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SNL 코리아를 비롯해 써클 하우스 등 몇몇 방송에서 'MZ 세대와 꼰대' 를 주제로 한 코너가 방영되었다. 이같은 내용이 방송의 소재로 쓰인 배경에는 기존 세대와 달리 직장에 충성하지 않고 자기 주장이 강한 MZ 세대들의 모습들이 반영되어 있다. 기존 직장 문화에 익숙한 선배 직장인들에게 MZ 세대들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대하기 어려운 후배들이다. 세대 갈등은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문서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하지만, 최근의 MZ 세대들과 직장 선배들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세대 갈등 외의 다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그 다른 원인이란 바로 '아쉬움의 차이' 이다. 선배 세대들은 대한민국이 고도 성장을 이루고 있는 시절에 자라서 직장에 들어간 마지막 세대다. 직장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했을 때 커다란 보상이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할 수 있었던 세대다. 그만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지도 컸다. 누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집을 사는 꿈을 꿀 수 있었다. 그저 자기 직장에서 열심히 일만 하면 그 모든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즉, 선배 세대들은 직장에 아쉬운 게 많았다.
하지만 MZ 세대들은 다르다. 일단 직장에 들어가서 오래 일할 거란 보장 자체가 없다. 선배 세대들의 퇴사 나이는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선배 세대 때와 달리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렇게 받은 돈으로 결혼, 출산, 집 장만을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기 시작했다.물가도 오르고 양육비, 부동산 모두 큰 폭으로 올라 버렸다. 그럼에도 자기 부모들이 어느 정도 재산을 축적해놓은 덕에 뭐하면 부모 도움을 받을 여지도 커졌다. 그래서 현재 직장에 충성을 하거나 열심히 일할 동기가 전혀 없어졌다. 자기 계발? 어차피 일과 관련된 자기 계발은 회사에 돈 벌어다주는데 쓰일 뿐이다. 그 시간에 운동이나 취미,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모임 등 자기 인생을 채우기 위한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러니까 선배 세대와 MZ세대는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경험한 사회도, 인생관도, 현실도, 미래도 판이하게 다르다.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니다. 선배 세대들 역시 MZ 세대들의 인생을 겪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인간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 평등해 보여도 속을 알고보면 불평등한 관계가 많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끊임없이 주고 받으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그 과정에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아쉬운 게 더 많으면, 평등이 깨지고 비대칭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이런 관계가 잠깐의 시간동안만 유지되고 다시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 서로 눈치채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은 서로 비슷한 수준의 아쉬움을 갖고 있는 상태로 관계가 유지된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기에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거나, 불쾌감이 느껴지는 언행을 자주 한다면, 상대는 내게 아쉬운 게 없는 거다.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든 별로 손해볼 것도, 이득될 것도 없다고 느낀다는 의미다. 그런 사람과는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아무리 평등한 관계라도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아쉬운 것이 있어야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연인 사이에서 이런 부분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데, 연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아쉬워해야 관계가 유지되고 서로의 행동을 납득한다. 한 쪽이 더이상 아쉬운 게 없으면 갑자기 상식에 어긋나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나이든 상사가 MZ 직원들을 볼 때 이 부분을 간과하기 쉽다. "왜 쟤들은 열심히 안할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해당 직원들에게 물어봐야 답은 찾을 수 없다. 그냥 MZ 직원들이 이 직장에 별로 아쉬운게 없다고 생각한 순간, 모든 의문이 풀린다. 개인주의가 어떻고 노동자 인권이 어떻고 계약서가 어떻고 근로 환경이 어떻고.. 다 쓸데 없는 말이다. 그냥 아쉬운 게 없는 거다. 직장에도, 상사에게도.
다들 하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은 보통 아쉬울 게 많은 사람들이 한다. 그런데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자라서 점점 더 아쉬울 거 없는 어른들로 성장한다. 책임 질 일도 안만들고, 욕심이나 꿈을 가지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직장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전혀 갖지 않는다.
최근 울산 지역의 고소득 생산직에 한국인 지원자가 없다는 기사가 나왔다. 점점 더 젊은 사람들은 돈보다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돈 그까이꺼 더 많이 벌어봐야 어차피 원하는 집 못 사고 결혼해서 출산 했을때 편하게 못사는 건 똑같다. 뭣하러 지방까지 내려가서 험한 일 하나? 워라밸 좋은 서울 수도권에서 편하게 문화생활 즐기며 사는게 낫지.
지방의 낙후 지역엔 연봉 3억을 줘도 필수의료 의사를 못구한다는 기사가 뜬 적도 있다. 기사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의사들이 돈도 많이 벌면서 배가 불렀구나 싶겠지만..의료 업계도 다른 업계와 다르지 않다. 산업은행 부산으로 이전시킨다고 산업은행 직원들 파업하고 난리에 연금공단 지방으로 내려보냈더니 인재들이 안간다고 난리다. 의료계라고 뭐 다를까?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지방 그 후미진 곳에서 답답한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 치료하며 사는게' 싫은 거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지방 의료 문제는 단순히 돈 좀 더 준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아쉬운 거 없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인건비는 오르는데 사람은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물가는 오르는데 생산과 소비가 확 느는 것은 아니니 점점 사는 것은 팍팍해진다. 그러다보니 직장은 점점 더 안전기지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사람들은 더더욱 직장에 아쉬울 게 없어진다. 부동산 가격은 떨어질 줄 모르고 빈부격차는 심해지는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사람들은 욕구와 욕망도 줄이는 쪽으로 적응을 시작한다. 이런 순환 사이클에 의해 상황은 더더욱 악화된다.
하지만 그만큼 개인은 중요하게 대접받고, 개개인의 인격에 대한 존중심은 높아질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때 과연 전반적으로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할까? 아직은 모른다. 지나봐야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미 아쉬운 거 없는 삶을 맛 본 사회는 그 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뉴노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