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허무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주제를 탐구해 왔으나 뚜렷하고 통일된 해답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생물학과 뇌과학은 이에 대해 답변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은 허무하다" 와 "삶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의 차이
세상 모든 것은 생성되고 변화를 거쳐 결국 사라진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늙고 죽는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겨도, 아무리 자손이 번창해도, 그것을 이뤘던 사람은 언젠가는 늙고 죽어 없어지며, 죽은 후에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인지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삶은 허무한 측면이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삶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부터 내내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끼고 나이 들면서 그런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늙어 죽기 전까지 허무함을 전혀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영원히 살 것처럼 생생하고 활기찬 기분을 유지하며 살다 갈 수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뇌 속 행복 - 쾌락 보상 회로 구조의 차이다.
우울과 불안 - 잔잔하고 지속적인 행복 - 짧고 강렬한 쾌락의 원리
우리 뇌엔 행복과 쾌락을 관장하는 회로가 있다. 이 때 잔잔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느끼는 기전과 짧고 강렬한 쾌락을 느끼는 기전이 다르다. 전자는 주로 세로토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과 관련이 깊다. 이는 편안함, 온화함, 사회적 유대감, 안전함을 느끼는 기전으로 이같은 작용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후자는 주로 도파민, 엔돌핀,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과 관련이 깊은데, 짧고 강렬한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지속시간은 짧으며 이 때 느끼는 쾌감이 강렬할수록 그 후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소 우울한 감정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
실제 인간의 뇌는 매우 복잡한 감정 처리 기전을 갖고 있으며, 일반 기계처럼 어느 특정한 호르몬만이 각각의 감정을 느끼도록 하진 않는다. 하지만 간단한 이해를 위해 이후부터는 잔잔한 행복감은 [ 행복 회로 ] , 짧고 강렬한 쾌감은 [ 쾌감 회로 ] 로 명명하기로 한다. 이는 엄밀히 말해 정확한 설명이 아니며 실제 감정 처리와 관련된 뇌의 작용 기전은 매우 복잡하다. 현대 과학은 그 정확한 기전을 완벽히 밝혀내지도 못했다.
우울과 불안은 행복감을 관장하는 행복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기질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여린 마음을 갖고 태어난 경우,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겪었거나 부모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 살면서 충격적인 경험을 하거나 상처를 받은 경우 행복 회로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행복 회로의 이상을 바꾸기가 어렵다. 행복 회로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평소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이 우울하거나 불안한 감정이 들 수 있다.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은 실제로 뇌 속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의 활성이 낮게 나타난다고 한다. 좀 더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어떤 이유에서든 뇌 속에서 염증 반응이 많이 나타나는 것과 우울, 불안의 감정이 관련이 깊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기전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삶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 우울과 불안이 지속되는 상태
결국 삶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바로 머리 속 행복 회로와 쾌감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평소 우울과 불안이 지속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울과 불안이 지속되면 세상 만물과 인생 모든 것이 허무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예로부터 철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이 '삶은 고통이다' 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것은 사실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에게 '삶은 고통이다' 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 속 행복 회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사람들, 쾌감 회로가 잘 작동하는 사람들은 삶을 고통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인생에서 허무와 공허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유무형의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있어 이런 사람들이 많은 역할을 해왔다. 금융 시스템, 수많은 건축물,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여러 학문과 기술들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같은 것들에 허무가 아닌 영속적인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울함,불안과 사물에 대한 관찰력, 깊은 사유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들 중 철학을 비롯해 다양한 학문을 연구했던 학자들, 예술가들이 많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울과 불안이 반드시 병적 상태라고 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진화론자에 따르면 우울과 불안은 다양한 학문과 예술 발전에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며 전염병이 돌던 시절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 웅크리고 있음으로 해서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기도 했던 진화적인 적응 기제라고 한다.
