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의 건강 관리

by 치의약사 PENBLADE

활력이와 예민이라는 사람이 있다. 활력이는 열정이 넘친다. 직장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집에서도 밤을 새면서까지 자기 계발에 몰두한다. 그로 인해 느끼는 성취감과 금전적 보상은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업무상 술자리가 많은데, 활력이는 그래서 다량의 영양제와 함께 간장약을 여러개 복용한다. 때로는 병원에서 수액도 맞는다. 술을 마시고 잠을 적게 자도 이것저것 기능성 영양제를 집어먹으면 뭔가 몸에 힘이 솟는 것 같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도 마시고 헬스장 PT를 끊어 운동도 열심히 한다. 업계 사람들과 자주 맛있는 것들을 먹으러 다니다보니 살도 많이 쪄서 요즘은 비만약을 복용하고 있다.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경우 업계 사람들과 익스트림 스포츠나 유흥을 즐긴다.


활력이는 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많다. 활력이가 과로할수록 GDP는 성장하고, 그렇게 늘어난 국가의 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충분한 복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한다. 활력이가 술을 많이 마실수록 주류 기업과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수입이 올라가고, 에너지 드링크와 영양제를 먹을수록 관련 식품회사와 제약회사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이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된다. 병원에서 수액을 많이 맞을수록 병원과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혜택을 보며, 수액을 제조하는 국내 업체도 매출이 오른다. 헬스장 PT를 끊으면 피트니스 업계 종사자들의 수입이 오르고, 업계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을수록 요식업계 자영업에 돈이 돌며 비만약을 자주 복용하면 해당 제약회사와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연구자들 근로자들이 돈을 번다. 스트레스로 익스트림 스포츠와 유흥을 즐길수록 해당 업계 사람들도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다.


몸을 무리하면 아무리 영양제를 때려 넣고 비만약을 먹고 운동을 해도 몸은 점점 더 균형과 건강을 잃게 된다. 하지만 타고난 체력이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며 그로 인해 축적된 몸의 문제는 중노년 즈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는 그다지 손해가 아니다. 활력이가 몸을 무리해서 살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런저런 소비로 풀수록 국가 경제는 활성화되고 그로 인한 혜택은 국민 전체가 누릴 수 있게 된다. 활력이같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득을 볼 것이고 만약 누군가 손해를 본다면 그것은 중노년이 되어 몸이 망가진 활력이 뿐이다. 그러나 활력이는 이미 젊은 시절 충분히 잘 살았고, 인생을 즐겼고, 많은 활동을 했으며, 자산도 축적했을 것이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어쩌면 그 때는 의료가 더 발달해서 망가진 몸도 회복 시키는 의료 기술도 더 발달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활력이는 그동안 모은 자산으로 그런 의료 기술 구입에 돈을 쓸테고, 관련 의료 기술 업체는 더 훌륭한 기술 개발에 힘쓸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반면 예민이는 활력이만큼의 에너지가 없다. 쉽게 지치고, 에너지가 적다. 그래서 일찍부터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술도 안먹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친한 사람들과 가볍게 식사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즐기는 식으로 소박하게 한다. 아무래도 인간관계가 넓지 않으니 업무 성과도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수입도 활력이만큼 좋지 않기 때문에 소비도 최소로 한다. 운동은 저렴한 헬스장을 끊어서 적당히 혈액순환만 될 정도로 깔짝깔짝 하고, 시간 날 때 동네 한바퀴 러닝을 한다. 취미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독서 모임 참석, 영화 동호회 같은 것을 하며 크게 돈 쓸 일도 없다. 식사도 몸에 맞게 소식하며 따로 영양제를 먹지도 않고 병원에는 가끔 감기가 걸리면 갈 뿐 그다지 갈 일이 없다.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 반대급부로 유쾌하고 쾌락적인 활동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만약 세상에 예민이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경기는 축소되고 돈이 돌지 않으며 기업과 자영업의 매출은 줄어들고 고용은 축소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예민이 같은 사람들은 점점 더 일자리를 찾거나 수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예민이는 현재 나가는 돈 별로 없이 자기 자신의 몸에 맞는 인생을 잘 살고 있으며 의료보험이나 연금, 세제 혜택 등 여러가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예민이 같은 사람들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 그와 같은 복지 혜택도 줄어들게 된다. 예민이 같은 사람들은 거의 소비를 하지 않은 채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예민이와 같은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비용이 되며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데 별 도움도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상황은 예민이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최소 숫자를 유지하는 것이며 그것이 예민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좋다.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유사 이래 사회는 늘 이와 같았다. 자기 몸을 던져서 더 무리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었고, 그럴수록 예민이 같이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부족함 없이 자기 삶에 맞는 인생을 잘 꾸리고 살 수 있었다. 만약 활력이가 정말로 자기 건강을 제대로 챙기고 살기 위해선 잠도 충분히 자고, 욕심을 줄여 일도 적게 하고, 영양제를 때려 넣거나 수액을 맞는대신 소식 하며 매일 아침 공기를 쐬면서 러닝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업계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도 줄이고 술도 안먹고 모임 역시 온라인 플랫폼으로만 진행하는 것이 돈도 아끼고 좋다. 하지만 더 많은 활력이들이 그럴수록 경제 성장의 동력이 사라지고 활력이 뿐 아니라 예민이 같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전보다 점점 더 힘든 삶을 살게 된다.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사회의 이런 모순과 같은 현상을 눈치챈다. 그로 인한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어 어떤 이들은 그래도 몸을 갈아 넣어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고, 그게 답이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심플한 인생, 욕구를 줄인 삶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전체의 측면으로 보면 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몸을 갈아 넣을수록 모두가 더 많은 혜택을 볼 여지가 커진다. 성장 뒤에 잠시 멈춰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장 없이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다. 자연스럽게 사회의 주류는 몸을 갈아 성장을 촉진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몸을 사리고, 책임을 덜 지고, 소박하지만 자기 몸에 맞는 삶을 추구하는 예민이와 같은 사람들은 무시 받고 심지어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예민이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 사회의 성장은 정체될 수 있고, 예민이와 같은 사람들은 점점 더 이전과 같은 혜택을 누리며 살기 힘들어진다.


