안되는데 나가는 거라고, 옆에서 누가 말했다. 꽁치 동료 선생 한 명 성추행해서 쫓겨나는 거라고. 성추행당한 선생은 꽁치 보기 싫어서 먼저 가버린 거라고. 아니라고, 또 한 친구가 말했다. 수학 선생이랑 친구인데 수학 선생 패고 나가는 거라고. 수학 선생 입원해서 안나온 거라고.
당시 우리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10km 내에 깡패 소굴로 유명한 D 중학교가 있었다. 이것 역시 확인되지 않았지만, D 중학교는 TV에도 나왔을 정도로 일진과 깡패조직이 드글드글한 곳이다, 라는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이 꽁치 선생님을 호명했다. 꽁치는 그 때까지 뒷짐지고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기 발을 보고 있다 교감 선생님이 호명하자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의 수근거림이 시작됐다. "꽁치 이름이 꽁치가 아니었어?" "꽁치 이름 평범한데?" 교감 선생님은 이후 꽁치가 전근갈 학교 이름을 말했다. "D 중학교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 했을까. "예이~!" "우와아아!!" "오 예!!!" 여기저기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폭력 교사따위, 제대로 일진 학교 가서 학생들에게 한 번 당해보라는 마음에 모두가 하나되어 외쳤다. 교감 선생님은 당황하면서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었고, 멀리 있어 희미하긴 했지만 우리들은 모두 꽁치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정의는 승리했다.
내가 꽁치를 처음 먹은 것은 그 뒤로 한참 지난 후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꽁치는 값싼 생선이라며, 별로 맛도 없는데 뭘 그렇게 싹싹 발라 먹느냐고 말씀하셨다. 가격과 상관 없이 나는 꽁치 구이, 꽁치 김치찌개를 아주 좋아한다. 술집에서 안주로 꽁치 구이를 자주 시켜먹었고, 일정식집에서 나온 꽁치 구이도 싹싹 발라 먹었다.
얼마전 오랜만에 일식집에 가서 정식을 먹는데 꽁치 구이가 나왔다. 젓가락을 대려다 갑자기 꽁치 선생 생각이 났다. 생각해보니까...그 선생, 뭣 때문에 꽁치란 별명이 붙었지?? 그 때도 몰랐는데 여전히 모르겠다. 꽁치 선생 무사히 정년은 마쳤으려나. 지금 시대였으면 바로 신고 당했을 사람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