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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석 Nov 03. 2021

각자도생 시대 베스트셀러의 조건

돈이 되거나 위로를 받거나

가끔 서점에 갈 때면 요즘은 어떤 책이 잘 팔리나, 소위 베스트셀러 딱지를 달고 있는 책들을 훑어본다. 분야별로 진열되어 있는 여러 도서들은 스테디셀러라 부를 만한 책들을 제외하고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돈이 되거나, 아니면 위로를 받거나.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본다면 출판시장 '트렌드'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데 또 가만히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트렌드'가 딱히 출판시장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한 이슈를 들자면 단연 코로나가 첫 손에 꼽히겠으나,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화제는 '투자'라고 할 만하다. 요즘에야 금리가 오르고 대출이 막히고 시장이 조정세에 들어가면서 한풀 꺾였다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디를 가나 투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동산, 주식, 코인, 유튜브에 아마존 셀러까지, 모두가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들일 수 있을까 혈안이 되어있는 듯 보였다. 솔직히 지금도 대출 규제만 아니라면 다들 어떻게든 집이든 뭐든 사려 할 것 같다. 유동성이 넘쳐나고 모든 자산 가격이 경쟁적으로 오르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소위 벼락거지 되기 십상이라 너도나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른다. 노동소득만으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니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투자에 뛰어드는 것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이를 반영하듯 서점가에는 각종 투자서적이 넘쳐난다. 예전에도 500만원으로 월세 받기라든지, 1000만원으로 시작하는 경매라든지 하는 부동산 투자 책들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매대를 몇 개씩 꽉꽉 채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본주의 지진아의 눈에는 세상에 웬 주식 전문가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그 모든 책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건 '돈을 버는 방법'이다. 돈, 돈, 돈... 바야흐로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인생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지, 라며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만큼 저 멀리 잊혀져 아득하기만 하다. 뉴스에 대기업 승계 관련 보도가 나올 때면, 그들의 편법 승계를 비판하는 대신 재벌이 세금을 피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너무나 정당한 권리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와중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기업 승계 이슈로 이쪽 주식이 오를 거다, 라는 전망을 분석이랍시고 내놓는다.


나도 돈이 좋다. 솔직히 돈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 돈이 많으면 일단 편하고, 어느 정도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며, 선택지의 개수가 늘어난다. 유행어를 넘어 누구나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 되어버린 듯한 '경제적 자유'를 거머쥘 수 있다. '부'에 대해 공격적 태도를 취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는 뭐랄까, 돈이면 다 된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돈 많으면 장땡이다, 이런 분위기라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나 역시 관망하다가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공모주 청약을 하고 깔짝깔짝 주식 거래도 해보았지만, 모두가 돈이 최고라 외치고 돈 벌 궁리만 하는 걸 보다 보면 세상이 정말 미쳐 돌아가는구나 싶다. 지난 2년여 시간 동안 한국사회가 병치레한 것은 코로나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편 투자 관련 서적으로 가득한 서점 매대에서 고개를 돌리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돈을 향한 끝없는 욕망의 반대편에는 위로와 위안이 넘친다. 괜찮다고, 잘 살고 있다고, 잘 하고 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누군가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다른 누군가는 그 글을 읽으며 위로받는다. 그만큼 세상에 지치고 힘들고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교보문고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많은 책들이 인생은 귀하고, 각자의 삶은 작지만 빛나며,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느끼고 누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제는 좀 쉬겠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경향은 투자 광풍보다 조금 더 오래되었다. 각자의 속도대로 느리게 천천히 가자는, 그래도 별 문제 없더라는 말들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위로니 위안이니, 모두 말뿐이며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누구보다 나 역시 그런 따스한 말들에 위로를 받았다. 그런 책들 안에 있던 문구 하나가 영원토록 낫지 않을 것만 같던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어루만져주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을 읽으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다른 작가님들이 달아주신 댓글 하나에 새로운 글을 다시 써나갈 힘을,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때로 우리는 뻔한 답을 누군가가 대신 해주기를 바란다. 너 지금 괜찮다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정말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이렇게 위로와 위안을 전하는 말과 글,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들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각박한 현실을 살아낼 수 있을까. 다만 그런 위로를 갈망하고 그런 메세지에 의존해야만,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만 버틸 수 있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고 슬프다.




생각해보면 당황스러우면서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 된다며 더 늦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라고 떠미는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천천히 가도 괜찮고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한다. 사실상 소설을 제외한다면 -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에도 어느 정도는 현실도피적인 성격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과 그런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 역시 크기에 제외해도 무방하지 싶다 -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이 두 부류가 양분하고 있는데, 굉장히 이질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기는 커녕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 아이러니컬한 공존이 서점 밖에서도 허구가 아닌 채 실재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다.


그런데 이렇게 양립 불가능해보이는 두 가지 목소리가 동일한 시공간에 울려퍼지는 것이 사실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두 목소리의 기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불안'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한국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만성적인 불안에 떨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을 애써 감춘 채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고질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현대인에 대해 적은 불안사회라는 책도 있다 (물론 읽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좋아서 즐겁게 한다기보다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한다.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그 효과 역시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어쨌든 그 행위의 목적은 안심, 편안한 마음에 이르고자 하는 데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관계 안에서 스스로 단단히 뿌리내리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붕괴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정성 어린 위안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 잠금화면만 해제하면 몇 초만에 세상에 접속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시대,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는 점점 '연결'에서 멀어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단절'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 눈에 바로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가치, 바로 돈이다. 돈을 번다는 행위는 그래도 내가 잘 살고 있지, 라며 나 자신을 안심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결국 사람들은 돈 이외에는 믿을 구석이 없어서 돈을 좇는다. 동시에 지금 나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현실이 어떤 '완성된' 혹은 '괜찮은' 삶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는 위안을 필요로 한다. 하루하루 건조하게 살아가는 나의 오늘이, 단지 사회의 부속품이거나 회사의 노예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누군가 들려주기를 원한다. 그러니 나는 괜찮아, 라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 잠자리에 들고 내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물질적인 부의 추종은 인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본능적 욕망과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절박함의 합으로, 정서적 위로의 갈망이란 생각하며 사는 건 괴롭고 생각 없이 살자니 시든 껍데기가 될 것만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정신 차리고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몸부림으로도 보인다. 어찌 되었건 둘 모두 살아남기 위한 사투다. 오징어게임의 전 세계적인 성공을 논하며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무거울 수 있는 이슈를 게임이라는 형식에 세련된 영상과 음악을 더해 우아하게 그려낸 덕분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분석에 동의하지만) 누구도 그 다음 이야기 - 그 불평등과 양극화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 것인가 - 는 하지 않는다. 이대로 우리는 정말 각자 살아남아야만 할까?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으나 난망하다.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까지는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었으면.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대, 그러나 정서적인 연결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시대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지금 현재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즉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해결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는지 알 수 있다. 다양한 삶이 건강하게 공존하고 존중받는 사회가 다가왔음을, 언젠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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