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섭은 내가 어릴적 티비에서 무척 재밌게 본 개그맨이다. 당시 그의 말빨과 성대모사는 정말 '일품' 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고, '신기'라는 말이 어울렸다. 당시 심현섭의 인기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심현섭이 돈을 쓸어 담을 정도로 많이 번다는 소리도 그 시절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 역시 심현섭이 나오는 프로는 가급적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는데, 심현섭의 표정과 말투 하나 하나에 너무 웃음이 나와서 숨을 못 쉴 정도였던 기억도 난다.
그런 그가 유튜브 '근황 올림픽' 에 나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밝혔을때, 나는 매우 놀랐다. 젊을때 엄청 번 돈으로 어디서 편안하게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밝힌 내용은 매우 의외였기 때문이다.
심현섭의 아버지 심상우는 국회의원이었는데, 아웅산 테러 사건 당시 사망했다. 영화 <헌트>의 배경이 된 사건이었다. 잘나가던 그의 집안이 그 때부터 기울기 시작했고, 어쩌다 그의 어머니는 막대한 빚까지 지게 되었다. 심현섭은 잘나가던 시절 하루 3억 넘게 벌기도 했는데, 그 시절 압구정 아파트 가격이 1.8억이었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하게 벌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번 모든 돈을 어머니 빚 갚는데 썼다. 방송에선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이 순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방송 활동도 안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동안 어머니 병간호를 했다고 한다. 무려 12년간이나..
만약 누군가 옆에서 심현섭의 인생 코치를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어머니가 빚을 다 갚고 나선 어머니 곁을 떠나 자기 인생에 집중할 것이고, 어머니 병간호를 직접 하기 보다 형과 반반씩 간병비를 내서 간병인이 돌보게 하라 지시했을 거다. 들어오는 돈은 착착 재테크를 하고, 똘똘한 아내를 만나 아이 낳고 살도록 지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냥 그게 심현섭이기 때문이다. 그가 번 돈에 비해 많이 모으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어머니의 빚 때문도 있겠지만, 그냥 심현섭이라는 사람은 돈이 모이지 않을 운명이었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다. 인정이 많고, 가슴이 뜨거운 사람, 남을 챙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돈이 붙을지 모르지만 그 돈이 모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그런 삶이 그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이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삶을 모방했다간 틀림없이 언젠가 길을 잃고 만다.
자기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누구나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길을 찾기 힘든 이유는, 주위에서 그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좀 더 현명하고 똑똑한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해야 한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렇게 지적하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적한다. 나를 보는 또 다른 내가 어느새 실체 없는 타인들의 집합체가 되어 나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렇게 너 뜻대로 살지 말고,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길, 좀 더 대단한 사람이 맞다고 간주하는 길을 따라 살라고.
나이 들어 뒤늦게 부유해진 사람들 중에 오만한 사람들이 많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무시하고, 남에게 일부러 피해를 주면서 사과도 안하고, 그저 자기만 옳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그런 행동은 한편으로 비판을 받을지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측은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런 행동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늘 마음이 불편하면서까지 참고, 또 참고, 자기 자존감과 자존심을 억눌러가면서까지 참고 또 참느라 정신이 괴랄해진거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참아왔던 걸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하지만 - 당연하게도 - 그런 행동은 잠깐의 억눌렸던 것에 대한 분풀이가 될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끝없이 외롭게 만들 뿐이다.
내 마음이 더 편해지는 길, 내가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이 누구에게나 있다. 심현섭씨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중간 중간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병을 누가 예측했겠는가) 앞으로도 그는 자기 길대로 살 것이고, 그로 인해 일이 잘 풀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심현섭이 자기와 맞지 않는 방식의 삶을 선택할 것 같진 않다. 그냥 그렇게 자기 모습대로 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