예민이는 살면서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 수 있다. 이같은 사회적 압력은 가족이나 사회 여러 방면에서 간접적으로 가해지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한다' 라든가 '액티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사회성을 키우고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라는 말을 들으며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검열하고 열등한 기능으로 여기게 될 수 있다.


어떤 경우 예민이는 이같은 구조적 모순에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다. 경제성장 뒤에 빈부격차가 커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며 환경이 파괴되는 현상, 그로 인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덜 행복하게 살 수밖에 없는 모순 혹은 후속 세대들의 미래가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문제제기는 반드시 필요하며, 성장만을 강조하는 문화는 오히려 인간의 탐욕을 끝도 없이 자극해 양차대전과 이후 냉전시대처럼 서로를 파괴의 늪으로 빠뜨리는 고속도로로 이끌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속 가능한 성장의 문제이지 성장의 동력을 꺼뜨려야 하는 당위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문제제기는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누군가가 계속 제기하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의 예민이가 경험하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모순처럼 보이는 문제가 해소될 미래에는 또다른 모순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인데, 이것은 그냥 생태계를 비롯한 인간 사회의 근본 속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예민이는 좀 더 세심하게 삶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고 자기에게 맞는 삶을 사는 것은 한편으로 누군가의 비난이나 무시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삶의 방식을 사회 주류를 향해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거나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는 것 역시 인지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사회 주류가 더 많이 무리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에 맞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인식하는 것이 자기 현실을 좀 더 바로 보는 길일 수 있다. SNS나 소셜 미디어에서 과소비를 뽐내는 사람들이 주목 받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그런 세태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것은 자기 삶에 감사할 줄 모르고 남의 시선에 휘둘리는 자신의 문제에 불과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SNS와 소셜 미디어로 기업들의 광고주 역할을 할수록 경제는 더욱 원활히 돌아가며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소비 세태가 보기 싫으면 그냥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결국 예민이가 자기 건강 챙기고 자기에게 맞는 삶을 사는 것은 조용히, 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아야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은 늘 사회의 소수에 해당하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떠들썩하지 않게 삶의 지혜를 나누고 공감하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사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데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이유가 없고, 자기 몸에 맞는 심플한 라이프를 자랑할 필요도 없다. 사회는 그런 인식이 퍼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만약 그런 사람들이 주류가 된다면 그 사회의 성장 동력은 멈추게 되므로 그 때부턴 탈출 전략을 세워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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