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사회에서 예술과 학문이 꽃을 피웠던 이유는, 가톨릭 교회를 비롯해 부유한 귀족들이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했기 때문이었다. 미술, 음악, 철학, 자연과학은 부를 만들어내는 분야가 아니라, 그저 귀족들의 취미 생활일 뿐이었다. 여유 있는 부자집 자제들 혹은 타고난 재능을 보고 후원을 받은 사람들이 시간을 때우고 즐기기 위한 것이 예술과 학문이었다. 교회와 귀족들은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술을 후원하곤 했다.
그렇게 수백년의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근대에 들어와서야 그동안 쌓여온 예술과 학문이 실질적인 부를 일으키는데 기여하기 시작했다. 근대 이전까지 유럽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권에 비해 부의 측면에서 별 볼일이 없었다. 하지만 오랜 축적의 시간 덕분에 근대에 들어와 유럽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앞질러 강국을 세우게 되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의 선조들 역시 그 전통을 이어 받아 예술과 학문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이어 나갔고,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서방 세계가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예술을 이룩 하는데 공헌할 수 있었다. 우리를 비롯해 전세계가 배우는 예술과 학문의 기초가 대부분 서방 세계에서 비롯된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그 분야에 투자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쳐 쑥대밭이 된 한국이 불과 수십년 사이에 지금 수준의 예술과 학문 수준을 일궈낸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다만 그렇게 지적, 문화적 투자의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로 볼 수 있다. 애초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게다가 한국은 냉전 시대 소련과 미국이 부딪히는 완충지대였고, 그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6.25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방력이나 GDP 순위로 1~4위의 국가들이 부딪히는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인접한 북한이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는 대한민국에서 그저 '문화적 풍요'를 누리기 위한 학문과 예술 발전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국토의 70%가 산지인데다 지하자원이나 에너지 자원도 없는 한국은 인적 자원을 제외하고는 부를 일으킬만한 그 어떤 자원도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한국은 인구도 부족해 내수 시장만으로 돌아가기 힘든 곳이고, 오로지 수출을 해야만 에너지와 각종 자원을 수입할 외화를 벌어들이고 경제를 돌릴 수 있는 나라다. 즉, 중간재 수출 구조의 산업 구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제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원천기술과 에너지 자원을 내다 파는 곳은 생산품의 마진을 크게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중간재 상품은 마진을 많이 붙일 수가 없다. 현재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 모두 외국으로부터 원천기술과 에너지 자원을 수입해야 생산할 수 있는 품목들이다. 한국은 필사적으로 당장 돈이 되는 기술, 즉 중간재를 만들어 파는 기술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적은 돈으로 인력을 갈아 넣어 박리 다매 제품을 만들어야 경제 발전을 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국방비는 웬만한 선진국들보다 더 많이 쏟아부어야 북한과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분배 보다는 경제 성장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고, 당장 돈이 되는 것들에 집중해서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언론에서 지식인들이나 정치인, 기업인들이 '한국은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가 없다' 라는 불만을 토로하는데, 벼랑 끝에 서서 생존을 위해 무리를 해야만 했던 한국에서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인문 사회 분야와 같은 분야나, 그닥 돈이 되지 않는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도 이같은 속사정이 있었다.
이제까지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문화 예술 강국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근대 이후 전세계에 식민지 제국을 건설했던 국가들이다. 미국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미국 역시 1차,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었고, 그 후 중동과 남미, 동남아 등에서 끊임없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침략 전쟁을 벌여온 국가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선 그만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전쟁은 리스크가 굉장히 큰 사업이다. 침략받은 국가는 침략하는 국가 군사력의 70% 정도만 군사력을 유지해도 이를 막을 수 있다. 즉 침략하는 국가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돈과 자원, 인력을 쏟아 부어야 할 뿐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손실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침략당한 국가들은 방어하기에 급급했겠지만, 침략국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일으키고 그 결과를 얻는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걸고,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해낸 경험을 보유하게 되었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오늘날에도 문화와 예술, 학문과 같은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걸고 막대한 투자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노하우를 전쟁을 통해 축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세계 학생들이 유학의 길을 떠나는 목적지는 모두 한 때 제국주의 국가들이었던 곳이다.
