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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Aug 18. 2019

국물 있는 불고기가 먹고 싶어

따뜻한 국물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면회 때 뭐 먹고 싶어?

2015년 하반기에 군에 입대했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내가 앞으로 복무할 부대에 배치되었다. 처음에 적응하느라 참 힘들었었다. 낯선 사람들과 시스템이 어려웠고, 싫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난 새로운 환경에 접하는 것을 꺼려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조직에 어울리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늘 불편하다. 진짜 내 모습을 보이면 다들 싫어할까 봐 항상 이쁨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그래서 늘 처음이 힘들다. 부대에서 적응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듯이 살아갔고, 군인으로 변모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다 보니 힐링이 필요했었다.


부대에 배치된 지 2달 정도 지났을 때, 가족들이 면회를 오게 됐었다. 평소에 생활관 밖에 있는 전화기로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했었는데, 부대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을 때쯤, 엄마와 통화를 하다 면회 얘기가 나왔다. 


"면회는 언제 갈 수 있어?"

"엄마랑 아빠가 올 수 있는 주말에 아무 때나 오면 돼"


면회의 매력은 보고 싶은 사람을 오랜만에 볼 수 있다는 반가움 외에, 못 먹었던 음식들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도 있다. 엄마는 면회를 와도 된다는 말에 제일 먼저 이 말부터 했다.


"면회 때 뭐 먹고 싶어?"


그때 당시, 많은 장병들은 가족들이 면회를 온다고 하면 군대 내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대체로 피자, 치킨 같은 패스트푸드였다. 밥이야 늘 병사 식당에서 먹을 수 있으니까 한식을 싸오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근데 나는 조금 달랐다.


"엄마가 평소에 해줬던 거 가져와줘. 국물 있는 불고기가 먹고 싶어."



따뜻한 음식과 따뜻한 가족, 따뜻한 마음

엄마는 조금 의아해했다. 햄버거 같은 음식이 아닌, 입대 전까지 매일 먹었던 한식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런 듯했다. 이상하게 난 미지근한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리웠던 가족을 보며 그리웠던 음식을 먹고 싶었다. 집에서 늘 먹던 익숙한 한식 말이다.


그중에서도 국물 있는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뭐 먹고 싶냐고 처음에 엄마가 물었을 때, 수화기를 들고 조금 생각하다가 불고기가 번뜩 떠올랐다. 가족들끼리 기분 좋게 맛있는 고기음식을 먹고 싶을 때 해 먹던 것이었는데, 우리 집은 늘 국물이 있게 만들어서 먹었다. 따뜻하게 먹고 싶어서였다.


몇 주 뒤, 가족들이 면회를 왔다. 큰 시장바구니 두 개에 밥과 각종 반찬, 불고기에 과일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왔었다. 몇 달만에 보는 가족들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목소리만 듣다가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정말 반가웠다. 


그러다, 가져온 음식들을 보고 놀랬다. 아들을 배 터질 때까지 먹이려고 작정했냐고 놀렸었다. 그만큼 정말 많이 싸왔었다. 그중, 불고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늘 먹던 방식으로 국물이 있었다. 2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왔을 텐데, 여전히 따끈따끈했다. 그게 참 맘에 들었다. 면회 온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었기에, 부모님은 먼저 밥부터 먹자고 했다. 가져온 음식을 탁자에 쫙 펼쳐놓고 다 같이 먹기 시작했다. 


불고기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따뜻한 국물을 목에 넘기니까 뱃속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마음도 뭉근하게 편안해졌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국물과 함께 먹었다. 짭짤하고 고소하면서 따뜻한 맛. 저절로 웃음이 났다. 병사 식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맛이었다. 


그간 있었던 부대 내에서의 에피소드와 힘든 점에 대해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얘기했다. 부대에서는 말할 수 없는 속마음을 공유했다. 따뜻한 음식을 따뜻한 가족들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하니, 몸과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내가 딱 원했던 것이었다. 나에겐 따뜻한 힐링이 필요했었다.



힘든 군생활을 버티게 해 준 따뜻한 국물 음식

군 생활 중에는 칭찬을 듣는 것보다 혼나는 일이 더 많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고, 그러다 보니 자주 혼이 날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그랬다. 처음부터 큰 사고를 쳐서 크게 혼났었고, 고참이 되기 전까지 꾸준히 혼나는 일이 있었다. 반대로, 칭찬을 듣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늘 마음이 차가웠다.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보단 차가운 말을 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차가워진 마음을 주기적으로 풀어줬던 게 가족들과의 만남과 가족들이 싸왔던 따뜻한 국물 음식이었다. 주기적으로 가족들을 보고, 함께 따뜻한 국물 음식을 먹었기에 힘든 군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매 면회마다 가족들은 국물 있는 불고기를 싸왔다. 내가 매번 먹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국물 있는 불고기는 자연스레 나에게 따뜻한 국물 음식의 상징이 되었고, 면회 때마다 챙겨 오는 기본 메뉴가 되었다. 그렇게 여러 번의 면회를 하고, 난 전역을 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불고기를 종종 가족들끼리 먹는다. 집에 있는 식탁에 앉아 엄마가 해준 불고기를 볼 때마다 군대 면회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면회할 때의 모습, 그때 먹었던 불고기의 맛, 따뜻하게 넘어가던 국물의 느낌이 기억난다. 그때를 생각하며 요즘도 불고기 국물을 떠먹으면 여전히 가슴이 따끈따끈해진다. 그때의 추억이 기억 속에 따스하게 남아서 그럴 것이다.


엄마가 가끔, "불고기 해 먹을까?"하고 물어보면 늘 해달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다음에 엄마가 하는 질문이 있다. 난 그 질문에 항상 동일하게 대답한다. 


"불고기는 어떻게 만들어줄까?"

"국물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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