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하기 쉽지 않은 조합
컴퓨터나 콘솔 게임 중 RPG 게임들을 보면 대개의 경우 캐릭터별 직업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거나, 한 번 직업을 선택하면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설정되어 있다. 마치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줄기세포가 피부나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로 변하고 나면 다시 원래의 줄기세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RPG 게임에서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직업에는 전사와 마법사, 기사와 치유사 등이 있는데, 각 캐릭터들은 힘이나 마력, 에너지, 방어력 등 속성 값이 매우 다르다. 전사는 힘과 방어력 값이 높고 마법사와 치유사는 마력과 에너지 값이 높은 경우가 많다. 혹시 전사를 선택하거나 치유사를 선택했을 때 각 속성 값을 똑같이 맞추도록 캐릭터를 레벨업시키면 어떨까 궁금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치유사가 전사만큼 싸울 수 없고, 전사가 치유사만큼 제대로 치유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즉 애초에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각 직업 고유의 특성이 있다는 의미다.
상업용 RPG 게임의 기원은 1970년대에 나온 '던전 앤 드래곤'이라고 한다.1) 그 이후 수많은 RPG 게임들이 서로를 참고하며 게임 방식과 캐릭터 설정 등을 확립해오며 오늘날에 이르렀을 텐데, 이 게임의 직업 시스템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피부나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 교체해서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플레이어들에게 인기 있는 RPG 게임일수록 각 직업의 개성과 고유성이 매우 뚜렷하고 서로 대체될 수 없는 자신만의 스킬 트리로 캐릭터를 키우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특정 직업으로 사용자들의 선호도가 쏠리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RPG 게임 제작자들의 오랜 과제였다. 성공한 RPG 게임들일수록 이런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다.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RPG 게임을 하다 보면, 서로 다른 직업군이 함께 모였을 때 가장 시너지가 크게 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통 많은 플레이어들이 초반에 전사 같은 직업을 선택하고 비실비실한 치유사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각자만의 존재감이 너무나 뚜렷해서 결국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 취향에 불과하고, 핵심은 어떻게 서로 협력하느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통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업군인 전사, 치유사, 마법사가 어느 RPG 게임을 막론하고 빠지지 않는 것은 오랜 시간 RPG 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적자생존 현상과도 같다. 이 셋 말고도 게임마다 다양한 직업군이 있지만 그만큼 꾸준하게 남지는 못했는데, 이 세 직업군이 협력할 때 가장 성과가 좋다는 공통의 플레이어 경험이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그들 역시 플레이어이기도 하고)에게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그렇듯, RPG 역시 인간 세계와 매우 닮아 있다. 보통 전사는 개척자, 행동하는 사람, 성실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고, 마법사와 치유사는 탐구자나 관찰자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이 둘이 서로 협력했을 때 성과가 가장 잘 나올 수 있다. 물론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능력을 갖고 있거나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기질을 동시에 가진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을 할 때엔 각자가 가진 기질 중 최상의 것을 보통 앞에 내세우게 되는데, 이는 각 나라가 각자 상대적으로 가장 저렴하게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것들로 무역을 할 때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경제학자 리카도의 비교우위론과도 닮아 있다. 누군가 전사 기질과 치유사 기질을 모두 갖고 있다 해도,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우월한 기질을 앞에 내세워서 일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나 같이 일하는 팀원 혹은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사회 조직에서 서로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만났을 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개척자 혹은 전사 성향을 가진 사람과 탐구자 혹은 치유사 성향을 가진 사람 사이가 특히 그렇다. 전사 타입은 일단 생각을 줄이고 무조건 움직여서 결과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치유사 타입은 한 번 더 생각하고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때 분야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전사 타입에게 더 발언권이 실리는 경우가 많다. 전사 타입이 공격적이고 목소리가 커서? 그보다는 시대 흐름이나 해당 분야의 특성과 더 관련이 있는데, 특히 지금처럼 전 세계가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시대엔 분야를 막론하고 한 발 물러서서 숙고하기보다 무조건 뭐든 해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전사 타입이 더 많은 성과를 올릴수록 이런 경향성은 커지는데,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룩한 곳일수록 전사 타입에 대한 신뢰는 더 두터워질 수 있다.
