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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지식 쉽게 설명하기

by rextoys

'남을 설득하기 위해선 전문 지식을 8살 짜리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이와 비슷한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물론 정말로 8살 짜리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 보다는 그만큼 쉽게 설명해야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다는 의미겠죠. 다만 어떤 지식이든 쉽게 설명할수록 본래의 의미에서는 점점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지식은 아무리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어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 너머에 더 깊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또한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리와 관련된 지식은 아무리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해도, 실제로 요리를 해 본 후에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요리를 해 본 경험이 더 다양하고 많을수록 해당 지식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글로만 이루어진 역사 지식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유물들을 박물관에서 직접 보기 전과 후, 역사책 속 지명에 실제로 가보기 전과 후에 관련 지식을 다시 공부했을 때 앎의 수준과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뇌의 작동 메커니즘과도 관련이 깊은데, 우리 뇌는 직접 경험하고 오감으로 느낀 것들에 대해 입체적이고 강렬한 상을 갖게 되며 그로 인해 해당 경험과 관련된 뇌의 구조 자체가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쉽게 설명할 경우 본의 아니게 사실이나 현상을 축소, 왜곡해서 설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식은 해당 지식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관련된 기초 지식이나 구조가 생략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초를 쌓기 위해서는 방대한 공부와 이해가 필요한 경우 어쩔 수 없이 해당 부분을 비유를 들거나 단순화 시켜서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죠. 문학에서는 각종 비유가 어떤 감정이나 심상을 불러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실제 현실을 정확히 기술해야 하는 지식의 세계에서는 비유 자체가 현실을 왜곡하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를 특정 목적을 위해 기능하는 조직이나 팀, 회사나 가정으로 비유해 보는 경우를 보겠습니다. 세포는 외부 환경 변화나 다른 세포와의 소통에 의해 핵에 있는 유전 물질로부터 필요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들을 만들고, 이 단백질들이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립되어 세포 자체의 생존과 다양한 기능을 위한 여러 일들을 수행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비유가 어느정도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직은 생존과 조직의 목표를 위해 리더의 지시 하에 구성원들이 여러가지 일들을 수행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연하게도 세부적인 과정은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애초에 누군가의 의지로 움직이는 조직과 달리 세포는 그저 분자 수준의 확산 과정에 의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확률에 의해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실제 원리를 축소 및 왜곡하는 일이 있더라도 쉬운 설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지식을 활용해 현실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효과와 결과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욱 그렇죠. 수많은 사람들이 윈도우나 애플 OS 등의 컴퓨터 운영체제를 사용하면서 마우스로 어떤 버튼을 누르면 필요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원리를 몰라도, 그냥 클릭 했을때 원하는 무엇인가가 튀어나온다는 것만 알면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죠. 스마트폰 화면을 손으로 만지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손가락과 스마트폰 화면 사이에 일어나는 어떤 전자기적 메커니즘을 몰라도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앱을 사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저장 장치가 있고 이 저장 장치에 자료들이 마치 물리적으로 저장되고 삭제되는 것처럼 생각해도 이용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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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에 대한 지식, 각종 의료 행위와 약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이해할 수 있으면 건강이나 의료와 관련된 선택과 결정을 내릴 때 무척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전공자 수준으로 이해할 필요가 전혀 없으며, 실은 많은 전공자들 역시 자기 분야 외의 영역에 대해서는 완전한 이해를 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만큼 우리 몸과 의약학 지식은 매우 넓으며 상당한 수준으로 전문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연구를 하는 목적이 아닌, 일상에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와 관련된 지식들을 단순화 및 어느 정도 왜곡해서 알고 있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세세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다만 간단하게 비유적으로 알고 있더라도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명을 위해 지나치게 왜곡한 나머지 좋은 선택을 막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면서 현실에 적용할 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칫 이것은 좋은 음식을 먹으면 그만큼 점점 더 몸이 좋은 재료들로 구성될 수 있으니 점점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대사 질환이 있거나 그 외 특수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 좋은 음식이라 알려진 것을 계속 섭취한다 해도 아무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의료적 처치를 받을 시간을 늦춰서 몸에 더 큰 피해만 입힐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이 섭취한 칼로리에서 운동으로 뺀 칼로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저장하는 단순한 기계로 보는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같은 단순하고도 잘못된 설명은 1970년대 무려 미국 의사협회에서 나온 설명으로 이것이 비만과 다이어트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널리 퍼뜨려 미국인들의 비만율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지금도 칼로리 계산으로 살이 어느 정도 찔 것인지, 혹은 빠질 것인지 측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이처럼 잘못된 건강과 의약학 설명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문제들을 알게 모르게 장기간에 걸쳐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건강을 챙기기 위한 노력이 거꾸로 자기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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