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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Aug 06. 2023

나이든 후의 삶: 즐거움 반응기의 노화

사람마다 기질적으로 추구하는 욕망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집, 명품, 좋은 자동차 등 물질적인 욕망이 매우 크고, 실제로 그런 것들을 얻을 때 쾌감도 크고 즐거움도 오래 지속된다. 반면 어떤 사람은 비물질적 욕망이 클 수 있는데, 여기엔 명예와 권력, 도덕적 지위 / 지적 성취, 내면의 평화, 폭넓은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즐거움 등등이 있다. 이것은 칼로 무 자르듯 나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뇌과학은 아직 인간의 쾌감/행복을 주관하는 뇌 속 회로에 대해서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머리 속엔 ‘즐거움 반응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즐거움 반응기는 우리의 욕구나 욕망이 채워질 때마다 우리 스스로에게 보상으로 쾌감 / 기쁨 /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 즐거움 반응기는 강렬한 자극을 받을 수록, 즉 강한 쾌락과 즐거움을 느낄수록 점점 둔해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생물학적 항상성의 원리인데, 즐거움 반응기는 기쁨을 주는 대신 심혈관계에 부담이 되는 호르몬을 방출하기 때문에, 자극이 지속되면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즐거움 반응기의 민감도가 약해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부터 강렬한 쾌락에 노출된 사람은 빠르게 삶이 지루해질 수 있다. 즐거움 반응기가 일찍부터 강렬한 자극을 반복적으로 받아 빠르게 둔화되기 때문이다. 둔화된 즐거움 반응기를 건드려 이전과 비슷한 쾌감을 느끼려면 더더욱 큰 자극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찍 성공한 연예인들이나 사업가들 중 이 지루함을 못견디고 마약과 도박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든, 정신적 욕망을 추구하든, 원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얻으면 누구나 이 즐거움 반응기가 둔해진다. 그래서 무엇을 소유하든, 인간은 잠깐동안 기쁘고 행복할 순 있으나, 그 지속기간은 길지 않다. 물론 이것 역시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은 즐거움 반응기가 늘 예민하게 유지되고 또 어떤 사람은 금새 반응기가 둔화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속적인 자극에 반응기가 점차 둔화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즐거움 반응기는 꽤 오랜시간 자극을 받지 않고 있으면 시간은 걸리지만 점점 그 예민함을 회복한다. 그래서 도시에 살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가서 오래 머물다보면 처음에는 지루하지만 시간이 지나 적응하면 오히려 작은 것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몸으로 바뀔 수 있다. 다만 마약 중독자는 이 즐거움 반응기가 비가역적으로 망가지기 때문에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개발도상국들의 예를 들며 우리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본받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는 인간의 행복 회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오랜 시간 조용한 자연 속에서 지루하게 살면, 즉 쾌락적인 자극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면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몸으로 살 수 있다. 부탄을 비롯해 그동안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몇몇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SNS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행복지수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SNS를 통해 접하는 세상의 수많은 자극적인 컨텐츠들로 인해 즐거움 반응기가 빠르게 둔화되기 때문이다. 


최근 어린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아이때부터 스마트폰을 통한 자극적인 컨텐츠에 자주 노출 되면, 아이의 즐거움 반응기가 일찍 둔해져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때 쉽게 무료감을 느끼고 의욕과 열정도 사그라질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이 즐거움 반응기가 생물학적인 쇠퇴를 겪는다. 이는 노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심혈관계가 약해지면서 우리 몸 스스로가 우리를 보호하는 기전이기도 하다. 즐거움 반응기가 젊은 시절과 비슷한 강도로 작동하면 아무래도 교감 흥분적인 호르몬 분비 촉진을 통해 심혈관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시절에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쾌감과 기쁨은 나이들면서는 점점 느끼기 힘들어진다. 


즐거움 반응기는 쇠퇴했지만, 우리의 머리 속엔 젊은 시절에 느꼈던 강렬한 즐거움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를 견디지 못해 좀 더 강한 쾌감을 추구하려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생긴다. 변태적인 유흥에 빠진다든가, 돈과 사치에 더욱 집중하고, 자녀를 자기 멋대로 움직여 대리 만족을 얻는데 전념하고, 남들에게 끝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행동 등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다고 우리가 젊은 시절 느꼈던 만큼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까? 즐거움 반응기도 노화했고, 우리 몸도 스스로를 방어하는 기전이 잘 작동한다면,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이 들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의 태도는, 자기 뇌 속 즐거움 반응기가 점점 예전같지 못하고 쇠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화로 인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피부에도 주름이 생기고, 눈과 소화기관 등의 기능도 떨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이는 나아가 더 큰 자극을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포기하고, 거꾸로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버리고 지루한 생활에 익숙해지는 태도로 이어진다. 젊은 시절에 자신을 기쁘게 했던 물질적 부, 성적 쾌감, 지위나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행복감 등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심심함과 고독을 받아 들이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일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버리는‘ 태도라는 삶의 미학이 생긴다. 나이 들어서 더 많은 자극들로 몸을 감싸기 보다, 오히려 더 몸을 불편하게 하고, 검소하게 살고, 힘든 운동도 하고, 지루함을 견디는 태도를 말한다. 


그렇게 하면 즐거움 반응기가 그나마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예민하게 벼려지지 않을까. 옛 현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은 그러한 삶을 뜻하는 게 아닌 가 싶다. 알고보면 현자들의 말씀은 무슨 '고고한 척'하는 삶을 추구하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즐거움 반응기의 노화에 맞춰 살라는, 지극히 생물학적으로 합리적 삶의 방식을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 귀로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이 들어 자기 재산을 뽐내고, 고급 취미와 물질적 취향을 자랑하고, 자신의 권력이나 영향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과연 그로 인해 정말로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자꾸만 자신의 즐거움 반응기가 둔화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어떻게든 이 반응기를 건드리기 위해 허덕이는 것에 불과할까. 우리가 흔히 '노욕'이라고 표현하는 말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쾌락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 말 역시 풀어서 보면 즐거움 반응기의 쇠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나이 들어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 즉 젊은 시절보다 더 검소하게 살고 열심히 공부하고 힘들게 운동하며 지루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과연 보통의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지루하고 덜 자극적인 일상 덕에 남들보다 즐거움 반응기가 좀 더 예민해져 있어, 그 덕에 소소한 일상에서 더 자주 기쁨을 느끼고 있진 않을까. 자기도 모르게 나이든 후의 삶을 더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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