이런 나라들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며 한국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균형이 맞지 않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기초 학문 같은 분야에 많은 연구비를 투자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선진국들에 비해 절대적인 금액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기술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던 과거에는 그나마 고급 인재를 양성해서 인력을 갈아넣는 것으로 어느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과학 기술 수준이 높아진 현재에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내는 생산성에 한계가 왔다. 연구비에 막대하게 투자되는 자본의 생산성을 적은 자본으로 고급 두뇌를 갈아 넣어 만들어낸 생산성이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미 미국의 몇몇 기업은 웬만한 국가의 GDP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그만큼 많은 연구비를 자체 원천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몇몇 명문대는 한 나라의 대학들에 투자되는 모든 연구비를 합친 수준보다 더 많은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도 어느 순간부터 이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선진국들보다 턱없이 부족한 연구비를 여기저기 투자하거나 당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초 학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이렇다할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언제부턴가 방향을 뚜렷하게 잡은 것 같다. 더이상 실용성이 떨어지는 분야에 막연히 긴 안목을 갖고 투자하기 보다는, 그냥 원래 해왔던 대로 몇몇 효율적인 분야에만 집중 투자하기로. 어쩌면 원천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의욕도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이오 분야 등 몇몇 거창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분야에 대한 투자에 대한 심각한 회의론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점점 더 많은 고학력 인재들이 이공계로 안가고 의료계로 간다고 한다. 사실 개인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우리나라는 원천 기술을 개발할 의욕도 별로 없고, 그만한 연구비를 쏟아부을 돈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공계 고급 박사 인력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 미국에서 공부한 인재들 역시 미국 기업에서 일할 때의 생산성을 한국에서는 만들어내기 어렵다. 애초에 우리나라와 미국은 연구에 대한 관점과 연구비의 규모가 다르다. 미국은 원천 기술과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곳이고, 한국은 당장 돈이 되는 분야에 투자하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학력 인재들이 굳이 이공계를 비롯한 각종 분야에 진출할 인센티브는 점점 부족해질 수 있다. 어차피 기업에 가도 공부한 것들을 써먹을 일도 없을 바에야, 그냥 그만큼의 공부를 의료 전문직 면허를 얻는데 투자하면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출산율 감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연금이나 건강 보험, 세금과 노인 부양비 등의 이슈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결국, 우리나라가 고급 인력을 활용하기 힘든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한국은 그저 늘 해왔던 대로 선도적인 기술과 지식을 개발하기 보다는, 각 산업 분야에서 많은 인력을 갈아 넣어 저임금으로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 쪽이 더 효율적인 나라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전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차라리 저임금으로도 기꺼이 몸을 갈아 일해줄 인력들이 늘어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출산율과 인구가 줄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국은 뭐 하나 뜨면 전부 거기에 몰빵하는 곳이다. 이것은 심지어 음악계에도 적용된다. K-POP 은 이제 장르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전부 보이 그룹 / 걸 그룹 아이돌 체제로 정착했다. 이것은 문화적 측면에서는 다양성이 쇠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음악 그룹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의 보이 / 걸 그룹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어마어마한 연습량과 집중적인 음악적 훈련을 받아 만들어진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이야말로 한국의 특허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유독 경쟁이 심한 국가인 것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은, 경쟁에 참여한 사람들 중 승자 소수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인력을 갈아넣는데 최적화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개인이 어마어마한 인내심을 가지고 헝그리 정신으로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한다. 한가롭게 자기가 무슨 분야를 좋아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행복한지를 따질 겨를이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만 노력하는 것은 죽기 살기로 자기를 갈아 넣는 것과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달라질 수 있을까? 기초 학문 분야에 투자하고, 개인이 자신의 적성에 맞게 다양한 분야에 골고루 퍼져 각 분야에서 골고루 성과를 내도록 하는 방향으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 동아시아의 긴장 상태가 줄어들거나, 북한과 통일을 이루기 전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정말로 이 모든 근본을 바꿔버릴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또 모를 일이다. 다만 예측 못할 일이 발생할 거란 기대를 굳이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생각보다 꽤 오랜 기간일지도) 지금과 같은 체제가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방 균형 개발이 실패하고 결국 수도권으로 주요 일자리와 사람이 모이는 것 역시 효율적인 도시 개발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이제 와서 지방 거점 도시들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 과연 효과를 볼 수 있을까? 그만한 리스크를 지고 투자를 감행할 정치 정당이나 기업가들이 나타날까?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
거대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변화를 상당히 긴 시간동안 쌓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장시간 계획을 짜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나간다 해도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여기에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상황에 대한 변화도 기대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변화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런 긴 안목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아무런 진정성도 없이 '기초 학문을 튼튼히 해야 하거늘' '학생들이 돈만 밝히고 이공계를 기피해서 큰일이야 어험' '왜 다들 서울로만 몰리냐. 지방도 얼마나 살기 좋은데!' '아니 왜 결혼들을 안하고 출산을 안 해. 나라 망할라고'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얼마나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