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받은 애정결핍의 무서움
"너, 그런 성격이면 사람들이 다 싫어해"
"그래 가지고 나중에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 하냐?"
"밖에 나가서 지금처럼 하면, 사회생활하면서 사람들한테 미움받아"
"너처럼 말하면 회사 다니면서 미움받아"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특정 상황에서 종종 들었던 말들이다. 그 '특정 상황'은 '내가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고 고집부리는데, 부모님이 무시하고 도리어 고집부려서 내 목소리가 커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할 때'를 의미한다. 부모님 말씀에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가끔 발생한다. 소위, "말이 많다"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내 성격이 부모님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보다. 토 달지 말고 본인들의 의견, 생각에 긍정하기를 바라신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시지 않을까.
타고난 성격대로 살면, 사회에서 미움받으며 살게 될 것이라 항상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왔다. 부모님은 내가 타고난 성격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과 못 어울릴 것이라고 겁을 줬다. 그리곤, 타인에게 사랑받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가 온순하고, 서글서글하면서, 순종적인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 것 같다.
나는 애정결핍을 교육받은 사람이다. 가르침에 따라, 사회성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신경질을 내지 않고, 화를 참는 법을 터득했다. 내 의견을 말하는 것보다 타인의 의견을 들어주고, 따르는 습관을 들였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웃으면 호감을 살 수 있다고 해서 늘 웃으며 사람을 대했다. 반 평생에 걸친 긴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본모습은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만들어진 모습이 수면 위로 나타났다.
결국, 성격 변화는 없었고, 그에 맞는 사회적 가면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쳤다. 화를 참으면서도, 속으로는 불평불만이 생기면서 표현하고 싶었다. 타인의 의견을 들어주면서도, 속으로는 내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다른 이를 배려하면서도, 나도 배려받고 싶었다. 만들어낸 사회적 가면으로 사람들과 어울렸지만, 타고난 성격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언젠가 분출되는 날만 기다리며 계속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타고난 성격대로 자연스럽게 감정이 올라오고 생각이 떠올랐다. 은연중에 겉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숨기는 것은 참 힘들었다.
이 때문에 성격을 바꾸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성격을 바꾸지 못하면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살아야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애정을 못 받으며 사는 사람이라고 최근까지 나 자신을 정의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왔으니, 나에 대한 사랑이 없었으며,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오게 되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내가 그렇지 뭐' 하면서 자신을 비하했고, 혹여나 사랑을 받더라도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착각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또한, 의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 나를 진실되게 사랑해준 사람은 비록 없었지만, 내 기억 속에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고 사랑해준 기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오게 된 이유이다.
부모님께 들어왔던 그 말들에 과거엔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실제로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주변에 사람이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내 미래를 점치는 것 같아 더욱 자책하게 되었었다. 나한테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고 방어하는 대신, 진짜로 사회 나가서 사람들에게 미움받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단생활에서 항상 위기의식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말이 옳은 줄 알았다. 타고난 성격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성격으로 살아야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기 위해 항상 노력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행복을 찾아 헤매던 어느 순간, 과거를 돌아보며 그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타고난 성격을 부정하면서 타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게다가 타인에게 사랑받으며 살지도 못했다. 대신, 약자로 인식되며 살아왔다. 마음 약한 바보 취급을 받아왔다. 놀림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곤 했다.
비록 자신의 성격이 타인에게 사랑받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타고난 성격까지 부정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이 잘못된 믿음이 애정결핍을 만들어내고, 불행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꼭 서글서글한, 타인과 잘 어울리는 성격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꼭 문제가 되는가? 사회에서 이쁨 받는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내가 성격을 고쳐야만 하는가? 이에 대해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여전히, 집단 내에서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너무 희생하고 있다.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며 살 필요는 없다. 타고난 성격을 부정하는 태도보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더 가질 필요가 있다. 필요할 때, 때로는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면서 말이다.
아직 우리 사회 전반에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사회성 좋은 성격이든 아니든, 인간은 모두 성격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타고난 성격이 잘못되었다며 부정하고 비하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이제는, 사랑받기 위해 사회적 가면을 쓰고 가식적인 모습을 무리하게 보이면서 살고 싶지 않아 졌다. 더 이상 조직, 집단, 사회에 훌륭히 적응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 법을 지키고,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타고난 성격대로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요즘도 가끔 부모님 입에서 쓴소리가 나오긴 한다. 이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앞으로 타고난 성격대로 살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