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귀질환 심장병이 있고, 이것이 평생에 걸쳐 내 인생에 악영향을 미쳐왔다는 것, 결과적으로 중요한 순간들마다 삶의 궤적까지 수시로 바꿔 왔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 덕분에(?) 아무렇지 않게 누구나 쉽게 하는 말 -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 의 근본적인 매커니즘도 거의 완벽하게 깨닫게 되었다. 건강을 잃으면 정말로 모든 것을 잃게 되는데, 이것을 두고 뭔가 많이 이룬 노인이 중증 질환으로 불구가 되어 아무것도 못하게 된 상황처럼 극단적인 상황만을 떠올리기 쉽다. 나의 관점은 다르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얼마든지 건강을 잃은 상태일 수 있고, 그런 상태라면 분명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 모든 것을 잃은 상태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소 모호하고 알쏭달쏭한 개념이라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우선 '건강'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이란 단순히 진단받은 질환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으며, 만성 질환이나 장애가 있다 해서 반드시 건강을 잃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상태란 육체 건강과 정신 건강, 즉 뇌의 건강까지 포함하는 개념인데, 이를 위해 현재 몸을 이루는 각 장기와 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고, 만성 염증이 없으며, 혈액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쪽 신장에 문제가 생겨 신장을 떼어내 한 쪽 신장밖에 없다고 하자. 이 경우 분명 신장 기능은 떨어지지만, 이 신장이 무리하지 않도록 몸 관리를 잘 한다면 이것은 건강한 상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팔다리가 없거나 간의 일부를 잘라낸 경우, 특정 장기 기능이 약해진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 장기들이 무리하지 않고 정상 작동하고 있으며 각 장기에 원활하게 혈액이 공급되고 있으면 건강한 상태다. 장기와 기관들이 정상 작동을 하면 몸 속에 만성 염증이 발생하지 않고 혈액이 원활히 순환되며 뇌 속에서는 적절하게 여러 행복 호르몬들이 나온다. 하지만 장기와 기관에 무리가 가면 우리 몸은 보다 중요한 장기와 기관들 - 뇌와 심장 등 - 을 위해 다른 장기와 기관들을 희생시키는 전략을 취하는데, 이 과정에서 염증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혈액 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만성 염증과 혈액 순환 장애가 발생하면 그 때부터 몸 이 곳 저 곳이 조금씩 파괴되고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뇌 신경세포에 문제가 발생해 불안, 우울 등의 정신질환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 이유 없이 통증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심혈관계 질환, 당뇨, 만성 정신질환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 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에 언급했듯 여러 만성 질환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통증을 일으키거나 몸 속 염증을 일으키는 일을 최소화시키고, 혈액 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며 뇌 속에서 행복 호르몬들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상태라면 상대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진단받은 질환이 없고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더라도 자주 무리를 해서 몸 구석구석 계속 아프거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면 이 역시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왜 몸 속 만성 염증, 혈액순환 장애, 뇌 속 행복 호르몬 부족이 불건강의 지표일까? 이 세 가지는 사실 따로 떨어져 있는 개념도 아니고 질병이나 장기와 기관 손상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구분하기로 하겠다. 우선 만성 염증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통증, 뇌신경세포 이상, 인슐린 저항성, 원활하지 않은 에너지 대사 등 몸 속에서 뭔가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동시에 염증 자체가 만성화되면 더더욱 통증을 느끼게 만들고 몸 구석구석을 서서히 망가뜨리며 작은 일에도 쉽게 불안하게 만들고 화를 돋우거나 짜증을 일으킨다. 염증 자체가 혈액순환 장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염증이 지속되는 부위에선 혈관 벽이 손상되어 흉터와 같은 조직이 생겨나 혈액 순환을 더욱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건강과 불건강을 좀 더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몸 속 끊임없는 만성 염증이 발생하고 있는가 아닌가로 볼 수 있겠다. 다만 염증은 불건강의 근본 원인이 될수도 있지만 대개는 실제 원인의 결과인 경우가 많고 특히 만성화될 경우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불확실하므로 염증만 뚝 떼어놓고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어려서부터 나는 남들보다 심장의 혈액 펌프질에 수시로 문제가 발생하니 몸 구석구석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았고, 그래서 남들보다 끊임없이 몸 속 만성 염증이 많이 발생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심장을 뛰게 만들기 위한 에너지와 혈액이 많이 필요하니 그만큼 피로도 쉽게 느낄 수밖에 없었고, 조금이라도 심한 운동을 하면 금새 가슴에 통증이 오고 심장에 무리가 왔다. 이런 증상은 일찍부터 남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일들에 쉽게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만들었는데,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기의 순간 분비되는 교감신경은 심장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주 혈액순환이 안되고, 자주 공포와 불안을 느끼고, 자주 만성 염증이 발생해 쉽게 예민해지고 자주 통증을 느끼며 살아왔다.
