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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Jul 11. 2023

타고난 특성을 고칠 수 있다는 착각

한국에서 만연한 희한한 착각이 하나 있다. 바로 타고난 것도 노력이나 교육으로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이다. 그런 착각은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아이 때부터 성인이 되어 노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동성애는 타고나는 성향이다. 진화 생물학적 관점에서, 자녀가 많으면 자녀 개개인에게 자원을 충분히 분배해줄 수 없어 동성애 유전자 변이가 나왔다는 연구들이 있다. 많은 자녀를 출생하는 내력이 있는 집안에 동성애 비율이 높다는 통계적 연구도 있다. 사실상 동성애는 타고나는 성향이라는 것에 학문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한국에선 아직도 동성애를 고쳐야 할 질병 같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공부를 잘하는 능력은 미술이나 음악을 잘하는 것처럼 타고나는 능력이다. 다만 꼭 머리가 좋을 필요는 없고, 끈기와 인내심을 타고나는 것이 공부를 통한 성취에는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생각보다 성인이 된 이후엔 머리가 좋았던 사람들도 공부를 별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머리든 끈기나 인내심 둘 중 하나는 타고나야 한다. 이 둘 모두를 타고나지 않았으면, 그 사람은 일찍부터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걸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오늘도 수많은 한국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세상엔 엄연히 빈부 격차와 그로 인해 생긴 사회적 계층이 있다. 어떤 계층의 집안에서 태어났는가에 따라 개인의 미래가 무척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현실이 사회적으로 합당한가의 논쟁은 별개의 문제다. 계층 별로 인생의 난이도도 무척 크게 차이가 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좀 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친구는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개인의 '노오력' 차이로 치부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다. 물론 개인의 노력으로 미래를 크게 바꿀 여지는 여전히 많지만, 그런 가능성이 개인을 비난하거나 좌절시키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외모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외모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선호되는 특성 중 하나다. 따라서 좋은 외모를 타고난 사람의 인생 난이도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노력으로 극복 가능할까? 외적인 매력을 다른 매력을 키워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당연히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뚜렷하게 있다. 이런 현상을 무턱대고 부정하고 그저 밝고 긍정적인 가능성의 세계에만 머문다고 현실이 달라질까? 타고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빨리 인정하고 다른 삶의 목표를 갖는 것이 짧은 인생 사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좋은 외모는 때로 수십억, 수백억의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그런 수준의 매력을 부러워하며 노력으로 다른 매력을 길러 대항한다고? 수백억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사업체를 일구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일 거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을 빨리 놓는 연습, 이번 인생에서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빨리 포기하는 연습은 짧은 인생 좀 더 현명하게 꾸리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이는 타고난 것을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관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아직 한국 사회는 문화적으로 덜 성숙된 부분이 분명 있다. 개인 입장에서 그런 부분을 충분히 숙지하고 나에게 맞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인도에 가서 살게 된다고 무조건 손으로 밥을 먹을 필요는 없는 것처럼.


이렇게 타고나야 하는 부분을 어릴 때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괴이한 수준의 노력을 기울이면 성인이 되어 좌절하기 쉽다. 그 순간 엉뚱하게도 돈이 문제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더 많은 돈을 벌면 좌절로 인한 결핍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거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타고나지 않은 능력으로 얻지 못한 것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얻지 못한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야 얻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되어 그만큼의 부를 일궈도 얻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낫다.


사람들이 안고 있는 인생의 고민 대부분은, 돈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타고나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 쓸데없는 노력으로 인한 좌절,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 등등이 문제일 뿐이다. 돈만 많이 벌면, 누가 많은 돈을 지원해주면 될 것 같지만, 그냥 착각에 불과하다. 집착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가도록 어릴 때부터 인도해주는 교육이 한국 사회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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