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생각-불안의 연결고리 그리고 뇌가 만들어내는 거짓 소설
마음의 평안을 얻고 인생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생각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은 고대 동양 철학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최근까지도 없었고, 이러한 조언은 과학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영적 가르침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시작된 Michael Gazzaniga와 Roger Wolcott Sperry의 분할뇌 연구는 ’우리가 알던 나는 실제 내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했고, 이후 의식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생각의 기능과 문제점도 속속 밝혀졌다.
분할뇌 연구의 핵심은 우리 좌뇌가 현실을 왜곡해서 해석한다는 대목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까닭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답답할 때, 좌뇌는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 그럴듯한 설명을 붙인다는 뜻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만난 남녀가 끌리는 이유는 위험을 헤쳐나갈 때 느끼는 도파민을 상대방의 매력으로 판단하기 때문이고, 덧없는 걱정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단지 몸이나 뇌에 이상이 생겼을 뿐인데도 그 원인을 설명하려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지어내기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물론 최근에는 인간의 뇌가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커넥톰’으로 작동한다고 보지만, 아직 그 메커니즘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좌뇌가 생각을 담당한다고 흔히 말한다. 다만 핵심은 좌뇌가 아니라, 우리 뇌가 현실의 원인을 설명하려고 지어낸 거짓을 스스로 철석같이 믿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의식’, 그리고 ‘불안’과 직면하게 된다. 불안이 깊어지면 우리는 이를 해소하려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엮어 소설 같은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나’라는 자아의식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부분은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여러 이론이 서로 상충할 뿐 아니라 현대 과학 기술 수준으로는 아직 완전히 규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뇌과학 연구자, 명상이나 종교를 깊이 탐구해 온 사람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공통점이 보인다. 몸이나 뇌에 이상이 생겨 불안이 깊어지면, 이 불안은 계속해서 생각을 잉태하고 그 생각은 결국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우선 거꾸로 되짚어보자. 일단 과도한 생각이 자신을 불행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이유는 현실을 잘못 해석해 대응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내 몸에 영양이 부족한 상태라고 하자. 그러면 나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과도한 생각이 눈앞의 음식을 보고 ’이 음식은 감염되어 나를 해칠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바람에, 사실이 아닌데도 나는 그 음식에 손대지 않게 되고 결국 영양 부족 상태가 악화되어 몸은 점점 더 쇠약해진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해보자.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일 수도 있고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생각이 과도하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라고 단정해 버리면, 나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단 한 번의 시도, 즉 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조차 하지 않게 된다.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질 기회를 차버린 셈이다.
그런데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우선 과도한 생각이 실제로 현실을 왜곡한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이것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며, 과학적으로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았다. 60년대 Gazzaniga의 분리뇌 연구가 유명해진 이유는, 당시 간질 때문에 좌뇌와 우뇌가 분리된 환자가 상황을 소설처럼 지어내 해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좌뇌가 현실을 오독해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것을 그대로 믿었다. 그때부터 우리 뇌가 현실을 제멋대로 해석한다는 이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며,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생각이 많아질수록 현실을 오독하는 경향이 심해진다는 근거도 속속 제시되었다. 또한 불안할수록 생각이 증폭되고 그로 인해 현실을 오독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추정할 근거 역시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역시 근거가 탄탄하지는 않다. 다만 마음과 생각, 의식, 불안을 비언어적 방식으로 오랫동안 연구해 온 동양 철학, 불교 수행, 명상, 마음챙김 같은 분야들이 서로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불안 → 생각 증폭 → 현실 오독’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성립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생각을 억지로 줄이려는 시도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핵심은 생각을 의식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없애기 위한 여러 처방 자체다. 예를 들어 명상과 마음 챙김도 신비롭거나 영적인 측면이 아니라, 뇌의 특정 회로를 안정화하는 ‘근력 운동’처럼 접근하는 것이 맞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든, 어떤 소리나 공간을 활용하든,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든, 핵심은 그런 행위 자체가 뇌의 불안 관련 신호 전달과 생화학 반응을 완화한다는 점이다. 이를 불완전하게나마 실험으로 밝힌 연구도 꽤 있다.
운동과 깊은 수면, 식단 조절뿐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을 찾고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등, 이 모든 것은 몸이나 뇌와 별개가 아니다. 불편한 공간에서 껄끄러운 사람들 속에 있기만 해도 뇌에 실제로 염증이 생기는데, 이 신호가 몸 구석구석의 장기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부지기수다. 물론 과학적으로 엄밀히 맞다고 하기엔 기술 및 인간 연구의 한계로 아직 미흡한 지점이 많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이 직감으로 ‘혹시 그렇지 않을까?’ 하고 느꼈던 것들이 하나씩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온 역사를 보면 이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많은 전제를 ‘맞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비로소 불안을 자주 느끼는 예민한 사람들이 평생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그것은, ’행복‘처럼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다. 사실 ‘행복’이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행복’이라는 감정이 삶의 목표로 삼기에는 실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그보다는 ‘불안’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워 평생 그 불안을 다스리는 것을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 편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쉽게 불안을 느끼는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왜 쉽게 불안을 느낄까? 왜 그렇게 예민하게 태어났을까? 이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그 원리를 알 수 있는데, 요컨대 어떤 기능을 타고난 대가로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쉽게 동요하는, 일종의 트레이드오프 같은 특성이다. 어떤 특성을 타고났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람의 뇌세포나 감각신경 세포는 모두 기능이 뛰어날수록 쉽게 지치고 염증이 생기기 쉬운 구조라는 점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수많은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고, 수많은 사람과 단시간에 교류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 복잡한 환경에서 이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쉽게 소진되고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여기에 어느 나라보다 변화가 급격했던 한국 특유의 상황과, 일제 강점기와 전쟁, 독재 시절을 거치며 상처와 트라우마를 겪은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은 후성유전학적 영향까지 겹치면서, 오늘날을 사는 예민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쉽게 불안에 잠식된 나머지 생각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현실을 오판하여 결국 인생을 조금씩 불행의 나락으로 이끌게 되었다.
‘불안을 줄이려면 이렇게 하라’는 조언들이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지금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상황이라, 불안정하고 예민한 뇌세포나 감각세포가 감당해 본 적 없는 상황이다. 결국 특별한 방법론을 안다고 주장하는 소위 ‘전문가’를 찾아다니기보다는, 이미 알려진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선 불안을 완화하는 정신과 약이 큰 보탬이 될 것이고, 명상이나 마음가짐, 식단과 수면, 규칙적인 운동 역시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관건은 삶의 경로 자체이다. 욕심을 어느 정도 줄여서라도 자신에게 맞고 흥미가 지속되며 마음이 편안한 진로를 찾아 그런 사람들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는 것, 자신과 맞지 않거나 마음을 괴롭히는 사람은 최대한 멀리하고 가까이해야 한다면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쏟아지는 온갖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흥미와 마음이 향하는 곳에만 집중하는 것 등이 중요하다.
생각을 줄이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그보다는 생각을 결과나 상태 변수로 보고, 생각이 줄어드는 활동, 공간, 사람, 진로, 처방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해법이다. 불안이 잦아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저절로 떠오르고,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끼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이른다. 이것은 종교나 영적인 설명이 아니라 생물학 원리에 속한다. 그 어떤 것이든, 어떤 상황이든, 어떤 사람이든 나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알 방법은 없다. 내가 좋아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대상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스스로 알아낼 수는 없다. 그저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 자연스레 피하고 싶은 곳, 그 방향을 감지하는 것이 더 중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