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혁명을 통해 근대 사회가 시작되면서, 사회는 특정한 부류의 인재들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인재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1) 인간적인 감정을 쉽게 억제할 줄 아는 사람
2) 비인간적인 학습량을 견뎌내는 사람
3) 조직을 위해 개인을 버릴 줄 아는 사람
4) 조직을 위해 다른 개개인들을 도구화시킬 줄 아는 사람
5) 조직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
이 조건에 맞는 사람들이 근대 사회의 엘리트로서 자본가의 훌륭한 도구로 쓰여왔고, 그들이 만들어낸 기업-정부 복합체는 국가를 빠른 속도로 발전 시킬 수 있었다. 그런 역사적 경험은 현대에 와서 지금까지도 국가적 인재상에 대한 뚜렷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다음과 같은 사람을 인재라고 부른다:
1) 비인간적인 분량의 비인간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학습 내용을 머리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사람
2)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때에 따라 개개 인간을 도구화 시켜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
3) 자신의 취향이나 타고난 적성보다 사회적 요구에 자신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
근대 사회와 비교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조직에 충성하기' 항목이 사라진 것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직에 대한 충성은 여전히 정부와 기업이 원하는 항목이지만, 먼저 그런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학부모가 된 덕분에 그에 대한 항목은 점점 아무도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인간상은 무엇일까?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사회적 요구에 맞게 싸이코패스로 변할 수 있는지, 얼마나 싸이코패스로서 일을 잘 수행하는지를 자랑한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얼마나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싸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널리 자랑한다. 혹 자기 아이가 옆 집 아이보다 '덜 싸이코패스화'가 될 것 같으면, 어떻게 하면 더더욱 싸이코패스적인 기질을 갖출 수 있을까 고심하며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아무리 인간이 노력해도 싸이코패스적인 기능면에서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기계가 현재 한창 개발되고 있다. 그게 바로 AI 다.
20세기에 이어 21세기까지 전세계는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을 비인간적인 학습을 견디고 습득하며 그에 맞는 출력물을 내놓는 존재로 교육 시킬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AI는 가장 훌륭한 천재 한 명이 평생을 노력해도 습득하지 못할 학습량을 수 초만에 기억하고 절대로 까먹지 않을 뿐 아니라, 학습한 데이터로부터 '창의적인' 출력물을 쉬지 않고 내놓는다. 그리고 그런 AI의 기능은 매 년이 아니라, 매일, 아니 어쩌면 매 분마다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육 현장에선 근대의 인재상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