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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Mar 31. 2020

타미플루의 추억

2009년 신종플루 확진자가 바라보는 '코로나19' (2)

방심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다만, 한 달 전과는 다르게 우리나라 확진자 수의 증가세는 현재 많이 약화된 상황이고, 반대로 미국과 유럽 등 아시아 외 국가들에서 가파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구 지역 신천지 신도들에 의한 확산과 정신병원 등 경북 일부 지역 집단수용시설에서의 확산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해외에서 유입하는 확진자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에 의한 확산 위험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확진자 수가 확연히 줄어들면서 국민들의 경각심은 약해진 듯하다. 여러 기사들을 보고, 벚꽃철이 다가오면서 의외로 많은 국민들이 벚꽃 구경을 위해 외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주말 동안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흥가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집에 물도 없고, 식료품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주말에 마트에 방문했었고, 3월 초에 비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최근에 상태가 나아졌다고 다들 받아들이는지, 전체적으로 외출량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많은 분들이 '이제는 좀 정상생활을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예정된 개학, 개강 일자가 다가오면서 '이번에는 추가로 연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하실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이제 끝났으면 한다. 날씨가 너무 따뜻해져서 외출하기 딱 좋고, 벚꽃 구경 가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타미플루의 흔치 않은 아찔한 부작용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 치료제가 적극적으로 보급되면서 머지않아 확진자가 뚜렷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치료제였던 '타미플루'는 새로 개발된 것이 아닌, 기존에 존재했던 치료제였다.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 社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제로 1996년에 개발했고, 이후 스위스 로슈 가 독점 생산했다. 즉,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신종플루가 유행해서 치료제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했던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사용했던 것이다.


치료제 하나를 새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의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등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바이러스 전파는 정말 빠른데, 그에 비해 치료제 개발은 느리다.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확진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고, 신종플루에 딱 맞는 신종 치료제를 개발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에볼라 치료제(렘데시비르), 에이즈 치료제(칼레트라) 등의 '대체 치료제'를 투여하여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처럼 당시에도 기존에 존재했던 치료제를 환자들에게 투여해봤고, 결국 타미플루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어 정식 치료제로 확정했던 것이다.


내가 확진이 되었던 11월에 타미플루가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보급되었고, 의심환자들 모두에게 처방이 됐었다. 이전 글에서 얘기했듯이, 학교 내에서 정말 빠르게 수많은 환자들이 발생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신종플루 확진을 받고, 상태가 안 좋아서 임시진료소에서 약을 바로 하나 먹었었는데, 그때 정말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경험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타미플루의 부작용은 일반적으로 구토, 메스꺼움, 설사 등이 있고, 심한 경우 환각, 환청 등도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타미플루를 처방해주면서 의사 선생님이 정신적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환자를 혼자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야 열이 너무 나서 정신이 없던 터라 별 의미 없이 넘겼고, 약을 하나 먹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부작용이 나타났다. 


엄마, 동생과 함께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이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그 사람이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시선이 너무 공포스럽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피했다. 그러다 차에 도착했고, 엄마와 동생은 약국에서 약을 타 오겠다며 나를 혼자 두고 갔다. 혼자 자동차 안에서 앉아 있었는데, 바깥에서 조깅을 하는 어떤 아저씨가 보였다. 갑자기, 그 아저씨가 내가 있는 차로 달려와서 망치로 창문을 부수고, 나를 납치해 갈 것 같다는 막연한 공포가 느껴졌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두렵고 무서운 감정에 휩싸여서 나는 차문을 잠가버렸고, 바깥에서 내가 보이지 않게 납작하게 자리에 누워 숨어 있었다. 차 옆으로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잠겨있는 문을 그 사람들이 덜컥 덜컥 열려고 하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할 것만 같다는 공포도 느껴졌었다. 생존을 위협당하는듯한 두려움이었고, 엄마와 동생이 도착할 때까지 난 차 안에서 바들바들 떨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내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해치거나, 납치해갈 것 같다는 공포는 망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현실적인 사실로 느껴졌었다. 마치 눈 앞에 놓여 있는 스마트폰을 보며 '눈 앞에 스마트폰이 있구나'라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처럼 그 망상도 나에게는 분명한 현실로 인식되었다.


엄마와 동생에게 의지하며 집에 도착했고, 통제되지 않는 두려움에 빠져 있으면서 속이 메스껍기도 했던 나는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한숨 자고 나니 치솟던 고열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근육통과 오한도 거의 없어졌다. 망상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그 후, 처방받은 약을 다 복용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신종플루는 언제 걸렸냐는 듯 사라졌다. 학교는 약을 처방받은 날의 그다음 주부터 갈 수 있었다. 약을 먹은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부터 정상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 확실한 무기는 '치료제'이다

비록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정말 드물게 나타나는 강한 부작용을 경험했지만, 치료효과는 강력했다. 치료 과정 중에 잠깐 동안 고생을 하긴 했지만, 참고 복용할 만큼 타미플루는 가치가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확진자들이 타미플루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타미플루의 전국적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확진자 수가 급증한 만큼 완치자 수도 급증했다. 확진이 되었다 하더라도, 얼마 안돼서 완치가 되어 바로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었다. 타미플루가 대대적으로 처방되면서 신종플루를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료제와 백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확산 속도가 정말 빨라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타미플루 때와 같이, 이미 시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여러 치료제들 중에서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는 치료제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연구소와 의료 기관들이 다른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항바이러스제를 코로나19 환자에게 시험 투약해보면서 대체 치료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어떤 환자들에게 투약해야 할지 등을 임상시험을 통해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개발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소요되지 않기 때문에 신약 개발보다는 빠르다. 그래도 임상시험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시작한 지도 아직 한두 달 가량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더 기다려봐야 한다.


치료제가 있어야 코로나19를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래야 다시 점진적으로 정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완치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져야, 그리고 확진되더라도 완치될 것이라고 국민들이 확신할 수 있어야 정부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코로나19를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국민들도 안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부 교회나 의료기관에서의 집단감염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아직은 모이면 걸릴 수도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확진자들이 존재하고, 해외에서 입국하는 확진자들도 있기 때문에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확실한 치료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감염되면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파시켜 신천지, 콜센터, 요양병원 사례 등과 같은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만약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람에게 전파된다면 중증 환자가 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족과 같은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치료제가 전국적으로 보급될 때까지 계속 실천해야만 한다.


현재 상태로는 초중고 개학, 행사 개최 등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실내외 공간에 모이는 모든 일들을 대체 치료제가 발견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정확하게 임상시험 기간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몇 달 정도 걸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최소한 상반기 동안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개학 연기와 같은 문제는 쉽사리 결정하기 힘든 문제인 만큼, 정부에서 참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힘들게 고생하고 계시는 정부 관계자분들과 의료 종사자분들을 위해, 그리고 침체하고 있는 경제상황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하루빨리 치료제가 발견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미지 출처

Mk201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_Tamiflu_(oseltamivir)_capsule.jpg

CC-BY-SA 4.0


참고자료

전자신문, "셀트리온,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기간 단축...'이르면 7월 중순 임상 가능'", 2020.03.23.

조선비즈, "국내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5건·사용승인 6건·10건 검토중", 2020.03.27.

시사저널e, "[코로나19확산] 치료제로 부상하는 ‘렘데시비르’···이르면 내달 임상 결과 도출",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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