문제는 괴로운 수준의 우울과 불안
모든 것이 그렇듯, 문제는 과한 수준의 우울과 불안에 있다. 기질적으로 쉽게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마음 건강하게 자라면 스스로의 우울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는 것,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것, 학문과 예술에 매진하는 것, 심지어 사업을 하고 기업을 이끄는 것도 가능하다. 삼성 이건희 회장 가족에 우울증 내력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울과 불안이 지나칠정도로 심해지면 일상 생활을 방해하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 평소 가만히 있어도 괴로움에 빠질 수 있다. 타고난 유전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대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부모의 사랑 부재, 안전 위협 등등의 문제가 누적되어 이런 상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엔 결국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이 필요할 수 있는데, 이는 뇌 속의 행복 회로가 다른 방법으로는 회복되기 쉽지 않은 상태로 끊임없이 염증이 발생하는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바로 이처럼 어린 시절의 문제로 인해 성인이 된 후 끊임없는 우울과 불안으로 괴로운 상태에 머무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많은 경우 상담을 받거나 약을 처방 받아 먹을 수도 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
과도한 우울과 불안으로 인한 허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쉽게 빠지는 것 : 중독
과도한 우울과 불안은 결국 삶에 대한 강한 허무감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이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안들을 찾게 되는데 이 때 빠지기 쉬운 것이 바로 '중독' 이다.
중독 하면 마약 중독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중독은 말 그대로 짧고 강렬한 쾌감을 느끼기 위한 모든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고, 그 행위만을 삶의 활력으로 여기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쾌감 회로를 작동시키는 모든 행위가 중독 대상이 될 수 있다.
술담배 중독, 마약 중독, 게임 중독, 섹스 중독, SNS 중독 등등은 쉽게 인지가 되는 중독이다. 연예인들 중 마약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시트콤 '프렌즈'에 '챈들러' 역으로 출연했던, 얼마전 사망한 '매튜 페리' 역시 시트콤 촬영 당시부터 마약 중독 상태였다. 결국 마약성 진통제 과량 투여가 이번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사망한 이선균과 유아인도 마약 중독 의심을 받고 있는데, 실은 연예인들 중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어디서든 대우를 받다가 갑자기 인기가 떨어지고 잊혀질 경우 느끼는 좌절과 실망은 보통의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매우 강력한 고통을 준다. 정신적 고통을 받을 때 느끼는 뇌 반응은 신체적 고통을 받을 때 느끼는 뇌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마약은 결국 이렇게 강렬한 고통에 대한 진통제인 셈이다.
우리는 중독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의지가 약해서' 중독이 되었다든가, 배가 부른 상태에서 더 큰 쾌락을 느끼고 싶어 중독 물질에 빠졌다든가 등등. 하지만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중독은 사실 극심하게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 짧지만 비로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회로가 잘 작동해 잔잔한 행복을 꾸준히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중독에 빠져들지 않는다. 결국 우울과 불안이 극심해 일상이 내내 괴로울 경우, 이에 대한 치료제로 중독 대상에 빠지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중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게 된다.
보통 사람들에게 중독은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은 수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한국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중독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인정 중독' 이다. '인정'은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남의 칭찬이나 찬사를 받고 기회를 얻는 과정이라 매우 건설적인 속성을 가진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역시 마약 중독처럼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과연 자신이 인정 중독에 빠졌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인정 중독 상태에 있으면 현실적 성취가 커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바로 이같은 '인정 중독'을 간과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에서 비롯되는 괴로움 -> 인정 중독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을 일으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것이라고 강력히 믿게 된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선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서까지 끊임없이 사회적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만드는 문화적 압력이 작용하는데, 이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기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경쟁의 압박이 심하고 SNS를 통해 쉽게 비교당하기 쉬운 환경에서 그 어떤 사람도 존재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인식을 타인의 평가를 통해 얻기는 어렵다. 아무리 사회적 성취가 높고 여러 조건들 - 외모, 성격, 직업, 재산 수준 등등 - 이 훌륭하다고 해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그것을 깎아내리려 할 수 있고, 의외로 가족이나 지인, 친구 간에도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자기 자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성립할 수 있는데, 이는 보통 어린 시절 부모와 양육환경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그러나 그 중요한 시기에 경쟁과 평가를 겪은 아이들은 커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믿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평가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이 일상에서도 지속되면 결국 만성 우울과 불안으로 발전한다.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한 상태에 빠지면 행복 회로가 작동하기 어렵다. 행복 회로는 잔잔하고 지속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상태인데, 이는 일상을 충실히 살고 아주 조금씩 장기적으로 삶의 작은 성취와 일상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기쁨을 느끼는 것과 관련 있다. 쉽게 말해 비용 대비 그 효과가 매우 낮다. 일상이 괴로울 정도의 우울과 불안은 짧고 강렬한 쾌감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일으키는데, 이 때문에 각종 중독 행위에 빠지게 된다.
