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하는 관계

by 치의약사 PENBLADE

몇 번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연기 역시 하나의 예술 활동으로서 오랫동안 수많은 배우들이 탐구해온 역사가 있고,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는 데 있어 연기 수업은 매우 도움이 될거란 생각에서였다. 연기를 하는 사람에겐 마치 공기처럼 상식적인 것이지만 일상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연극 연기든 매체 연기든 액션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리액션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극중에서 누군가 상대 배역에게 말을 걸거나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반드시 그에 대해 말로 응수를 하거나 행동으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무반응을 해야 하는 상황은 어떨까?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가 질문을 던졌지만 상대 배역은 그 질문을 무시하고 아무 대꾸도 없는 상황을 보여주어야 하는 설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아무 대꾸없이 무시하는 행위 혹은 표정, 몸짓 자체가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무시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매체에서는 카메라 웍으로 포커싱을 잡는 방식으로라도 관객들에게 '이 사람이 상대를 무시하고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액션 - 리액션은 생물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세포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세균이든 원생동물이든 생물을 구성하는 개별 세포든 모든 세포는 주위 환경 변화의 신호를 화합물 혹은 전기 자극으로 받은 후 반드시 그에 대해 반응한다. 물론 그 자극이 충분히 크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지만 그것은 반응할 필요가 없을만큼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이든 그 자극이 커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반드시 반응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평소 긍정적으로 여기는 자극 또한 마찬가지다. 뭐든 과하면 반드시 세포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자극이 오면 반응을 해야 하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 세포는 이미 죽은 세포에 해당한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 세포 사이 역시 끊임없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소통한다. 이 소통 자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구성되며, 만약 세포들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즉 액션 - 리액션이 나타나지 않으면 면역 세포는 해당 세포를 죽은 것으로 파악하고 파괴해 버린다. 죽은 세포는 오염물질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세포들의 집합체, 즉 사람과 같은 생물체 역시 당연히 끊임없이 액션과 리액션을 하며 존재한다. 사람은 여기에 다른 동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의식과 무의식까지 고도로 발달했기에 이같은 액션 리액션을 훨씬 더 민감하게 탐지한다. 우리 몸과 뇌는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으며 작든 크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끊임없이 몸 전체에서 외부 자극에 반응하고 또한 외부에 자극을 주면서 존재한다. 몸 속에 존재하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보다 더 많은 세균과 우리 몸의 면역 세포들은 끊임없이 서로 견제하며 평형을 이루고 있고, 조금이라도 면역 기능이 줄어들면 그동안 우리에게 유익한 도움을 주었던 세균들이 갑자기 돌변해 우리 몸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몸의 존재 원리를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이 모를리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에 대해 어떤 반응도 없다면, 그것은 상대방과 내가 더이상 의미 있는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서로 무시하는 관계는 단 하루도 지속될 수 없으며, 만약 상대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따질 일이 아니라 바로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상황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무엇이 진정 '무시' 인지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데, 이것은 무시와 열등감, 낮은 자존감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의 여러 사회적, 외적 조건들 - 재산, 학력, 외모, 집안, 직업, 인종 등등 - 을 들먹이며 비하했다면, 그건 엄밀히는 무시가 아니라 A 스스로 가진 열등감을 B를 공격 함으로써 푸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A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갖고 있는 B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낮다고 생각하는 B의 조건들을 들먹인 셈이다. 이 때 B가 A에게 버럭 화를 냈다면, A와 B 모두 액션 - 리액션을 통해 일종의 관계를 만든 셈이다. 복잡하지만, A와 B는 사실 이런 식의 액션 - 리액션을 지속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 있는 자극과 반응의 관계를 구축했을 수 있고,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서로 상처 주면서도 결국 서로 필요한 관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것은 진정한 무시가 아니며, 그냥 둘 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 서로 의존하는 관계일 따름이다.


진정한 무시는 그보다 훨씬 더 일상적이고 겉보기에 사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바로 A가 일상에서 시시각각 질문을 하거나 말을 걸지만 B가 대꾸를 하거나 듣는 척을 하지 않는 것, 상대의 삶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무시를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면 B도 자신이 필요할 때 즉 A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는 순간에는 A의 말이나 행동에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무시는 언뜻 보기에 매우 사소해 보이며,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많은 일상 생활을 고려할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에 대해 친구나 지인에게 A가 호소를 한다면 들어주는 친구나 지인들도 처음에는 잘 들어주다가도 어느 순간 A가 너무 예민하게 굴거나 사소한 것을 확대 해석한다고 말해줄지 모른다. A 역시 마찬가지로 뭔가 B에게 무시받는 느낌 혹은 존재감이 사라진 느낌을 받지만 이내 곧 자신이 너무 예민한 거라 수긍 해버리게 된다. 그리곤 모든 것이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상대가 여유 있을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 탓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느껴지는 인지 부조화를 애써 외면하게 된다.


의외로 보통의 인맥 범위에 속하는 지인, 직장 동료나 선후배, 사회적 관계에서는 이처럼 '진정으로 서로를 무시하는 마음' 이 있어도 평생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왜냐면 어차피 서로 필요할 때만 상대를 이용해도 괜찮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친한 친구, 연인,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 자주 보는 관계일수록 액션 - 리액션이 없는 무시 관게는 결코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때로는 그저 관계라는 형식에 얽매여서 오히려 스스로의 영혼을 파괴하고 혼자 있을 때보다 같이 있을때 오히려 더욱 외로운 관계가 될 수 있다. 혼자 있을때는 액션 - 리액션이 일어날 일이 없으므로 알아채지 못하지만, 같이 있을때 자신이 심적으로 친밀하게 의존하고자 하는 상대와 액션 - 리액션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감각 자체가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혼자 있을때보다 더 외로운 상대라면, 결국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반드시 어긋난 길을 걷게 된다. 그 사이에 여러 '결정적 원인'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더 근본적 원인은 결국 누군가 상대를 마음 깊숙히 무시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상황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무시하는 상대방, 즉 위의 상황에서 B에게 있지 않다. 바로 B에게 지속적으로 무시 받으면서도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A에게 있다. 애초에 A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았기에 A 주위에는 끊임없이 A를 맘편히 무시하면서도 A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 뿐이다. A가 만약 평소 스스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감정과 기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B와 함께 있는 동안 충분히 액션 - 리액션이 없어 존중 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것이 B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확신을 가지면 행동으로 옮긴다. A가 그동안 B를 그대로 놔둔 것은 B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확신을 가졌다면 A는 안심하고 B로부터 벗어났을 것이다.


'무시'는 한 개체의 생존 여부를 가를 정도로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A가 속한 직장에서 A의 지위가 무시 받고 있거나 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무시 받는 상황이라면 장기적으로 A는 그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결코 찾을 수 없다. 남녀가 모여 있는 그룹에서 A가 무시 받는 상황이라면 A는 결코 그 속에서 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A가 사람이 아닌 어떤 생명체든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이며, 그런 상황에서 A는 결코 생물로서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 생존 및 번식 - 을 이룰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자신이 무시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오직 하나 - 액션 리액션 - 만 보는 것만으로 확신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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