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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May 06. 2024

효율성 위주로 성장한 한국 경제의 한계

수출에 의존적인 경제 체제


한국 경제는 좋든 싫든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석유와 가스 등 필수 에너지를 수입하기 위해 늘 충분한 달러를 보유해야 하고,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이죠. 이는 결국 원화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원화 가치는 단순히 환율을 뜻하지 않습니다. 환율이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올랐다고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왜' 올랐느냐가 중요하죠. 우리 상품과 서비스가 원활히 수출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달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니 환율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 달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외환시장 개입이나 미국채 매입 등을 통해 얼마든지 환율을 우리 입맛에 맞게 조정할 여력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환율을 능동적으로 조정할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는 환율이 올라도 원화의 본질적 가치가 하락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상품과 서비스가 안팔려서 환율이 수동적으로 올랐다면, 그 때는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달리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수출이 안되서 환율이 오르면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상품 서비스가 매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동남아나 남미의 가난한 국가 물건들이 가격이 저렴하다고 잘 팔리진 않죠. 일본 제품과 서유럽의 명품 제품들은 가격이 비싸도 불티나듯 팔립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수출 대기업에 몰빵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기업을 수출 강소기업으로 키우는 것은 이미 비효율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고, 결국 재벌 대기업을 키워서 수출을 많이 해야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벌 대기업들의 법인세 인하 이야기가 나오면 속상해할 국민들이 많겠지만, 실은 재벌들이 수출을 많이 해줘야 국민들 개개인의 주머니 속 원화 가치가 유지되는 거라는 메커니즘을 안다면 쉽게 비난하진 못할 겁니다. 


독일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중소 강소기업들이 많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북한과의 경쟁 속에서 해방과 전후 빠른 시기에 성장해야만 했던 과거를 감안해 볼 때, 재벌 대기업 몰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효율성에 대한 집착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가의 모든 역량을 효율적 성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도시 개발 및 인재양성까지 재벌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현재 상위 100대 기업 본사가 전부 서울에 있습니다.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각종 인프라와 인재들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수출 의존도 역시 같이 커지면서, 서울 집중은 기업들이나 인재들 모두에게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었죠. 정부와 정치인들이 너무 서울 및 수도권만 키우는 거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있지만, 실은 수출 기업들을 성장 시키는데 서울 수도권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인재 교육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공부로 줄세워 1등부터 상위 몇 %의 학생들'만' 중요한 인재로 대우 받았습니다. 이는 대기업과 전문직, 공공기관의 일자리 숫자와 일치합니다. 그 밖의 학생들은 사실상 국가 입장에선 방치해왔다고 할 수 있죠. 모든 교육은 특히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할 인재를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효율적 국가 운영이 부딪힌 성장 한계


이같은 방식의 효율적 국가 운영은,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엔 그런대로 잘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상위 재벌 대기업과 상위권 인재들, 국가 공공기관과 전문직 엘리트들이 선봉에서 국가 경제를 이끌어오는 과정에서 그 외의 수많은 사람들도 동일한 혜택을 보았으니까요. 위에 언급했듯, 수출이 잘되고 국부가 증가하면 모든 사람들의 주머니 속 원화 가치가 상승합니다. 또한 대기업과 연계된 하청 중소기업이 성장하고 수많은 자영업 역시 같이 성장할 수 있었죠. 


그런데 최근 10~20년 사이에 이같은 국가 운영에 한계가 찾아옵니다. 전반적인 성장 정체가 찾아오면서, 부동산, 주식등의 자산 가격만 오를 뿐 국가가 내다파는 상품 서비스의 부가가치 상승이 정체되기 시작한 거죠. 여기엔 서울과 수도권 왠만한 구역의 도시 개발이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쓸데없이 자산 가격만 오르는 바람에 빈부 격차만 커지는데, 원화 가치는 정체되거나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국 경제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엔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을 통한 급격한 정보 공개와 공유가 한 몫 했습니다. 한국은 필연적으로 소수 인재만을 챙기고 나머지를 버리는 인재 정책을 써왔다는 것, 소수 재벌 대기업에만 몰빵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빈부격차가 빠르게 커져 이제는 개인의 노력으로 각자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저출산은 필연적인 결과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이 너무 오른 것은 서울 집중화 현상 때문이 맞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결혼과 출산이 급격히 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제라도 지방 개발을 시작해야 할까요? 


문제는 지방 개발이 효율성이 무척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수출 대기업 입장에선 이미 서울과 수도권에 모든 인재와 인프라가 모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도시 개발에 돈을 쏟아 붓는다고 그게 과연 수출 대기업의 원천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장기적으로는 지방 개발을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서울 수도권 부동산이 오르고 지방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는 앞으로 청년들의 미혼 저출산 현상은 점점 심해질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이는 서서히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경기 침체로 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일본보다 경제 체력이 튼튼하지 못한 한국은 저출산과 경기 침체의 늪에 발을 내딪는 순간 다시는 회복 못할 정도로 나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지방 개발에 공을 들일 수도, 그렇다고 서울 수도권 집중을 방치할 수도 없죠. 대기업에 몰빵하는 걸 멈출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중소기업들을 더이상 외면해서도 안됩니다. 대기업을 포함해 한국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17%정도 밖에 안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살리지도 않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지도 못하면 앞으로 청년들은 점점 더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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