SNS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계속해서 내보이고 좋아요 버튼과 좋은 댓글들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괴로운 일상을 잊으려는 행위부터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를 키우는 것 역시 인정 욕구를 채우는 행위이며 이것이 과하면 인정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사회는 인정 중독 중에서도 '공부나 다른 재능을 갈고 닦아 타인의 인정을 얻는 것' 은 매우 장려한다. 이는 개인에게도, 주변 가족들에게도, 사회 전체적으로도 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인정 중독은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가장 바람직한 중독이며, 심지어 잔잔한 행복을 느끼고 현재에 만족하는 상태보다 더더욱 사회에 이로운 중독이라 할 수 있다.
개인 역시 이같은 인정 중독에 빠지면 젊은 시절 많은 성취를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므로 이같은 중독의 위험성을 간과하게 된다.
인정 중독의 문제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에서 발생
인정 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즉, 인정 중독은 일상의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을 덮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울 불안 -> 인정 중독으로 인한 일시적이고 강렬한 쾌감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태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뇌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는 과학적으로 정확하진 않지만 큰 그림에서 볼 때 정신 건강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는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정서적 편안함과 안전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 그 후에 인정 욕구나 자아실현 욕구를 채우는 것 - 이것은 뇌가 중독되지 않고 일평생을 걸쳐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욕구 스텝을 건너뛰지 말아야 한다는 현대의 뇌과학 관점과 일치한다.
쉽게 말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확립한 후 행복 회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먼저이고, 성취나 인정 욕구를 채움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건 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해야 뇌가 장기간 건강을 유지하며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는 쾌감 회로의 가장 큰 단점 때문인데, 쾌감 회로는 자주 채울수록 점점 더 쾌감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약에 중독된 후엔 더 강한 마약을 해도 아무런 쾌감을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괴로움의 수준이 더 강렬해진다는 사실도 이와 관련이 깊다.
결국 우울과 불안을 쾌감 회로만을 작동해서 덮으려는 모든 시도는 뇌를 점점 더 무엇인가 더 강렬한 중독으로 이끌 뿐이다. 그런데 그 어떤 중독도 더이상 행복이든 쾌감이든 느끼지 못하게 된다. 쾌감 회로는 점점 더 무뎌지게 되고, 점점 더 쾌감을 느끼기 어렵게 변하는데, 이는 우리 몸을 보호하는 작용과도 관련이 깊다. 쾌감 회로가 작동할 때 분비되는 각종 호르몬들은 장기적으로 심혈관계와 몸 속의 여러 장기들에 부담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쾌감' 자체가 한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느껴야 할 행복을 일시에 몰아서 받는 것으로, 마치 대출을 땡겨 받으면 일시적으로는 부유해지지만 장기적으로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다른 기능이 노화되는 것과 동시에 쾌감 회로 역시 노화를 피할 수 없다. 쾌감 회로가 아무리 열심히 작동해도 더이상 쾌감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 더이상 타인의 인정을 받을 길이 줄어들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최고의 성과를 내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언젠가는 인정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쾌감 회로를 더이상 제대로 가동시키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이 때 해결하지 못한 근원적인 문제 - 즉 일상의 우울과 불안 - 가 다시 고개를 쳐든다.
