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정신건강 문제로 불안과 우울이 주로 다뤄지고 있고 둘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여러 실험 결과들을 보면 불안과 우울이 뇌 속에서 구현되는 양상이나 위치가 좀 다르다는 증거들이 있는 것 같다. 불안할 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대상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가고 그 주변 상황은 무시하는 경향이 커지지만, 우울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모든 관심을 줄이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불안은 뭔가에 지속적으로 몰입하고 몰두하게 만드는 기능도 있다. 아마도 그 몰두하는 대상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성취하고 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불안 자체의 특성은, 그 어떤 것을 해결하고 성취해도 여전히 불안이 남기 때문에 영원히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불안 자체를 완화 시키지 않으면 결국 똑같은 수준의 불안이 찾아오면서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에 몰입하고 집중한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찍부터 이를 잘 깨닫고 불안한 사람들의 이런 사고 방식을 알아채는 것 같다. 불안한 사람들은 어딘가에 정답이 있을거라 믿고 그 정답을 찾는데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도록 만드는데,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내게 주어진 것, 지금 내 손에 닿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불안하지 않은 사람의 답이 불안한 사람에게도 답이 될 수 있을까? 불안한 사람에게도 안정된 사람처럼 '어딘가에 답이 있다고 믿고 그것을 쫓지 말고 현재에 있는 것에만충실하고 몰두해라' 라는 지침은 유효할까?
여기서부터는 아직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약이나 운동, 생활 습관 등을 비롯해 불안을 낮추는 여러 활동들이 불안을 완화시키는 것은 맞지만, 엄연히 기질적인 불안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그래서 항상 시야가 좁아진 채로 뭔가에 집중하고 골몰하도록 뇌가 작동하도록 운명지어져 있을 수도 있다. 미래에 불안을 크게 완화시키면서 다른 부작용이 없는 다양한 치료제와 치료 기술이 발명된다 해도, 그것이 과연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데 이득이 될지 아니면 전혀 엉뚱한 길을 안내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한국의 부동산 현상이나 자녀 교육에 대한 일부 부모들의 과도한 염려와 투자를 보면 우리 나라에 뿌리박힌 불안이 현실을 실제로 바꿔가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위험에 대한 과도한 불안은 국방비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려 한국의 국방 산업을 실제로 키우는데 기여했고, 뒤쳐지면 죽는다는 과도한 불안은 한국 경제를 세계 1위의 속도로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불안은 어떤 면에선 현실을 실제로 바꾸고, 성과를 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불안은 치료해야 할 대상인지, 아니면 그냥 관리하고 인정해야 할 대상인지 헷갈린다. 불안을 달고 사는 사람들은 늘 몰입하고 몰두할 대상을 찾곤 하는데, 이것은 인간 뿐 아니라 동물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 역시 하나의 특성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