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행복은 그저 행복 호르몬 분비와 그에 반응하는 반응기(수용체)의 작용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인생을 살다 겪는 수많은 불행감과 우울, 좌절,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각각의 호르몬 분비를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약이나 치료 방법은 없으며, 종교 활동과 예술 활동,운동, 명상 등등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효과가 있는 사람에게나 있을 뿐 아니라 그다지 큰 효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늘 행복한 사람은 그냥 그렇게 타고난 사람들이고, 이들의 뇌 속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 호르몬이 자주 분비되는 행복 금수저들이다. 이는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며, 다른 타고난 조건들을 후천적으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듯, 이처럼 타고난 행복쟁이들의 행복 수준을 목표로 하는 것은 부질없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 물질적 금수저들만을 선망의 시선으로 보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실은 정말 부러워할 사람들은 행복 금수저들이나 다름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화가 난 이유가 직장의 상사가 꼴도 보기 싫은 짓을 하기 때문이고, 우울한 이유가 내 배우자가 형편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불행한 이유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뇌의 작용은 전혀 다르다.
머리 속에서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 행복 호르몬의 분비가 줄거나 이에 대한 반응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직장 상사가 꼴도 보기 싫어지면서 분노를 일으킨다. 또한 우울해지면서 그 원인을 배우자의 형편 없는 조건으로 돌리고, 불행감을 느끼며 그 이유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정'한다. 후회감이 마구 들며 그 이유가 목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정'을 내린다.
뇌가 그런 식으로 불행, 분노, 후회감의 원인으로 특정 대상을 지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뭔가 변화를 일으키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좀 더 큰 행복과 쾌감을 느끼기 위해선 뭔가 의미 있는 결과가 필요한데,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주위에 보이는 것, 그동안 경험한 무엇인가에 원인이 있다고 서둘러 지정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이미 경험해 본 것과 눈에 보이는 것에서 원인과 이유를 찾는 것은 뇌의 효율적인 작용임과 동시에 한계에 해당한다. 그동안 겪어본 바로 돈을 벌 때 쾌감이 느껴졌다면, 지금 우울한 이유가 돈을 더 많이 벌지 않았기 때문으로 라벨링하는 식이다.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절대 끝까지 이해 못할 수밖에 없다. 고통의 원인으로 전쟁 경험을 지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뇌가 이런 식으로 라벨링을 하는 것엔, 생존과 진화의 목적도 있다. 당분 등 맛있는 음식에 대한 탐욕은 굶주리던 시절의 인간 조상에서 우리가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기를 출산하고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의 행복감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매우 큰 행복감과 안정감, 편안함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옥시토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옥시토신의 그 행복감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야 사람들이 [ 눈을 낮춰서 ] 서둘러 짝을 짓고 아이를 낳아 종족 보존의 목표를 완수할 것 아닌가. 그래서 옥시토신 수용기가 발달해 있지만 옥시토신 분비가 원활하지 않은 사람들은 서둘러 짝을 찾아 출산 준비를 하게 된다.
어린 시절 충분히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해 뇌 속에 옥시토신 수용기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래서 굳이 출산을 선택하기 보다는 도파민이 주는 강렬한 쾌감, 세로토닌이 선사하는 현실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하지만 도파민의 경우는 몸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도파민에 의한 쾌감의 효과가 약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뒤늦게 옥시토신 등 다른 행복 호르몬 분비를 추구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흥에 대한 욕망이 생겨난다. 나이든 중년 남성, 여성들이 즐기는 유흥의 내용을 가만 들여다보면, 잃어버린 어머니/아버지 앞에서 아기와 같이 사랑받는 역할극 같은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개개인의 행복감, 우울감, 외로움, 후회감, 좌절과 절망감, 쾌감 등등을 결정하는 많은 부분이 실은 유전, 그리고 어린 시절의 환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우울증이 있다고 숨길 필요 없고, 외로움과 좌절을 자주 느낀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 거의 모든 마음 상태는 대부분 본인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늘 행복감을 유지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따라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따라서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행복론 강의들은, 그냥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방법론일 뿐이고, 그것들 중 단 한 가지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행복과 관련된 방법론의 핵심은 하나같이 뇌과학이 최근에 밝혀낸 이론들과 매우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 종교 활동, 명상, 생각 줄이기, 운동, 집중과 몰입, 유해한 사람들 피하기...이 모든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우리의 뇌 속에서 좀 더 많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시키고, 그 호르몬들이 작용할 수용기들을 늘리는가와 관련이 크다. 행복이 마음 가짐에 달려 있다는 말의 근거도 결국 여기서 나온다.
나 자신의 뇌가 어떤 구조인지 알 길이 없고, 현대 과학 기술로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그 누구도 찾아줄 수 없으며, 그 누구의 방법이나 모든 현대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 역시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있는 그대로 따라할 수 없고, 오직 외로이 스스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을 사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과 기술은,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만큼 발전하지 못했했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