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명상 방법이 개발되어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명상의 효과를 체감했다는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최근 학계에서도 명상의 효과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 해왔다. 아직 명상이 무엇이고 어떤 명상이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분분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명상을 하든 장기적으로 명상이 여러가지로 인생에 큰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명상 체험자들이 공감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명상 수업과 명상 모임, 개인적인 명상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그 효과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명상의 원리를 뇌과학적으로 설명한 연구들도 꽤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러지 않을까' 하는 추정에 머물러 있다. 다만 그동안 명상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사람들과 뇌의 관점에서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의식 상태 중에는 깊이 생각에 잠겨 과거를 회상하고 주변 상황을 민감하게 살피는 DMN 모드 상태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문제가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구상하거나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뭐든 과한 것은 문제가 되듯 DMN 모드 역시 과해지면 문제가 시작된다. 만성적인 불안을 겪거나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 과도하게 DMN 모드에 빠질 수 있는데, 이 때는 생각 중독에 빠지거나 불안을 해소할 것으로 착각하는 어떤 중독 대상에 만성적으로 빠질 수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DMN 모드에 빠져 사실상 중독 상태에 이르면 시야가 좁아지고 현실을 정확히 판단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감각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이로 인해 현실을 오판하고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러 점점 더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길로 스스로를 이끌게 된다.
명상은 이 때 그렇게 DMN 모드에 과도하게 빠져 있는 상태를 알아차리고 본래의 자기 자신을 느끼는 것을 도와주는 수련에 해당한다. 명상할 때 기본이 되는 것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호흡과 몸의 여러 감각들을 제3자의 관점에서 지켜보고 알아차리는 것인데,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평소 불안이나 생각 중독에 머물러 있는 자신이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깨닫는다고 했지만 이는 의식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것은 반복되는 명상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몸으로 느끼게 된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겠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그럼 왜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것이 내가 아니라 진짜 내가 따로 있다는 것을 깨우쳐야 하냐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나만의 해석인데,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상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만약 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살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를 알기 위해선 건강하지 않은 상태, 즉 내가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건강한 상태라는 것은 결국 내 몸을 이루는 장기들과 혈액, 뇌 등 전체 시스템이 안정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최상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염증이 발생하면 나의 생각도 그 원인을 찾고 그런 염증에서 비롯된 불만족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에 빠지고 중독 대상을 찾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 내 해석이다.
이는 결국 내가 앞으로의 인생에 확신을 갖고 행동을 취하고 선택을 하기 위해선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이를 필요가 있으며, 바로 그런 상태여야 어떤 행동을 취할지, 어떤 선택을 할 지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내 몸이 스스로 오랫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내 몸 속 즐거움과 행복,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는 수용체들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라는 의미이며, 당연히 그런 상황에 이르러야 더 확신 있는 선택 - 즉 나를 더 즐겁게 해주며 고통을 피하는 - 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하는, 진짜 내가 확신을 갖고 할 수 있는 선택들은 사회적 위치나 조건을 취득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과는 배치될 수 있다. 그리고 대개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실수를 많이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누가 봐도 좋은 직장, 즉 높은 연봉과 탄탄한 미래가 보장된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직장은 다른 사람들에겐 모르지만 어떤 알 수 없는 여러가지 이유로 나의 영혼을 갉아 먹고 내 몸을 지속적으로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이유 하나하나를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만족하고 다닌다면, 내 몸에서 나타나는 그런 반응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평가는 내가 그 직장을 다니며 힘들어하는 것이 나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 문제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회적 관점에서 '합리적인' 선택, 즉 그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것을 유지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망가지게 되지만 좀처럼 거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 즉 생각이 많고 어떤 대상에 중독된 상태 - 대개는 외부 인정과 돈 - 를 유지하게 되어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렸으므로 당연히 그 어떤 확신 있는 결정 - 직장을 바꾼다든지 - 도 할 수 없다. 그냥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점점 더 외부 인정과 돈에 중독된 채 스스로를 끊임없이 망가뜨리며 살 뿐이다. 그런 경우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점점 더 자신의 인생을 놓치면서도 그냥 그게 최선이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합리화를 하게 된다.
나 역시 불안으로 오랫동안 생각 중독에 빠진 상태로 사는 동안엔 도무지 내가 누구인지 그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 당연히 그 어떤 선택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으며, 늘 세상과 내가 동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명상 경험이 반복되면 될수록, 점점 더 내가 누구인지 - 즉 건강한 상태의 내가 누구인지 - 를 느끼고, 그래서 어떤 선택들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분명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이 세상과 인생을 규정하려는 모든 말과 문장들이 전부 실체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지금 전쟁을 하고 있지만,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누군가는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잔잔했던 일상이 더욱 전쟁처럼 느껴졌고 지금은 오히려 눈 앞의 적을 치우는, 좀 더 흥분되고 삶의 활력이 솟는 상태로 느낄 수도 있다. 미래가 보장된 직장을 다니는 어떤 직장인은, 실제로는 그냥 하루하루 품 속에 사표를 넣고 다니는 사람의 감각으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친구 목록에 수많은 친구들이 있고 직장 인간관계, 결혼 관계에 속해 있는 어떤 사람은 사실은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혼자라는 감각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누구와도 공식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그 때 그 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사실상 모두와 연결된 상태나 다름 없을 수도 있다.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삶을 되찾는 것 뿐이다. 앞으로도 명상을 하면서 명상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