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결혼 출산을 안하는 이유 - 물론 SNS나 소셜 미디어 때문에 눈이 높아진 것도 맞다. 과거보다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서 자기 삶을 희생할 의지가 약해진 것도 맞다. 그런데 그런 문제라면 프랑스처럼 동거하에 출산한 아이에 대해서 양쪽에 책임을 부여하는 정책을 만들 수도 있고 과거의 결혼 제도가 가진 문제들을 지금 시대에 맞게 수정할 방법도 많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보다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대간 빈부격차가 너무나 벌어져서 지금의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부를 축적할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것이 진짜 원인이라는 사실을. 상속 자본 없이 맨 땅에 헤딩해서는 정상적으로 독립적인 가정을 꾸려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흔히 하는 착각이, 청년들이 욕심이 많아 그렇다는 생각이다. 이게 정말 대단한 착각일 수밖에 없는게, 생물로서 연애를 하고 짝을 찾아 자손을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번영시키는 것은 그 어떤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어떤 거대한 성공적인 사업체보다도 더욱 강한 본질적인 욕망이다. 그 욕망을 포기했다는 건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상황에 맞게 욕심을 극단적으로 줄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욕심을 줄였으니 도파민에 의한 강한 의지력이나 욕구도 생기지 않고 그저 자신의 현재 상황에 지극히 만족하는 태도를 가질 뿐이다. 즉 지금의 청년들은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욕심이 적고, 자기 만족적인 삶을 사는, 여러 종교나 윤리학과 철학에서 말하는 안분지족, 소박한 행복에 만족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같은 빈부격차 문제는 한정된 자원인 토지를 둘러싼 문제로, 토지로 인한 빈부격차 문제는 인류 역사 내내 있었던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 획기적인 기술 발전 없이는 이 문제가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기성 세대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중요한 자원을 먼저 확보하면 자발적으로 놓고 싶어하지 않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이를 정치권의 정책에 기대서 해결하기를 바랄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도 늘 토지 소유와 관련된 개인간 빈부격차가 극심해질 때마다 내전이나 혁명이 있었고 국가간 전쟁은 늘 양질의 자원을 가진 토지 점유를 둘러싸고 이루어져 왔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을 둘러싼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도, 가자지구를 비롯한 거주 구역을 둘러싸고 수십년간 지속된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 이란 전쟁도, 최근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나토 국가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중국과 대만 간의 갈등 역시 결국 땅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갈등이다. 가장 최근의 태국과 캄보디아간 갈등, 중국과 인도 국경 사이의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조용한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내전이 일어났을 경우 희생된 숫자만큼의 아이들이, 애초부터 저출산에 의해 태어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중국이 정확한 통계를 내놓지 않아 정확한 정보를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중국의 출산율 역시 우리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인력과 인구 구조를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 정권을 유지해온 중국 시진핑 정권의 특성상 인구 위협이 계속되면 결국 중국 정부는 대만 침공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에 손을 댈 수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전쟁이 날 경우 중국 역시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를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아직은 위협에 그치고 있지만, 극단적 상황에 몰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국제 관계다.
한 때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유럽의 상황을 보거나 현재 분쟁을 겪고 있는 다민족국가들 상황을 보면 이민으로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 생산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로봇이나 AI 등등의 자동화 기기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산성 문제를 떠나 한 국가의 남녀가 생물학적 파업을 선언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국가가 생존력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저출산 문제는 단순한 인구 문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냥 이곳이 살만한 곳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결국 문제 해결 방안은 몇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텐데 하나는 어떤 기술 발전에 의해 직장들이 지리적으로 몰려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전국에서 모든 인재를 끌어모아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만약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만들어진다면 기업들은 인재 확보를 위해 반드시 중심 지역에 몰려있을 이유가 없고 근로자들 역시 자기 수준에 맞는 지역을 얼마든지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지금과 같은 재택 근무 형태는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마치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과 같은 멀티버스 기술 등등이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수도 이전이나 지방 개발일 수 있지만 이것은 그냥 정치적 구호나 별다른 효용 없는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 사람들이 자꾸 수도로 몰리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고 다만 우리는 그로 인한 악영향과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난 것 뿐이다. 따라서 정책으로 이 거대한 흐름을 흩어놓기는 쉽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수도 외의 지역이 개발되려면 결국 그만큼 그 곳에 돈이 돌아야 하며 그 말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고정적인 일자리와 수입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는 앞서 말한 해결 방안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부차적인 방안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직장과 거주 지역의 공간적 위치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일자리가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이고 아마 가능한 일자리들부터 그렇게 해야 할텐데 그렇게 하기 위한 기술들은 지금으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AI 로봇이 더 발전하다보면 그로 인한 부수적 기술로서 또 금방 개발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