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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혼자 걷는 길

by rextoys

'인생은 결국 혼자다' 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혼자 먹고 자고 고독한 작업만 하는 사람이 떠오르기 쉽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런 사람은 인생이 혼자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공동체나 누군가에 의존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의존할 대상을 찾지 못해 고립된 것일 수 있다. 누가 불러주지도 챙겨주지도 않고, 스스로도 상처받기 싫으니 적극적으로 누군가와 교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없는 상태라 의존할 누군가가 사라지면 자기만의 굴에 숨는 것 뿐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사회적 교류 없이 살 수 없도록 진화해 왔다. 인생이 혼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친근하게 남들에게 다가간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철판 깔고 부탁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 누구도 자신을 챙겨주지 않고 의존할 대상도 없이 혼자인 상태이므로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언어도, 종족도 다른 외국에 뚝 떨어져서 생존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된다.


인생이 혼자라는 진실을 깨닫는 것은, 아무리 연인, 가족, 친구와 가깝게 지내도 결국 내 삶을 책임지고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같다. 물리적으로 서로 분리된 개체인 이상 아무리 끈끈하게 연결된 가족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죽음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심지어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이 많아도 머리 속에 펼쳐진 각자의 세계는 판이하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이라도 언젠가는 부모보다 더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아 떠나야 하는 것이 자연계의 숙명이다.


오랜 친분 관계로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결국 안좋게 끝나는 경우가 꽤 많다. 사업은 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철저히 이해관계를 따져야 원활히 할 수 있는 일에 속한다. 업무 분장과 기여도에 따른 수익 분배 등도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규칙을 따라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이런 규칙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이라는 것이 늘 그렇게 정교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규칙이 있다 한들 예외 없이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애초에 그 규칙을 따르는 주체가 무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속할 경우 업무 분장과 책임 소재가 애매모호해지므로 문제가 없을 일도 공동 사업에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친분 관계일 때도 공동 사업때 더 철저히 이해 관계 규칙을 만들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친분 관계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다. 사실 서로 친분을 이용해 공동 사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인생이 혼자라는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공동 사업의 비용으로 돌아오고, 그 비용이 이익보다 커지는 순간 공동 사업은 실패한다. 그런데 이 때 발생하는 문제들이 인생이 혼자라는 진실과 무슨 관계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힘들다. 그냥 상대가 양보해주지 않아서, 상대가 욕심이 많아서, 상대가 배려심이 없어서, 상대가 친분 관계를 이용하려고 해서 발생한 문제들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게 상대 탓을 하는 것은 결국 상대에게 의존했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결국 인생이 혼자라는 진실을 철저히 외면한 것을 의미하지만 왜 그 말이 그 말이 되는지 이해하기란 참 어렵다.


사촌 중에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가 있다. 나이 들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의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간 후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사촌은 미국에 간 순간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고,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주 사소하고 기본적인 일조차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유학 생활동안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위해 부지런히 살고 남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사촌은 현재 자기 이름으로 헬스장을 운영하는 헬스 트레이너가 되었고, 씩씩한 남자로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 의존적이던 사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회원들의 근육을 단련시켜 허리와 목디스크 환자도 통증 없이 만들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사촌이 미국 유학을 가서가 아니라 인생이 철저히 혼자라는 진실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사실 사촌이 한국의 대학과 미국 유학에서 공부한 과목은 헬스 트레이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


비슷한 진로를 가는 사람들이 비슷한 수준의 직장을 잡고 비슷한 시기에 승진하고 비슷하게 살 것 같지만 착각이다. 직장에서 끝까지 남는 사람들, 끝까지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모두 극소수다. 중간에 나간 사람들의 삶 역시 비슷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다른 직장에 가서 비슷하게 정착을 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저런 직장을 전전하며 맞지 않는 길을 이어가는 사람도 충분히 많다. 아예 직장을 관두고 자영업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OECD 기준 1위라고 한다.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느껴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서로가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로 상세히 말하지 않았을 뿐 모두가 자기 상황에서 매우 고독한 선택과 결정들을 내리면서 자기에게 맞는 길을 재조정하며 살고 있다.


과거엔 결혼 출산이 필수로 여겨져서 언제까지 결혼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등등에 있어서도 나름 삶의 시간표가 있었다. 하지만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가 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진로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시대가 계속해서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그와 맞물려 점점 개인들은 과거와 같은 인생 시간표 따위를 만들고 따르면서 살 수 없어진다는 점이다. 오늘 만난 연인과의 권태로운 관계를 정리하고 다른 연인을 찾는 것이 늦은 일인지, 내일 참석할 모임이 과연 시간 낭비가 될 지,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아이를 하나 더 낳아도 될지, 지금까지 하던 지루한 일을 그만두고 좀 더 즐거운 일을 찾아 가는 것이 내게 이로울지 알 수 없다. 세상이 변하지 않고 모두가 정해진 삶의 시간표를 따르는 것이 당연한 시대라면 통계적으로 더 적합한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미 그런 시대는 지났다. 결혼 출산을 선택 사항으로 여기는 시대, AI가 수많은 일자리들을 대체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대, 바이오 과학과 건강 지식의 발전으로 더 늦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엔 더이상 인생의 선택에 있어 통계적 정답이란 것을 낼 수가 없다.


그런데 사실은 과거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했고, 사람들의 인생도 무척 다양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 없이 각자만의 삶을 영위하며 살았다. 지금 와서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시대는 정체되어 있고 어느 시대는 수시로 변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각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 기술과 산업 발전이 지금처럼 다이나믹하지 않았을 뿐, 대부분의 인류 역사동안 사람들의 인생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정규직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다 어디서 먹고 살 것을 찾아야 할 지 늘 궁리해야 했으며, 잔잔한 날이 이어지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나거나 각종 강도 도적들에게 당할 수도 있었고, 수시로 전염병이 찾아오는 것이 드물지 않았으니까. 공동체주의 문화가 퍼져 있었던 과거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이 혼자라는 진실을 깨닫고 그것을 책에 남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 맞는가? 실은 이것 역시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남에게 의존적으로 살면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의존적으로 살기로 한 것 역시 홀로 고독하게 내린 결정일 수 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어떤 식으로 살든 그게 본인을 괴롭히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삶의 진실을 돌아볼 필요는 있다는 것. 인생이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건 아니면 의존적으로 살고자 하든, 삶의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인생은 혼자가 맞다. 진화가 더 진행되어 타인과 내가 좀 더 깊은 뇌신경 교류를 하고 서로의 생존까지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날이 오지 않는 한. 그러므로 남들 때문에, 혹은 세상 때문에 괴롭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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