이렇게 불건강한 상태 덕분(?)에 나는 남들과 좀 다른 감각을 갖게 되었다. 우선 내게는 소유욕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소유욕이 없다기 보다는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아마도 나의 내면에서 일찍부터 '죽음'에 대해 가깝게 느끼고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 좋은 상품, 더 좋은 옷, 더 좋은 차와 집.. 이런 것들을 내 명의로 만드는 것과 내가 그것을 소유한다고 인지하는 것은 매우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내가 나온 학교, 내 직업을 규정하는 면허증도 마찬가지로 소유할 수 없다고 느낀다. 내게는 그 모든 것이 그냥 잠시 지나쳐 가는 것 뿐이고, 언젠가는 결국 놔줘야 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집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왜' 그렇게 느끼냐고 물어봐야 할 수 있는 답이 없다. 그냥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라고밖에는.
또한 장기적인 통증과 수시로 느껴지는 불편함은, 나의 가치관과 취향을 남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세상을 보는 관점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권위주의적인 행태, 조직 생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고 내가 땅을 딛고 서 있는 곳의 편리함과 장점 보다는 단점과 문제점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보통의 사람들보다 좀 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마치 세상을 을뜯어 고쳐야만 하는 곳으로 여기는 마음도 수시로 들게 만들었다. 특히 불공정과 불공평에 대해 과하게 부정적으로 느끼곤 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지속적인 통증과 불편함 때문에 일상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자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 속에 항상 염증이 있고 자주 불안을 느끼니 지금 있는 현재 말고 저 어딘가에 더 괜찮은 현실, 더 나은 세상이 있을거란 생각을 지속적으로 만든다. 이 원리는 간단한데, 쉽게 말해 지금 현재 가만히 있을때 불편하니 저 어딘가에 더 나은 세상과 현실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의 불편한 현실에서 벗어나 저 어딘가로 가야 이 불편함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지금의 불편하거나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매일 환희와 즐거움이 넘치는 현실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는 (즉 돈으로 바른 현실) 착각, 더 높은 자리나 지위를 얻으면 역시 지금의 불만족스러운 현실로부터 벗어나 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즉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행동을 쉽게 할 수 있는 자원을 얻게 되므로) 착각, 지금의 불편부당해보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으로 가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란 착각이 바로 그런 착각들의 예시다. 이것이 착각인 이유는, 결국 몸 속의 끊임없는 염증과 뇌신경세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간의 정신은 다시 원래의 수준으로 계속 돌아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충분히 많은 돈과 자리, 지위를 얻었다고 해보자. 하지만 여전히 뇌신경세포 문제와 염증 상태는 불변이기 때문에 일상의 불만족엔 조금의 변화도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자원이 있으니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행위들에 중독되기 시작하는데, 이 때부터 더더욱 큰 문제가 발생한다.
