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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Mar 12. 2019

소심이도 할 말은 해야 하는가?

편리함을 좋아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찌질하고 소심했던 나


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소심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 또는 친하지 않은 사람을 어색해하고, 눈치를 봐서 말하는 것조차도 꺼려했었다. 상담원과 통화하는 것도 기피했고, 가게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웬만하면 하지 않고 혼자 알아내었다. 낯선 타인과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첫인상을 보고 나를 무시할까 봐..' 이 마음이 내가 낯선 이에게 소심한 사람이 된 이유였다. 그렇다. 난 사회성 모질란 일명 '찌질한 소심이'였다.


나를 빡치게 했던 그 '기사'


예전에 처음으로 대전에 간 적이 있었다. 지리를 아예 몰라 헤매면서 다녔다. 그 당시 빨간색 버스를 처음 봤었는데, 터미널까지 급행으로 가는 버스였었다. 노선도 제대로 모른 채 탑승,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정거장 지나치는 것만 유심히 보며 겨우겨우 가고 있었다.


느닷없이 버스가 어느 정거장에서 정차했다. 기사님이 이 차는 여기서 서니까, 뒤에 오는 똑같은 번호의 버스로 갈아타라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난 낯선 사람 앞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버스에 나 혼자밖에 없었기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일단 내리고, 좀 있다 똑같은 번호의 버스가 정거장에 정차했다. 나도 탔어야 했는데, 기사님이 말하라고 한 그 '한 문장'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뭐라고 했었더라?'


딱히 할 말은 생각 안 나고, 어색하고, 등에서 땀은 나고... 그래서 그냥 돈을 내고 멀쩡한 척 타자고 마음먹었다. 지갑을 보니 세상에 5천 원밖에... 그것도 5천 원짜리로. 하, 주여...

주변에 돈을 바꿀 곳이 안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해야겠다고 정말 굳은 결심을 하고 탔다. 한 손에  5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굳세게 버스에 들어갔다. 검은색 선글라스에 인상을 팍! 굳세고 바른 자세... 빡세 보이는 어느 기사님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기사님께 최대한 공손히 여쭤봤다. 물론 움츠러든 어깨에 수줍은 목소리로 말이다.


"혹시 죄송한데, 5천 원 내면 거슬러 줄 수 있으시.."

 

"돈 저기서 바꿔오세요!!!"


버스 승객 모두의 주목을 받아 당황한 나는 "넵"이라고 대답하면서 기사님이 가리킨 편의점으로 바보같이 뛰어갔다. 허겁지겁 달려간 나는 급하게 천 원짜리로 바꿨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천 원짜리로 바꿔서 빨리 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 버스를 향해 뛰어가려고 하는 순간, 이미 버스는 출발한 상태였다. 이전에 탔던 버스의 기사님이 뛰어오며 안쓰럽게 말씀하셨다.


"학생 안 탔어? 앞에 있는 버스에 탔었다고 말하고 타지 왜 안 탔어?"


그때 천불 같은 빡침이 단전에서부터 머리로 올라왔다. 편의점으로 달려간 나를 봤을 텐데, 정말 몇 초밖에 안 걸렸는데, 그냥 매정하게 가버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비어있는 자리를 보며 끓어 올라오는 짜증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너무 창피해서 안쓰러워하는 기사님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자신감 없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마치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안쓰러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다음 버스에 타려고 아무 말 없이 조금 멀리 떨어진 정거장으로 걸어갔다. 돈 바꾸러 간 사이에 매정하게 가버리고, 불친절하게 호통을 치며 쫓아낸 것이 정말 맘에 안 들었다. 사실, 바보 같은 나 자신에게 더 많이 화가 났었다. "앞에 버스에서 내렸다. 기사님이 그렇게 전달하라더라." 이 몇 마디를 단지 소심해서 말을 못 했다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모르는 사람에게 별 이유 없이 주눅 들고, 무서워하는 내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었었다.


편한 게 제일 좋아


세상 사람들은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내 생각을 직접 표현해야 상대방은 그나마 알아듣는다. 표현하지 않으면 편견에 따라 자기 맘대로 생각해버린다. 편견은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는 생각이어서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편리하다.


표현을 잘 안 하는 소심이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은 편견의 대표적인 예이다. 어차피 자기가 뭐라고 핀잔을 줘도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소심이들이 실제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기사'는 호통을 쳐도 내가 뭐라 화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겉보기에 소심해 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실제로 난 예상처럼 별다른 액션 없이 '순응'했다.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소심한 사람들은 할 말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막 대하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여 배려하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성숙한 생각은 깊이 생각해야만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골치 아프다는 핑계로 무시한다. 골치가 아프면 몸이 편하지 못하다. 그래서 싫어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편리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내가 지켜야 하고, 내 처신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르기에 아무리 소심하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 목소리 크게, 당당하게 표현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작은 목소리, 축 처져 보이는 자세로 말하더라도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만 하더라도 상대방은 그 뜻을 그나마 알아듣고, 본인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표현을 해야 편견을 깰 수 있다.


학교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말은 해야 될 것 같다, 해도 될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든다면, 꼭 하도록 하자. 안 그러면 화병 생긴다. 세상의 많은 소심이들이 당당하게 할 말 하며 살길 기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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