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권리를 챙기는 건 오로지 나 자신
최근 수년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이란-미국 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났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대규모의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합의했지만, 그때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뀌었고, 경제 변동과 무기 기술의 발전, 자원과 에너지 이용 환경 변화로 세상에는 언제든 다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사실 2차 대전 이후에도 지금까지 세상 어디에서든 꾸준히 전쟁이 발생했고, 전쟁의 형식이 아니라 크고 작은 분쟁과 잦은 범죄까지 합치면 서로가 서로를 해치는 일은 그동안 한순간도 쉰 적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에서도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특히 경쟁이 심한 조직에서는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도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고, 생물의 본성상 자신의 생존과 자기 가족들의 번영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다들 자기 자신과 함께 중요한 사람들을 챙기느라 불가피하게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이자 인간 세계의 한계이며 더 나아가 끊임없이 먹고 먹히는 일이 일상인 자연 생태계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1).
우리는 모두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남이 챙겨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내가 챙겨야 할 권리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상처도 되지 않을 일이 나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면, 그걸 알아차리고 피하든 맞서든 결정할 자유와 책임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있다. 부모도, 자식도, 형제자매도, 친구나 동료도, 도움은 될 수 있고 지지받을 여지도 있겠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줄 수는 없다. 내 마음이 힘들어서 남들이 다 좋다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내 행복을 위해 남들이 가지 말라고 말리는 길을 가는 것은 오직 나 스스로의 선택이고, 그 누구도 그 선택을 강요하거나 막지 않는다. 가족을 핑계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핑계로, 세상을 탓하며 자신의 선택지가 좁아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손해일 뿐이다.
사람들의 본성에는 대부분 착하고 선한 면, 따뜻한 면이 더 많다고 믿는다. 그러나 본래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며, 자연 생태계 자체가 끊임없이 개별 개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듯, 이 세상도 끊임없이 개인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입는다는 말은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본래적 속성 그대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우리는 충분히 괜찮은 국가에 살고 있지만, 다만 그 활용법을 잘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마음이 여리거나 상처받기 쉽다면, 한국 사회의 주류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는 삶을 택하면 그만이다. 한국은 얼마든지 그럴 자유를 개인에게 보장하고 있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자주 교류하고, 불편한 사람은 최대한 멀리하며 사는 것도 가능하다. 단, 그에 맞게 욕심을 줄여야 하는데 이 원리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마음이 힘들 정도로 리스크를 걸어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더 지루하고 경쟁이 덜한 길을 갈수록 마음은 편안하지만 더 적게 얻을 수밖에 없다.
물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중요하고, 그런 사람들의 헌신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도 인간의 본성, 한계, 세상의 본질적인 구조까지 바뀔 순 없다. 잠깐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지라도 곧 그 평화는 깨지기 마련인데, 환경도 변하고 기술도 변하고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비교가 심하고 정답에서 벗어난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한 곳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빠른 발전이 가능했고 모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었다.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과 스트레스는 편리하고 안전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누군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로 더 꼼꼼히 몸을 갈아 넣어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의는 별 의미가 없는데, 미래에는 이런 시스템도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편할수록 실제 삶은 더 팍팍해질 수도 있다. 경쟁을 강조하고 달려야 한다고 외치는 경쟁적인 사람들이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 덕분에 모두가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그것을 행사할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선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회를 적절히 이용해 내게 맞는 삶을 꾸리기 위한 개인용 설명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 Birch, J., & Okasha, S. (2021). The evolution of altruism and the serial rediscovery of the role of relatedness in Hamilton's rul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8(10), e2013596117. https://doi.org/10.1073/pnas.201359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