뇌가 행복하지 않을때, 즉 뇌신경세포가 건강하지 않고 끊임없는 염증으로 뇌세포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그만큼 스트레스도 쉽게 받게 되고, 따라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도파민 추구 행위에 집착하게 된다. 이를테면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 술담배, 세상을 비웃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일, 마약에 준하는 그 외의 중독적인 행위들을 뜻한다. 돈과 지위와 같은 자원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이런 것들을 쉽게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럴수록 뇌신경세포는 더더욱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중독적이고 강렬한 쾌락을 쉽게 줄수록 우리 뇌는 점점 더 행복에 둔해지는 상태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마치 기계적으로 해석해서 '그럼 전보다 더 강한 자극을 주면 전과 동일한 쾌감을 느끼겠지' 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한마디로 말해 뇌신경세포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그냥 전과 동일한 쾌감은 영원히 느끼지 못하도록 변해버린다. 마약 중독자는 일평생 가장 처음 마약을 했던 그 순간의 쾌감과 동일한 쾌감을 다시는 얻을 수 없게 된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건강을 잃으면 일상 생활에서 끊임없이 불안과 불행감, 지루함, 괴로움을 느끼는 상태로 변해 버린다. 이는 곧 현실의 그 무엇에도 만족 못하게 만듦과 동시에 끊임없이 저 어딘가에 있는 파랑새를 쫓는 상태로 만든다. 현실은 늘 바꾸고 개선해야 할 무엇이 되고, 행복은 영원히 저 어딘가 멀리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목표를 세워서 현실에서 탈출시켜줄 것으로 보였던 것들을 하나씩 이뤄나갈수록,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함과 공허감만 남는다. 그 메커니즘은 바로 위에 설명한대로이며,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뇌가 느끼는 만큼의 행복 이상을 느낄 수 없다.
이같은 상태가 되면 점점 더 평범한 건강한 사람들과 소통할 거리도, 공감대로 삼을 것들도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잃게되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불건강한 사람들, 현실에 불만족한 사람들만 남는다. 불만족스러운 사람끼리 모여 또 그렇게 말이 통하니 그것 역시 하나의 공동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겠지만, 현실이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로 위안이 될지 모르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서로를 소모하는 관계로만 남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의 불행한 마음을 다른 사람을 소비함으로써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같이 불만족스러운 상태니 서로 소비할 것도 없고, 결국 시간이 갈수록 서로 피해만 주는 관계가 되어 버린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결국 뇌의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그래서 단기적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을 추구하면 할수록 뇌는 점점 더 불행한 뇌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많이 가질수록 독이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돈이나 권력으로 쉽게 산 도파민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그 때는 마치 마약 중독자들처럼 더더욱 불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뇌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 더 좋은 집으로 가면 다시는 그보다 더 적은 돈, 더 낮은 자리, 더 안좋은 집으로 갈 수 없다. 갈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죽고 싶을만큼 괴로워질 수 있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더이상 공급받지 못할 때처럼.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은 건강 위에서만 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 몸과 뇌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결코 그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없으며, 아무리 인간관계가 넓어도 결코 누구와도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나의 현실은 끊임없이 불만족스러운 것들 투성이로 느껴지게 된다.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이런 직업을 가지든 저런 직업을 가지든 마찬가지다. 이 사람 저 사람 그 어떤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어도 마음에 들지 않고 단점만 보인다. 따라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그것을 얻었다고 느낄 수도 없으며, 실제로 얻지도 못한다는 것. 사회적 관점에서 서류상으로 내 명의로 된 자산들을 만들고 관계를 규정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것을 점유하고 있거나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러면 내가 건강한지 불건강한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위에서 쓴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뒤집어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즉, 일상이 불편하고 지루하고 괴롭다면,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무엇을 반드시 하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해질거라 믿거나, 지금 이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믿거나, 빨리 뭔가를 이루고 얻지 않으면 내 인생이 망했다고 믿는다면 - 그것은 실제의 현실이 아니라, 그냥 내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낸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느낌,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감정,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즐거워야 한다. 다시 말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지만 - 즉 안그래도 일상은 여전히 편안하지만 - 그런 일들을 한다면 뭔가 더 멋질 것이라는 기대 위에 성립해야 한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나는 망한 것' 이란 생각 - 예를 들어,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가지 않으면 내 인생은 망한다는 생각이라든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나는 망한 것' - 좋은 자산을 갖지 못하면 내 인생은 나락인 것 - 이란 생각은, 그저 내 몸이 계속해서 건강하지 못해 뇌 속에서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현실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