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특이한 발언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임신중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아이의 자폐 가능성을 높인다는 말이었죠. BBC와 CNN을 비롯해 많은 언론들이 이에 대한 기사를 집중 보도했는데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트럼프가 한 이유가 뭘까를 두고 각 언론사들이 숨겨진 뒷이야기를 파헤치고 있는 듯 합니다.
우선 이 주장의 근원지는 현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인데, 트럼프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 사람의 말을 받아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FDA에서는 오랫동안 암치료 혹은 뇌 엽산 결핍증에 쓰이던 GSK의 wellcovorin 약 (성분명 leucovorin)을 자폐증 치료제로 승인 했는데요. 사실 이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최근 들어 약의 용도를 더 확대시켜 다른 질병에 쓰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이기도 하구요. 다만 시기적으로 너무 가까워서 혹시 이와 관련된 뭐가 있나? 의심하는 언론도 있는듯 합니다. 트럼프는 사실 타이레놀 뿐 아니라 아이에게 접종하는 백신도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 역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주장이며 역시나 과학적으로 검증이 아직 안된 이야기죠. 미국 비영리 기관인 자폐과학재단 대표 Alison Singer는 새로 발견된 연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트럼프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열과 통증을 극복하지 못한 산모에게 자폐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건가 하고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영국 자폐 연구 기관의 대표 James Cusack은, '증거가 없고,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매우매우 적다' 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Nature에서는 보스턴 대학 자폐 연구학자 Helen TagerFlusberg의 말을 인용해서, 잘 조작된 연구들일수록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와 트럼프의 이같은 주장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과연 타이레놀과 자폐와의 관련성이 있긴 한걸까요?
자폐는 주로 소통 장애, 사회적 교류가 불가능한 정신적 문제로 지능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자폐는 혈액 검사나 뇌 촬영 등 객관적 근거 보다는 주로 의료진의 관찰에 의해서만 진단되는 질병이고, 따라서 시기마다 국가마다 의료진마다 자폐 스펙트럼의 범위가 모호합니다. 미국에서 자폐가 2000년에서 2022년 사이 거의 5배 가까이 늘었지만 이것은 단순히 진단 기준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3년 아스퍼거 증후군이 자폐 스펙트럼에 포함된 바 있고, 방글라데시는 자폐 진단이 0.075% 밖에 안되는데 호주는 3.9%나 되는데 이 역시 진단 기준과 실제 진단 상황에 따른 통계적 착시로 보입니다.
타이레놀은 브랜드명이고 성분명은 화학식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른 방식의 차이에 따라 아세트아미노펜 혹은 파라세타몰로 불립니다. 타이레놀이 브랜드명 때문에 유명한거지 사실 수많은 제약회사가 똑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약을 만들고 있고, 그래서 코로나 때 해열제로 타이레놀이 동났을때 같은 성분의 다른 회사 제품을 먹어도 되냐 하는 질문이 많았었죠.
임신 기간 중 첫 3개월은 아이의 신경계가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만약 산모가 고열이 발생할 경우 이것이 태아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열제를 먹어야 하는데, 해열제엔 작용 방식에 따라 타이레놀, 이부프로펜, 아스피린 계열이 쓰입니다만 이 중 이부프로펜과 아스피린 계열은 태아의 신장과 심혈관계 등에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보고되어 있어 가급적 타이레놀을 쓰도록 권장되고 있습니다. 타이레놀은 신기하게도 여전히 완전한 진통 해열 효과의 분자생물학적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약으로 대략 4-5가지 메커니즘이 가설로 제시되고 있는 약입니다. 그래서 타이레놀이 안전하다는 이야기는 생물학적 메커니즘 상 안전하다는 게 밝혀진 게 아니라 그동안 임상에서 오래 써봤더니 별 문제가 없더라 하는 통계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나온 이야기 입니다. 물론 거의 모든 약이 그런 식으로 안전성을 테스트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죠. 그런데 특히 타이레놀은 매우 오랫동안 사용된 약이라 그만큼 다른 약보다도 임상 데이터 축적량이 방대하다고 할 수 있구요. 다만 여전히 간독성 문제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약이긴 합니다.
타이레놀, 즉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와의 관련성을 밝힌 연구들은 많은데, 최근의 연구로 여러 언론에서 다뤘던 연구로 JAMA, 즉 미국 의사협회에서 발간하는 전세계 4대 학술지의 2024년 스웨덴 연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1995년에서 2019년에 태어난 248만여명의 아이들을 2021년 말까지 추적했는데요, 이 연구에서 단순히 어머니가 산모일 때 타이레놀을 복용한 경우일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했을 때 자폐의 확률이 약간 증가했습니다만, 가족력과 같은 유전성향, 산모의 만성질환, 다른 약물 복용 ,경제사회적 요인을 통제했더니 오히려 자폐 확률이 줄어들었거나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다른 요인을 통제했다는 말의 의미가 중요한데요, 이를테면 산모에게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이 자폐 확률을 높일 수 있고, 자폐 등 정신질환 가족력이 있는 경우 두통 등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산모들이 타이레놀 복용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마치 타이레놀 때문에 자폐가 더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죠. 즉 이런 요인들을 모두 통제하고 나면 타이레놀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반대의 연구도 있긴 합니다. 2021년 6개국 유럽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 연구에서는 6개국 유럽 아이들 7만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타이레놀 노출된 아이들에서 자폐가 19% 증가했고,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는 데이터를 제외해도 여전히 어느정도 관련성은 있다더라 하는 결과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뇌 속에서 신경형성요소에 영향을 주는 BDNF 인자에 타이레놀이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슬쩍 언급했죠. 일단 과거 연구들에서 쥐에서는 타이레놀이 쥐의 신경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나오긴 했습니다.
2025년에 발표된 또 하나의 연구에서는 과거 46개 연구들을 종합해서 정리를 해봤는데, 대략 27개의 연구에서 자폐를 비롯해서 정신적인 질환과 타이레놀이 어느정도 관련이 있고 9개는 관련이 없고 4개에선 오히려 보호 효과, 즉 정신질환을 덜 일으키는 식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한편 2025년 2월에 발표된 산부인과 저널의 연구에서는, 기존에 발표된 타이레놀과 자폐 관련 연구들이 하나같이 데이터에 왜곡도 있고 측정 안된 다른 요인들이 많아서 이런 연구들의 결과를 믿을 수 없다, 증거가 없으니 현재의 지침 즉 산모가 고열이 있을 경우 타이레놀을 처방하는 지침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죠.
종합하면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까요? 실은 타이레놀이 자폐를 비롯한 정신신경계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은 아예 없다 라는 결론이 난 건 아닙니다. 한마디로 아직 잘 모르고, 그런데 현재까지의 연구들을 보면 관련이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으며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도 알고보면 다른 요인일 가능성이 더 높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임산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임신부는 기본적으로 모든 약을 안먹는게 좋습니다만 고열과 같은 경우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소량을 먹는 것으로, 이 때는 한마디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한다 라는 개념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임신 중에는 타이레놀 뿐 아니라 사실 수많은 악성 요인들, 즉 산모가 받는 스트레스라든가 산모가 앓고 있는 만성질환, 산모가 먹는 자극성 있는 음식과 수면 문제 등등이 많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은 그런 모든 외부 악영향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기구를 갖추고 있구요. 고열일 때 열을 낮추기 위해 타이레놀 좀 먹는다고 과연 그게 그렇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정 걱정되면 임신중엔 임의로 약을 사먹기 보단 어떤 증상이 있든 담당의랑 상의하에 소량 복용하는 게 좋겠죠. 뭐든 남용만 안하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