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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절개에 대해

by rext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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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점점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기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절반 정도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2/3 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제왕절개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조사 중에 있긴 하지만, 아마도 고령 임신이 늘어나고 시험관에 의한 다태아 출산이 늘어난 점, 자연 분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안 증가 및 의료진들의 소송에 대한 리스크 증가 등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산모나 아기의 건강 문제 등 피치못할 문제가 있는 경우 제왕절개를 해야 하겠지만, 제왕절개가 아기에게 미칠 장기적인 건강 문제 역시 꽤 오래 논의되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기원전 1세기 경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제왕절개 수술을 Caesarean section이라고 부르며, 카이사르 본인이 제왕절개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정신적 문제가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었죠. 하지만 역사가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처음 제왕절개에 관한 법령을 만든 사람이 고대 로마 2대 황제 누마 폼필리우스(BC 715-673)인데, 이 때 만들어진 법령의 이름이 카이사르의 시대에 개정되면서 이름이 바뀐 것 뿐이라는 주장이죠. 사실 이 때의 제왕절개 수술은 지금처럼 산모와 아기를 모두 살리는 정교한 수술이 아니라 그냥 야만적인 도구들 (칼이나 도끼 등) 로 죽어가는 산모에서 아기라도 살리기 위해 산모를 희생시키는 수술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이 때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던 산모들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사망했겠죠.


근대에 들어와 행해진 제왕절개 수술의 기록은 대략 4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때 역시 대부분 죽어가는 산모에게서 아이를 꺼내는 수술이었고, 대부분의 산모는 제왕절개 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후 한참 시간이 흘러 19세기 말 Max Sanger라는 독일의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제왕절개시의 봉합법이 개발되었고, 그 후 20세기 혈액은행과 무균법, 항생제 등등이 개발되면서부터 제왕절개 수술에 의한 사망률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제왕절개가 아니라 자연 분만시에도 의사에 의한 감염에 의해 산욕열로 산모가 사망하는 일도 많았을 정도로 위생 관념이 없었으니, 산모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제왕절개를 선택하게 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항생제의 발전과 의료 기술의 발전이 진행되었고, 1970년부터 전세계적으로 제왕절개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WHO에서는 2000년 전세계적으로 제왕절개 비율이 12% 수준이었지만 2020년대 들어와 21%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산모가 아이를 낳다 죽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출산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죠. 실제로 아기가 뱃속에서 머리가 아래로 향하지 않고 위를 향하고 있다든가, 출산까지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 등등엔 산모 혹은 아기에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큽니다. 그래서 오늘날 제왕절개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결과적으로 과거보다 산모와 아기 모두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뱃속의 아이 위치가 정상이 아니거나, 태아가 너무 큰 데 반해 산모의 골반이 작은 경우, 자연 출산시 태아 혹은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될 경우에 시행되는 제왕절개는 산모와 태아 모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산모 중에는 자연분만 자체에 대한 공포가 극심한 경우도 있는데, 이 때 산모가 받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태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죠. 다만 그럼에도 정상 분만의 경우보다 제왕절개시에 산모에게 문제가 발생하는 비율이 크다는 보고들도 있으니 제왕절개는 꼭 필요한 경우에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WHO는 권고하고 있습니다.


점점 고령 출산이 늘어나는 추세를 볼 때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산모들의 비율은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입니다. 다만 제왕절개가 장기적으로 아이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즉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의 경우 비만과 당뇨 등의 성인병, 피부 아토피와 천식이나 자가 면역질환,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그 원리는 몇 가지 가설로 살펴볼 수 있는데, 우선 어머니 몸 속에 있는 미생물들 중 일부가 태아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몸엔 피부와 장 등에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으며, 이런 미생물들은 균형이 잘 조절되면 우리 몸에 유익한 효과를 내지만, 균형이 깨지면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착한 미생물나쁜 미생물 엄밀하게 나뉘어져 한 쪽만 유익하다기 보다는 미생물 생태계가 균형 있게 유지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야 미생물들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 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처음 아이가 자연 분만으로 태어날 때 어머니의 장과 질에 사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아기에게 전달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의 면역계는 태어난 후 첫 3개월간 잘 조절되어 발달하게 되는데, 이 때 어머니로부터 전달받은 다양한 미생물들이 건강한 면역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왕절개로 태어난 경우는 이같은 미생물들을 온전히 받을 수 없겠죠. 물론 모유 수유나 입맞춤 등등으로도 전달이 되겠지만 그 종류와 양은 자연 분만시 받을 수 있는 정도에 비하면 매우 미미합니다. 또한 제왕절개시 예방적 목적으로 산모에게 항생제를 투여하는데, 이 항생제가 태아의 몸 속 미생물 조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미생물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들은 초기 면역계 형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자라서 면역 관련 질병을 앓게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몸 속 미생물 조성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태어난 후 초기의 미생물 조성이 나중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러한 면역 관련 질병이 바로 아토피와 천식, 자가면역 질환이며 나아가 정신 건강과 비만, 당뇨 등의 성인병 역시 면역계의 이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s2.0-S1369527422000571-gr2_lrg.jpg 시간이 지나면 결국 미생물 구성은 다시 돌아오긴 한다

또한 산모가 제왕절개시 산모의 몸 속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산모의 자궁에 영향을 미치는 근육이 태아에 여러 물리적 힘을 가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태아의 면역계와 신경계, 장기 발달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제왕절개시 투여하는 여러 약들이 태아의 유전자에 후성유전학적 영향을 미쳐 (유전자 손상은 없지만 유전자에서 발현되는 여러 기능들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추후 아이의 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물론 이같은 가설들은 추후 연구가 더 필요하며 아직 뚜렷하게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이 호흡기 감염, 천식, 비만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도 있지만, 북유럽에서 진행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장기 효과 연구에선 면역 질환이나 대사질환, 정신 건강, 학업 성취도 등에서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반면 영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선 어느 정도 이상이 발견된 아이들이 있다고 하지만 실은 이런 연구들은 정밀하게 분자 생물학적 수준에서 측정한 연구가 아니라 인과관계도 밝히기 어렵고 오류도 많습니다. 따라서 아직까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반드시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은 앞으로도 이와 같은 연구는 쉽지 않기 때문에 뚜렷한 근거를 밝히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능성만 염두에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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