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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석 Aug 24. 2021

스타벅스 구석 테이블의 가격

각박한 세상 속 나만의 작은 공간값

한때 '스타벅스'라는 이름이 과시와 허영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커피 한 잔 먹는데 뭐 그렇게 비싸? 이걸 이 돈을 주고 마실 일인가? 초록 사이렌이 박힌 테이크아웃 잔은 곧 된장남 혹은 된장녀 커밍아웃과도 같았다. 특히 연말 다이어리 하나 받자고 프리퀀시 17잔을 채운다거나 (그 당시엔 지금처럼 스티커를 앱으로 주고받지도 못했던 것으로 기억) 한정판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다거나 하는 행위에 '곱지 않은 시선이 박혔다'고 표현한다면, 이는 차라리 완곡한 표현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스타벅스를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는데, 과시나 허영이 아니꼽게 느껴진 것도 없잖았지만 결정적으로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커피를 이 돈을 주고 마신다고? 왜? 나는 스벅 특유의 탄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평소 드립커피 아니면 아메리카노만 마시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스벅 커피 맛은 전 세계 어느 매장을 가나 동일하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방콕 시암 파라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이르기까지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는 같은 맛과 향을 낸다. 물론 밍밍한 커피보다야 백 배 낫다 해도 썩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입 안에 감기는 부드러운 쓴맛이 없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바로 이 부분을 스타벅스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삼는 것 같은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맛을 볼 수 있어요! - 맥도날드 빅맥과 정확히 같은 마케팅), 개인적으로는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맛이 나서 선호하지 않는다 (다만 아메리카노를 구하기 힘든 일부 개도국에 살게 된다면 이게 엄청난 강점이 된다. 익숙함이 그리움으로 변질되기 쉬운 환경이므로. 스타벅스에 대한 나의 인식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따로 써보겠다).


나의 개인적인 비호(非好)에도 불구, 스타벅스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위치는 공고해지고, 매장은 점점 늘어난다. 스벅의 매출액이 스벅을 제외한 상위 국내 5대 프랜차이즈의 매출액 합을 넘어선 지도 몇 해가 지났다. 나의 주 생활 반경은 서울 종로구와 중구인데 어마무시하게 많은 카페 중에서도 스타벅스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다. 과장 좀 섞어서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데, 특히 서울 도심(시청-명동-을지로-종로-광화문)을 카카오맵으로 보다 보면 스타벅스 로고가 엄청나게 밀집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매장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늘 자리를 찾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스타벅스를 마시면 된장 취급받던 시절 역시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간 것 같다. 이만큼 이미지 변신을 성공적으로 해낸 브랜드도 많지 않으리라. 무엇이 변한 걸까? 커피 맛은 늘 그대로이고 가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커피는 (애초에 다른 재화와 비교해서 - 그리고 특히나 한국에서는 - 매우 비싸게 책정되긴 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값에 팔린다. 그러니까, 같은 가격에 같은 맛을 내는 음료를 마시는 행위가 돈지랄에서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가히 '극적'이라 할 만하면서도, 어느 날 문득 떠올려 보면 "음, 그러고 보니 예전엔 그랬었지,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앞서 나는 스벅 커피 맛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나와 비슷한 분들의 숫자가 상당해 보이지만, 세상엔 그 반대인 사람들 역시 많은 것 같다. 내 주변을 보면 스타벅스 커피가 맛있다는 분들의 가장 큰 특징은 아메리카노보다 라떼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전에 무료쿠폰으로 크리스마스 음료(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스페셜한 라떼였음)를 마셔봤는데... 맛있었다.. 어쩌면 에스프레소 샷 특유의 탄맛은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라떼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라떼는 말이야!).


맛을 떠나 음료의 다양성 측면에서 스타벅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그 다양한 음료들을 팔아먹기 위한 마케팅(사이렌 오더, 스타샤워, e-frequency 등)은 실로 감탄을 자아낼 정도이다. 나는 소비 욕구가 거의 없어서 광고를 보고 무언가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스벅에서 보내주는 뉴스레터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필요 없는 머그나 텀블러가 사고 싶어진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신규 음료를 출시하고 각종 상품과 이벤트를 홍보하는 걸 보면 누가 과연 스벅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케팅 비전문가이며 일개 소비자에 불과한 내가 봐도 성공할 수밖에 없겠다 싶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점진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성공은 개인적 공간의 필요가 점점 늘어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그리고 스벅은 그런 추세의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운전 경력이 30년 넘는 베테랑 드라이버로, 오랫동안 자차를 이용해 먼 거리를 출퇴근하셨다. 서울과 수도권의 러시아워(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시리라)를 피하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일찍 나가는 수고를 감수하셨는데, 출퇴근하면서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 늘 피곤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퇴직하시기 전이니까 벌써 한참 전 일이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왜 굳이 차를 직접 몰고 다닐까? 대중교통이 오래 걸리고 불편하다고는 해도, 차가 막히면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데. 오히려 직접 운전을 하지 않으면 눈도 좀 붙일 수 있고, 이래저래 신경쓸 일도 없어서 더 낫지 않나?


어머니는 출퇴근하면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 때가, 하루 중 유일하게 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하셨다. 특히 퇴근길에는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위안을 얻으며 혼자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가 오롯이 혼자서 무언가를 하거나, 어떤 생각에 잠기며 여유부릴 수 있는 장소가 딱히 없었다. 그래서라고, 그래서 운전이 귀찮고 도로에 빽빽하게 들어찬 차량이 지겨워도 굳이 운전을 하신다고 하셨다 (물론 대중교통보다 몸이 편하기도 하고). 듣고 보니 나도 그런 적이 많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평소엔 듣지 않는 라디오를 듣고, 혼자 생각도 하고, 때로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뒤로 젖힌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잠시 쉬기도 했다. 약간은 느슨해질 수 있는, 그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 이 좁은 땅덩이에 차는 점점 늘어나고, 1인 운전자가 그렇게 많은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카페에 가는 이유도, 스벅에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편안한 공간이 부족하다. 물론 반가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업무 차 미팅을 위해 스타벅스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일을 하든, 책을 읽든, 그림을 그리든 눈치 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스타벅스가 채워주는 건 그 '공간'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한다.


예전에도 카페의 비싼 가격은 자릿값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현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동안 앉아 있을 곳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젠가 스타벅스의 성공 사례를 분석한 기사에서 커피빈과의 비교를 읽었는데, 커피빈은 매장 내부의 콘센트를 다 없앴다고 했다. 사실 이게 카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오래 앉아 있지 않을 테고, 테이블이 빨리 돌 테니까.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니즈와 트렌드를 잘못 읽은 결과였고, 단기적인 테이블 회전에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장기적으로 고객들이 '더 자주', '더 쉽게' 찾도록 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해버렸다. 사실 2010년대 초중반 이후 스타벅스가 완전히 시장을 장악한 데에는 이 '혼자서도 눈치 안 보고 오래 앉아있을 수 있어서'가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주변 사람들 봐도 그렇고, 스타벅스 커피가 맛이 없어서 싫어하던 나조차도 스타벅스가 앉아있기 가장 편해서 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니까. 한국에 돌아오고부터는 몇 년째 골드회원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전향'이라 할 만하다.


매장 수, 브랜드 가치, 이써빌리티, 스타벅스를 찾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결국 핵심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접근성도, 쾌적함도, 서비스도 결국은 이 '공간'으로 수렴한다. 일상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혼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극도로 어려운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스벅이 제공하는 작은 테이블 하나를 위해 기꺼이 커피값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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