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말하지 않아도 서로 생각과 감정이 통하는 사이가 있다. 가족이나 연인 관계든, 친한 친구 관계든, 이런 사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해서 들어주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도 아닌데,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빙빙 돌려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 생활에서든 사적인 관계에서든 이런 식으로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원하는 걸 직접 표현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타입이다.
첫 째, 욕구 단계가 유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다. 말하지 않아도 부모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젖도 주고 트림도 시켜줬던 유아 시절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뚜렷하게 모르고,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채워주길 바라는 상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이런 사람과의 관계는 나만 축나는 관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둘 째, 책임도 회피하고 대가도 치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 익숙한 타입이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남을 움직여 얻으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 내 입으로 말할 경우, 아무래도 나는 말하는 상대에게 아쉬움을 드러내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이 공개적으로 알려졌을때 내가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경우 그 대가를 내가 치뤄야 한다. 여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이러한 모든 비용을 나를 대신해 뒤집어 쓰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대리인이 있다면 어떨까. 과연 그 대리인에겐 무슨 이득이 있을까?
빙빙 돌려 말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해주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 상대방이 원해서 한 거라고 책임을 전가시키면 그만이다. 많은 경우 법적으로도 내가 아닌 상대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다. 실제로 과거 이런 방식으로 정재계에서 다양한 뇌물이 오갔다. 갑을 관계에서조차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책임은 갑이 져야 하는데 사실상 그 책임을 을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만약 윗사람이 이런 타입의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그 조직에 계속 머물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셋 째, 다른 사람을 도구화시키는데 익숙한 타입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상황을 한 번 가정해 보자. 내가 원하는 것을 빙빙 돌려 말하는데 즉각즉각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걸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럼 과연 그 사람에 대한 존중심이 생길까? 상식적으로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을 그렇게 놔둘까? 내가 위에 있고 상대는 아쉬운게 많은, 내가 부리는 종 정도로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상황이다.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 안하고 돌려 표현해서 아름다운 경우가 물론 있다. 맨 위에 언급했던, 둘 모두 서로 잘 통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는 관계도 있고, 드라마나 영화 등 예술 작품에서의 표현 형식의 경우도 그렇다. 외교 관계나 정치적 경쟁 사이, 사업적인 협상이 필요한 자리에서도 그런 표현 방식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적인 관계에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당하는 사람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금새 눈치 채지만, 여러 아쉬운 점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