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숨겨진 보석을 찾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 일단 북반구는 광탈! 남쪽 반구에 위치한 여러 나라들 중 아프리카 끄트머리 혹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아메리카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각 대륙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남아공이나 아르헨티나, 또는 칠레 정도가 유력한 후보다. 남극은 어떨까? 실제 남극대륙에 도달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으로 보자면 가장 멀다고 할 수 있겠으나, 물리적인 거리로 따지자면 아쉽게도 맨 앞자리를 내주어야겠다. 지금 발딛고 서 있는 한국에서 그대로 땅을 파고 내려가 지구를 관통해 나가면 아르헨티나 어디쯤에서 나온다던 글을 언젠가 어디선가 읽은 것도 같은데, 구글신의 힘을 빌어 확인해보니 우루과이란다. 구글맵을 띄워 대략적인 위도와 경도를 더듬어보니 과연, 정반대라면 여기겠구나 싶다. 그러니 물리적으로는 우루과이가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서적'으로 가장 먼 나라는 어디일까? 이 역시 우루과이를 위시한 남미권일까?
'정서적' 거리에는 주관이 깊게 개입하기에 다양한 국가를 거론할 수 있겠으나 내게는 중동 지역이 먼저 떠오른다. 덥수룩한 수염에 동남아보다는 밝고 남미보다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아랍인, 상형문자를 꼭 닮아 무슨 말인지 도통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아랍어, 폐쇄적인 복장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문화, 그리고 막연한 공포와 혐오의 대상인 이슬람교까지. 우리가 '이슬람=테러'라는 매우 단편적인 등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 지역은 인종, 언어, 문화, 종교 모든 면에서 가장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지금 당장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마음 속에서 떠올려본다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남미 국가들의 이름에서 조금 더 가깝고 익숙한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지도를 보다 보면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러와 전쟁, 내전과 무정부의 온상 아프가니스탄이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중국과 붙어 있다니! 실상 아프간의 수도 카불은 거리상으로 인도 뉴델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코시국이라 비행 직항편이 없는 탓에 바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올라온 여행기들을 찾아 보면 인천에서 뉴델리까지 대한항공을 타고 약 8시간 가량 소요된다. 만약 인천-카불 간 직항편이 있다면 불과 8~9시간만에 도달 가능한 거리에 '그' 아프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남미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이나 유럽까지 대양 혹은 대륙을 건너야 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그만큼의 장거리 비행을 한 번 더 해내야만 한다. 환승시간 포함 적게는 21~22시간에서 길게는 30시간까지도 걸리는 남미와 비교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그리 멀다고 할 수도 없다.
아프간이 너무 극단적이었나? 그렇다면 다른 나라로 바꿔 상상해봐도 좋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우디, 이란, 예멘, 오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떤 면에서도 우리와 접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 국가들은 가끔씩 저녁 뉴스나 신문기사에 꼭 영혼의 단짝 미국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미국, 석유, 이슬람,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제외하면 우리는 이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이 지역은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진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것, 그리고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과 거부감을 갖게 마련인데, 이 국가들은 두 가지 요건을 두루 갖추었으니 이슬람과 난민에 대한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혐오 역시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런데 중동보다도 우리에게 먼 곳이 있으니, 중동과는 사촌지간이라 할 만한 북아프리카 지역이다. 지도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찾으면 북부 대부분 지역이 노란색으로 뒤덮여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사하라 사막이다. 아프리카를 구분할 때는 가장 먼저 이 거대한 사막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우리가 통상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는 흑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고, 사막 북쪽에는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가 자리잡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북과 이남은 같은 아프리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라 가끔은 이들을 '아프리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게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극동과 동남아, 남아시아와 중동이 모두 '아시아'라는 하나의 대륙으로 묶인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딱히 이러한 분류 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겠구나 싶다.
사하라 북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다섯 나라 중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유명한 이집트와 관광국가로 어느 정도 알려진 모로코를 제외하면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세 국가가 남는다. 이름 자체가 낯설지 않은가? 최소한 중동 국가들은 이름이라도 많이 들어봤고,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비롯한 것일지언정 특정한 '인식'이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라니, 진정 미지의 국가나 다름없다. 잠깐,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는데? 그렇다. 이들은 아주 가끔씩 저녁 뉴스 단신에 출몰하거나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 상대로 A매치를 치르곤 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아서 튀니지에 일하러 가기 전까지 아는 거라곤 이들 국가들이 북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튀니지에 가고 나서야 이 나라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슬람 문화권의 국가라는 것,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어서 월드컵 지역 예선과 대륙별 축구 국가대항전(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조 편성이 된다는 것, 그러나 길거리에서 흑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 유럽 식민지였던 역사 때문에 언어와 음식을 포함한 여러 면에서 그 영향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 나라들은 알고 보면 다양한 매력으로 넘치는 곳이다. 알제리와 리비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어 튀니지 위주로 간단히 소개하자면 - 우리 입장에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얘네들은 서로 정말 싫어하며 다르다고 느낀다, 외국인들이 한중일 3국 똑같은 거 아니냐 할 때 느끼는 분노와 비슷한 기분 - 튀니지에는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다리는 아프리카에'라는 말이 있다. 멀게만 느껴지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화권이 섞이며 서구와 이슬람, 사하라 사막 원주민의 정서를 두루 간직하고 타 문화에 대해 열려 있는 편이라 다가가기 어렵지 않다. 또한 한니발로 유명한 카르타고가 위세를 떨치던 자리에 세워진 튀니지에는 카르타고의 흔적은 물론, 그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제국의 유산 역시 여지껏 남아 현지인들과 공존하고 있다.
튀니지는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을 동시에 여행할 수 있는 천혜의 관광국가이기도 하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세워진 수많은 리조트는 설비 면에서 선진국의 호텔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하여 유럽 사람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매우 높다. 남부 사하라 초입에 이르면 낙타를 타고 텐트에서 잠잘 수 있으며,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영화 스타워즈 촬영지를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생각보다 멀지 않아서 환승을 포함해도 유럽에 가는 여정과 비슷한 시간 -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경유 시 환승 포함 빠르면 13~14시간 - 이 소요된다. 그래서 나는 틈날 때마다 지인들에게 튀니지에 한 번쯤 꼭 방문해볼 것을 권하곤 한다.
튀니지의 매력을 짧게 적어보았지만, 이 정도만이라도 아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란 굉장히 어렵다.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지만 의외로 가까울지도 모르는, 숨겨진 보석같은 이 나라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앞으로 틈틈이 풀어낼 이야기들이 아랍과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혐오를 벗겨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