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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팔자

by 내맘대로 Jul 01. 2023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비트겐슈타인 등 수많은 철학자들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타고난 우울증 환자들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세상과 인간에 대해 끝없이 사유하고 분석했기에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뭣하러? 싶은 것들) 시대를 뛰어넘는 철학적 저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타고난 팔자라는 말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길, 그 중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걷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쓰곤 한다. 남들처럼 대충 살다 가면 되는 걸 꼭 굳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로 보면 어리석은 짓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알고 나면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간단히 말해 왠만한 사람들은 평범하게 사는데서 쾌감 호르몬이 분비되는 뇌를 갖고 있지만, '타고난 팔자'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데서 쾌감을 느끼는 뇌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땅콩이 가득한 세계에 태어난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땅콩을 먹어야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 뇌를 가진 사람들로 진화한다. 땅콩을 좋아하는 뇌를 가진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들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 땅콩에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 태어나면 어떨까? 이 친구는 땅콩 대신 딸기를 먹을 때 쾌감을 느끼는 뇌를 갖고 태어나버렸다. 땅콩이 가득한 세상에서 땅콩 알레르기를 가진 이 사람은 너무나 괴로울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우울증에 빠진다. 도무지 땅콩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을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늘 우울하게 살던 이 친구가 어느 날 이웃 나라에 갔다 딸기밭을 발견한다. 본능적으로 딸기를 허겁지겁 먹고 너무나 큰 쾌감을 느낀다. 이 친구는 결심한다. 딸기 씨를 훔쳐 자기 나라에 심어 키우기로. 그렇게 딸기 씨를 훔치다가.. 그 나라의 경찰에 걸려 수 년간 갖은 고난을 겪게 된다. 어찌되었든 결국 그 딸기 씨를 훔치고 만 이 친구는 자기 나라로 돌아와 땅콩 대신 딸기를 키운다. 사람들은 욕한다. 왜 가만 있는 땅콩을 놔두고 적대국 딸기 씨를 심느냐고. 이 친구는 본국에서도 경찰에 불려가 매국과 스파이 혐의 조사를 받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알고 보면 모두가 다 각자 타고난 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땅콩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모두 뇌 속 쾌감 회로를 자극하는 대로 산다는 점에서 동일한 원리로 삶을 살고 있다. 쾌감 회로의 대상이 다를 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비트겐슈타인 등의 철학자들은 모두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쾌감 회로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었을거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들의 뇌를 형편없이 지루하고 쓸쓸하게 만드는 곳이었을테고, 그러다 세상과 인생을 분석하는데서 보통 사람들은 느끼기 힘든 엄청난 쾌감을 느꼈을거다. 그런 쾌감 자극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철학 연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쾌감 회로를 갖고 있었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우울하게 살았을 것이고....


허무감에서 벗어나는 길, 자기에게 맞는 인생을 사는 것도 뇌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타고난 쾌감 중추를 자극하는 인생을 사는 것과 동일하다. 매 순간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면 인류 역사상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쾌감을 일으키는 뇌 회로 역시 미약하지만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정도의 차이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통 그렇게 서로 큰 차이가 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큰 차이를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위대한 철학자의 예를 든 것은, 사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뇌 회로를 가진 사람들은 적응에 실패하기 쉽다는 사실에 대한 보상적인 예시다. 자연계에서도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제대로 적응 못하고 도태되어 사라진다. 평범한 것, 남과 다르지 않은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큰 이득이다. 땅콩이 풍부한 곳에 태어난, 땅콩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먹고 살 걱정에서 자유롭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굳이 이웃나라로 가서 딸기를 훔쳐오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태어난 이상, 본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잘 살아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자기 뇌의 쾌감 회로를 충분히 자극하는 인생의 길을 찾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 길은 보통 사람들의 인생을 참조해서 알아낼 수 없다. 누구도 몰랐던 전혀 엉뚱한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뇌를 갖고 태어났을 줄 누가 알겠는가. 


허나 그런 길을 찾았다 해도 현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짜여져 있지 않다. 그래서 계속해서 저항을 받고, 주변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정신 승리 외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따로 없을 수도 있다. 방황은 지속되고 주변에선 어이 없다는 식으로 비난하지만, 알고 보면 방황하는 상태가 지금의 현실과 자신의 타고난 성향 사이에서 가장 최적화된 평형 상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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