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내향형

by 치의약사 PENBLADE

MBTI가 과학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향성 / 외향성은 성격 이론 빅5에도 나오는 것이고 특히 극I와 극E는 뚜렷이 구분되는 성향인 것이 분명하다. 물론 한국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극 E형은 사회 생활에 최적화된 성향이라 극 E형은 대부분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다. 사업이든 뭐든 극 E 형은 여러 면에서 성과도 잘내고 인정도 받는 것 같다.


나는 극 I 형인데 극 E 형은 극 I 형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느낌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꽤 E 형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나같은 I 형들을 만났을 때다. 그러고 보면 나는 또 극 I형은 아닌가? 잘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I형만 보면 신나서 말이 많아지고 비로소 내 세상에 온 것 같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는 I 형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실은 거의 모든 일 자체가 I형만 모아놓으면 과연 그게 될까 싶은 게 있다. 굳이 떠올려 본다면 출판 업계가 좀 그럴까? IT 업계도 I가 많다지만 일을 추진하는 것은 E 형이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일할 때 만나는 E형이 너무 피곤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어쨌든 E형은 I형을 알아보는 게 분명하고 개중엔 어떻게든 호구 삼으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내가 극 I 형이라고 짐작하는 이유는, 실은 사람을 아예 안보면 엄청나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고 E형과는 한 공간에 있기만 해도 불안하고 기가 빨려서다. 하지만 I 형은 아무리 많아도 오히려 더 충전되는 느낌이라 대체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E 형들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 같은 건가?


내 관점에서 볼 때, E형은 돈과 상관 없이 무조건 사회 생활 계속 해야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나도 일을 계속 하고 싶고 세상엔 하고 싶은 일도 많지만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그 일이 단독으로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늘 E 형들과 얽혀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E형을 모두 싫어하는 건 아니고 친구들 중에도 E 형이 많은데 그게 그러니까 친구일 때와 일할 때가 너무 다르다. 아마 친구들 중에도 친한 E 형과 함께 일하면 서로 바이바이 하게 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파이어를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 I 형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일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나도 연구직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모든 것이 인터넷 클릭으로만 진행되는 상태에서 오로지 I 끼리 연구만 하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그 쪽으로 가고 싶다. 직장에서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 중 E 형이 꽤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같은 I 형은 아무리 권한을 많이 갖고 내게 피해를 주려고 노력해도 1도 타격이 없다.


학부 동기 중에 졸업 후 서울 의대에 편입했지만 개원도 안하고 일도 별로 안하는 동기도 있다. 극 I 형이라 원래 그냥 연구직 갔어야 했는데 걍 의대 열풍에 휩쓸린 것. 진짜 연구가 너무 잘 어울릴거라고 모두가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럼 왜 연구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실은 그 친구가 관심 있던 연구실이 너무 정치적으로 돌아갔던게 큰 타격이었던 듯 하다. 지금은 쉽지 않겠지만 그 시절엔 괴로울만큼 정치적인 분위기의 연구실이 많았다.


나는 사회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정신적으로 지쳐갈 때 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나 자신을 많이 살펴봤는데, 분명 극 I 형은 입력이 과하면 신경세포가 손상을 입거나 염증이 생기는 게 분명하고, 모든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내면화 해야하는 것 같다. 즉 내 세계를 만들어서 거기서만 즐거움을 뽑아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정신적 만족감을 만드는 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더라. 생각해보면 내가 살면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 성취감 대부분은 현실에서 남들 보기에도 우와 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들 뿐이었다.


아직은 뇌과학 연구 기술이 세밀하지 않지만 나중에 살아있는 인간의 뇌의 신경세포 하나하나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이미징할 수 있을만한 기술이 개발되면 극 I 형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론들과 극 I형들이 더 잘 살기 위한 인생의 진로 매뉴얼 같은 것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극 I 형은 일찍부터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갈 수 있는 길과 절대 가선 안되는 길이 있다는 것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그 성공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성공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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