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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쏠림, 어쩌면 AI 시대의 선반영

by rextoys

최근 대입 수험생들의 의대를 비롯한 보건 의료직군으로의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내수 축소, 수출 산업 불안정으로 인한 이공계 및 상경 비상경계 직장 소멸, 의대 정원 증가 등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실제로 인재들이 전부 의대를 비롯한 안정직 학과로 몰리고 있어 한국은 앞으로 인재 부족 현상을 겪게 될까? 이로 인해 장기적인 한국 경제 성장 동력마저 꺾이게 될까? 여기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시대에서 인재의 정의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화와 제조업 발전 단계에서 한국은 A급 인재와 A-급 인재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 왔다. A급 인재는 교육과 상관없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인재들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스타트업을 차리는 사업가, 뛰어난 머리로 주요 학계를 이끄는 극소수 학자,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와 국가를 이끄는 엘리트 관료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국가가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성장해서 때가 될 때 알아서 빛을 발한다.

A-급들은 A급들이 깔아놓은 길에서 성실히 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다. 주로 명문대 출신들 소위 말해 공교육 체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공부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한국의 산업 발전 시기 A급 인재와 A-급 인재는 이런 식으로 국가 경제 발전을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시대에도 A급 인재들은 계속 필요하며 이들이 사실상 전체 성장을 이끄는 것은 변함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교육 제도와 상관 없이 타고난 인재를 뜻하는 A급 인재의 숫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 이들은 어느 분야에 진출하든 알아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아무리 의대 쏠림이 심화된다 한들 어느 분야에나 이들의 숫자는 줄어들 일이 없다. 문제가 된다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이런 인재들을 빼가는 부분이겠지만 그건 우리만이 겪는 문제는 아닐테고..


과거와 달라진 부분은 바로 A-급 인재들의 필요성이다. 그리고 AI 가 발전하고 산업 구조가 달라질수록 산업과 학계에서 A-급 인재들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 즉 과거에 A-급 인재들이 다수 필요한 부분에서도 이제는 B급, C급, D급 인재들이 비슷한 생산성을 나타내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기술 발전이 공부로 차별화된 인재들의 차이를 크게 줄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엔 잘 외우고, 수학 과학 언어적인 이해력이 높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들이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의 각 분야에 진입해 A-급 인재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공부 잘하는 능력' 이 전부 AI 로 대체되는 시대가 된다면? 혹은 이미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면? 학습력을 기준으로 B, C, D급에 해당하는 인재들이 A- 급 인재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어지게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능력들 - 성격, 친화력, 감성 지능 등등 - 이 더 중요하게 되면서 명문대 출신들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더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지금처럼 의대를 비롯한 안정적인 진로로 인재들이 과도하게 쏠린다고 해서 국가 입장에선 별로 문제될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 저출산으로 점점 더 학령 인구가 줄어든다 해도 기업 경쟁력이나 노동 생산성은 별 차이가 없어지거나 오히려 더 커질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앞으로의 기업과 학계는 극소수 선도적인 A급 인재와 나머지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 - 아무나 해도 성실하게만 하면 전체 생산성에 큰 차이가 없는 - 만 필요하게 될 수 있다.


그동안 명문대 출신들에 대한 기업이나 학계의 수요가 줄어들고 블라인드 채용이나 학벌을 타파한 채용 등등이 늘어난 것은 단순히 노동자 복지나 차별 해소, 평등 추구 정책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특출나지 않는 한 다수의 학습력 높은 A- 급 인재들, 즉 소위 명문대 출신들이 별로 필요 없어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의미다. 기업은 그 어떤 조직보다도 기민하게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단순히 평등 / 차별 철폐와 같은 문화적 동인으로 인재를 선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미 명문대 출신 여부가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큰 상관이 없다는 데이터가 충분히 쌓였고, 그 이유는 더이상 기업과 산업 시스템이 과거의 형태 (학습력 높은 A-인재가 A급 인재를 바짝 백업하는) 를 탈피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는 AI 발달이 가속화될 미래엔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


결국 현재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순서대로 의대를 비롯한 안정직군으로 진출하고 명문대의 다른 학과들을 외면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냥 적재 적소에 인재 배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즉 공부로 효율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직군에 맞는 최적의 학생들이 잘 배치되고 있는 것 뿐이란 의미다. 진짜 인재인 A급 인재는 늘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을 것이고, 따라서 국가나 기업 입장에서 인재 관리를 위해선 미국 등 다른 나라로 가 있는 이같은 A급 인재들을 높은 급여로 빼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재들은 의대로 쏠리고 있지 않다. 그냥 공부 기계들이 자신들에게 살 길을 찾아 가고 있을 뿐. 앞으로의 사회에서 공부를 잘하는 능력은 수많은 능력 중 하나일 뿐 경쟁적인 산업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AI는 살아있는 학습 기계들을 더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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