게임에서처럼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서 공동의 목표와 성과를 이루는 것이 좋겠지만, 그건 이상론에 불과하고 현실에선 둘 사이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 특히 어떤 조직이든 어느 정도 위계가 잡힌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더 큰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경우 갈등은 때로 업무적인 수준을 넘어 인간적인 수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부장님을 비롯한 상급자에 대한 조롱이 끊임없이 유희 콘텐츠로 소비되는 것은 바로 서로 성향이 판이하게 다른 이들 사이의 갈등이 그만큼 만연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물론 성향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고 때론 오히려 동족 혐오(?) 때문에 더 커질 수도 있지만, 아마도 비율적으로는 서로 다른 성향 사이의 갈등이 더 많을 것이다. 한때 MBTI가 유행하면서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MBTI 궁합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산 것도 이런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처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서로 비슷한 성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똘똘 뭉치기 쉬운 시대엔 전사와 치유사처럼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과거처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오프라인 대면으로만 이루어지던 시대엔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 단기간이라도 서로 갈등을 푸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성향에 맞게 치유사는 치유사끼리, 전사는 전사끼리만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다 보니 자신과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기 쉬워진다. 그 결과,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이해나 갈등 해소의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이상하고 잘못된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진다.
점점 더 남의 도움 없이 오직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개인은 점점 고립되고 자기 세계만이 전부라고 착각하기 쉽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의미다. 자산 격차에서 비롯된 사회적 계급 갈등뿐 아니라 성향과 가치관 차이에 따른 갈등까지 더해져서 이제는 분명 같은 공간에 모여 있어도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가까이 있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분명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음에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사이가 늘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 눈앞에 있어도 각자의 스마트폰에 기록된 로그가 다르면 사실상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과거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는 한편으로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점점 더 고립시키는 단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의 말과 행동, 삶의 방식은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은 자유 의지보다 사회와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자유 의지가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는 학자들도 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로버트 M. 새폴스키 박사는 그의 책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와 관련된 논쟁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2), 어쩌면 과학이 발전할수록 관련 논쟁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보이는 수많은 갈등(정치와 국가 수준의 갈등을 포함하여)은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각자가 경험하는 타인과의 갈등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닐 수 있다.
다만 길게 보면 결국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를 또 다른 기술을 발명하고 또 다른 사회를 만들어가면서 해결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생물로서 인간은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릴 때 다양성의 원리에 따라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다양성을 상실하고 고립된 수많은 생물의 멸종에서도 확인되는 과학적 사실이다. 생물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면 해당 생물종의 멸종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3). 역사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민족과 부족, 멸망한 국가들 역시 다양성 붕괴 때문일지 모른다는 가설도 최근 힘을 얻고 있다. 고고학에서는 역사적으로 사라진 문명들을 단순한 환경 변화 등에 의한 수동적 현상으로 보기보다 '회복 탄력성'과 같은 개념적 틀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다양성 붕괴와 관련이 깊다고 추정하고 있다4).
다음에 개발될 기술들은 분명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도 꾸준히 교류하고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본능적 혹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더 나은 인생을 영위하게 돕는 가장 좋은 태도임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더 빨리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시대를 대비해 지금부터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는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더 이해하고 소통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1)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role-playing_games
2) Rakos, R.F., Rehfeldt, R.A. & Killeen, P.R. The Free Will: Determinism Debate in Contemporary Science and Society (Or: Why Are You Reading This Article?). Perspect Behav Sci 48, 475–497 (2025).
3) G.M. Sgarlata, T. Maié, T. de Zoeten, J. Salmona, R. Rasteiro, & L. Chikhi, The effect of habitat loss and fragmentation on isolation by distance and divergence, Proc. Natl. Acad. Sci. U.S.A. 122 (31) e2410951122, (2025).
4) Middleton, G.D. Collapse Studies in Archaeology from 2012 to 2023. J Archaeol Res 33, 57–115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