아무리 늦었어도 순서는 지켜야 하는 법
한국은 뭔가 늘 조급하다. 이른 나이에 이뤄야 할 과제들이 너무 많다. 성인이 되기 전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초등학생, 유치원 때도 해야 할 과제들과 통과해야 할 벽이 너무 많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서둘러 좋은 직업을 갖고 서둘러 많은 돈을 벌고 서둘러 많은 성취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어린 시절부터 이같은 압박을 받고 자란 아이들 중 이를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예민하고 여린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 가치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는 주위의 평가 속에서 찾게 된다. 그로 인해 성인이 된 후 만성적인 우울과 불안에 빠지고, 결국 인정 중독에 빠지는 고속도로 티켓을 끊게 된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언젠가는 강력한 허무감과 공허감이 밀려온다. 그동안 이룬 것들도 전부 허무해 보이고, 그 때부터는 오히려 그동안 이룬 것이 스스로를 옥죄기 시작한다. 자신을 소진해서 이룬 것들로 인해 주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한껏 커지고 책임감 역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벗어날 수도 없다.
어느 순간 이것을 깨달았다면, 아무리 늦었어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 뇌는 속도위반이나 단계를 건너 뛰는 것에 취약하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견고한 기반을 다지지 않으면, 그 위에 수십년을 걸쳐 그 어떤 것을 쌓아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이 과정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언젠가 정말 큰 문제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정말 큰 문제라는 것은, 어느 순간 자신이 이룬 모든 것에 대한 허무감, 그로 인해 느끼는 좌절감이다. 바로 이 허무와 좌절에 이르면 이미 그때까지 구축해 놓은 쳇바퀴를 멈출 수도 없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 스스로 짊어진 책임을 내려놓기도 힘들어진다.
인정 중독의 효율이 떨어지면 다른 중독 대상을 찾는다.
인정 중독의 효율이 떨어지고 인생 전체에 대한 허무와 공허감이 밀려오면, 그 때부터 다른 중독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를 이용해 인정을 받으려 하는 보상심리가 강렬해져 아이를 닥달하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인정 중독이 더이상 통하지 않게된 자신의 뇌 속 쾌감 회로를 계속 돌리기 위한 또 하나의 중독 행위일 뿐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정확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나이 들어 뒤늦게 불륜이 늘어나고, 그 불륜의 내용은 점점 더 짧고 강렬한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채워진다. 그 외에 쇼핑 중독, 과시와 허영 등등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을 위한 수많은 중독 대안들을 이미 보기 좋고 다소 비싼 가격으로 잘 마련해 두고 있다.
인생은 천천히 길고 지루하게 걷는 길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신나는 지옥이라 표현한다. 수많은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이 너무 재미있다고 지루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기 싫어한다.
끊임없이 역동적이고 괴롭지만 신나는 (?) 일이 많은 한국은 그 덕분에 전세계에서 단기간에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가 되었다. 한국이 계속해서 경제 성장을 이룰지 여부를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일 중독 인정 중독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가에 달려 있다. 즉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 중독 인정 중독에 빠져 있다면,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실은 자기 삶에 만족하고 천천히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한국의 미래 경제 전망은 어둡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은퇴할 때까지 사람들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교 시키고 갈아 넣어 이룩한 경제 구조는, 전세계에 다시 없을 가장 효율적인 성장 엔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들다면,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고 공허하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체크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것이 바로 쇼펜하우어의 '인생은 권태와 고통을 오가는 시계추' 라는 등등의 우울한 철학인데, 쇼펜하우어는 대단히 부유하고 평생 먹고 살 걱정 없는 재산을 물려 받은, 기질적인 우울함을 갖고 태어난 학자다. 보통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결국 삶이 괴롭다면, 누구나 어디서든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지극히 뻔한 진실을 되새기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인생은 천천히 지루하게 걷는 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자기 존재 가치 회복 ->
잔잔한 일상의 행복 ->
그 뒤의 강렬한 쾌감
의 순서를 지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