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주의 부부, 결혼을 결심하다?

참 안 맞는 부부의 결혼 이야기

by 오렌지양


비혼 주의 부부, 결혼을 결심하다?!


# 비혼주의의 시작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부모님께 선언했다.

"전 결혼 안 할 거예요"


부모님은 콧방귀를 뀌었다

"뉘예 뉘예~ 그러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하세요"


나는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께 2차 선언했다.

"전 결혼 안 할 거예요"


부모님의 콧방귀가 살짝 약해지긴 했다

"그... 그래? 그래도 서른 되면~ 결혼하고 싶다고 난리 칠 거야 아마"


나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에 최종 선언을 했다.

"저 진짜 결혼 안 할 거예요. 비혼 주의로 살 거예요"


부모님은 이제 화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절대 안 돼!!!"


나는 스무 살 때부터 꾸준히 연애를 했지만 딱히 결혼을 하고 싶은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고 남들이 꿈꾸는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는 평생 '나'로만 존재하길 바랬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같은 서브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가기 싫었다. 나는 주체적인 사람으로서 내 인생의 메인타이틀이 '나' 이길 바랬다.


그래서 고향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오손도손 가정을 꾸려갈 때도 그 모습이 부러웠던 적은 딱히 없었다. 결혼한 친구들이 '야~ 너는 결혼하지 마' 이런 우스갯소리를 할 때도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그 속엔 숨겨진 1%의 진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장애물이 보이는 길에 나 스스로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결혼은 미래가 뻔히 보이는 가시밭길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서른 살의 끝자락쯤에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순간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뭔가를 하고 싶은 순간.

나에겐 그것이 결혼이었다.


#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

연애를 할 만큼 했고 내가 만날 수 있는 남자의 유형은 대부분 만나본 것 같았다.


'결혼하고 싶을 때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적격이다!'라는 출처모를 말도 있는데 내 상황이 마침 딱 그러했고 특히나 내가 2년째 만나고 있는 이 남자는 나와 유머 코드가 비슷해 매일 웃고 떠들고 노는 게 참 재밌는 사이였다. 같이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봐도 같은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고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는 성격이 너무 달라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다른 성격에 같은 감성을 가진, 그야말로 참 다른 듯 잘 맞는 연인이었다.


그렇게 내가 결혼을 생각하는 순간, 우연찮게 똑같이 비혼 주의였던 내 남자 친구도 만약 살면서 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게 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단다 (지금 생각하면 입바른 소리일지도...)

무튼 그렇게 비혼 주의였던 우리가 30대를 넘어가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결혼'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 부모님은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한 번은 부모님이 서울에 있는 내 자취집에 올라오신 적이 있는데 사귄 지 2년이 넘어가는데 얼굴 한번 안 비추는 것이 민망해서 남자 친구를 불러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더랬다. 남자 친구는 어른들을 만나는 자리이다 보니 예의를 갖춰 큰 꽃다발을 사 왔는데 그 모습에 우리 엄마는 100점 만점에 1000점을 줬단다.

그래였을까, 남자 친구를 보는 부모님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와도 같았다.



며칠 뒤, 고향에 내려간 부모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딸아, 아빠가 곧 정년퇴직을 할 것 같은데 정년퇴직하기 전에 서둘러 결혼을 하면 어떻겠니? 아빠가 회사 사람들한테 뿌린 돈만 족히 3천만 원은 될 텐데..."


아빠는 한 회사에서 38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의 경조사를 다 챙기는데 쓴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고 손사래를 쳤지만 어차피 결혼을 할 거라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과 할 거라면 시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생 내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한 부모님을 위해 아빠가 정년퇴직하기 전에 결혼하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남자 친구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12월에 처음 '결혼' 얘기가 나오고 곧바로 3월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남들은 결혼에 대한 로망이 어마무시 대단 대단하다지만 우리는 어차피 하는 결혼, 빨리 하고 치워버리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모아둔 돈 한 푼 없이, 얼떨결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엄청난 일의 서막이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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