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웨딩 촬영기 1(지옥편)

참 안 맞는 부부

by 오렌지양





hhhh.PNG
셀프 웨딩 촬영기 1 (지옥편)


제목에서 언급되었듯이 우리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셀프 웨딩 촬영을 계획했고

이 계획으로 우리는 진짜 골로 갈 뻔했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셀프 웨딩 촬영기, 지옥편이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집 근처 공원에서 찍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웨딩 촬영인데~

저렴한 웨딩드레스도 입고 여행 분위기도 내고 싶어서 제주도에서 2박 3일로 여행도 하면서 촬영도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방송 PD인 남편이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다룰 줄 알아서 당시 화질이 좋은 카메라인 5D 마크 2 카메라와 트라이포드(삼각대?)를 렌털 샵에서 빌려왔다. 나는 인터넷에서 9만 원 정도 하는 웨딩드레스와 부케, 화관을 저렴하게 구입했고 남편도 코트와 정장을 준비하고 제주도로 떠날 준비를 했다.


# 셀프웨딩 지옥편의 시작

때는 2018년 2월 겨울.

이때 혹시 제주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는가?

제주도 공항의 모든 비행기가 결항하고 역대급이라고 난리가 났던 그 일!

바로 폭. 설. 사. 태.

정말 눈이 어마어마하게 왔더랬다. 전날 새벽까지 제주도에 눈이 엄청나게 온다더라, 뉴스를 보긴 봤지만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연락이 오지 않아 찝찝한 마음을 안고 공항으로 가긴 갔다. 갔더니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되었다고 안내되어있었다. 그래도 결항은 아니었다! 우선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간다고 하더라도 안전하게 갈 수 있을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그렇게 비행기는 계속 지연되고 원래 탑승시간이 오전 10시쯤이었는데 오후 1시까지 지연이 되더니 갑자기 탑승할 수 있다고 빨리 타라고 했다. 우리는 어리둥절하며 일단 비행기를 타긴 탔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남편과 농담으로 '살아서 만나자' 할 정도로 기체가 계속 흔들리고 불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게 대체 머선 129?

'2012'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이 공항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고 잠을 자고 있고 콘센트가 있는 곳 주변에 모두 모여서 핸드폰을 충천하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가 겨우 마지막으로 뜬 비행기였고 그 뒤로 모든 비행기는 지연되었다. 그날 비행기는 한 대도 뜨지 못했다고 한다.


KakaoTalk_20210419_225019181.jpg



# 폭설을 뚫고 제주도 도착!

제주도에 오긴 왔는데 눈이 겁나게 내려서 진짜 앞이 막막했다. 일단 렌터카 업체에 가서 예약한 차를 렌트했다. 그런데 이때부터가 지옥길의 시작이었다. 이미 엊그제부터 내린 폭설로 도로는 꽝꽝 얼었고 바퀴에 체인을 걸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남편은 정장을 입은 채로 바퀴에 체인을 거느라 낑낑댔고 결국 눈으로 뒤덮인 도로에 무릎을 꿇고 눕기까지 해서 겨우겨우 성공했다.


우리의 첫 촬영지는 사려니 숲이었는데 이 눈발을 뚫고 어떻게 가나, 걱정이 산더미였다.

'일단 가자!'

제주도도 왔는데 더 이상 뭐가 두렵겠나, 못 먹어도 고! 를 외치며 우리는 일단 출발했다.

사려니숲은 산길을 오르고 올라서 도착하는 곳인데 가면서도 '개방을 안 했으면 어떡하지?'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폭설에 문을 열 리가 없었다!



KakaoTalk_20210419_225000537.jpg


우중충한 날씨에 묻고 더블로 가! 해도 지고 있었다. 급한 대로 입구에 서서 손을 잡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쉽게 되면 이게 지옥편이겠는가?

찍으려고 카메라 세팅을 하고 있는데 남편의 등 뒤에서 보노보노 땀이 슈슈슈슈슉 솟아오르고 있었다.

"왜 그래?

"어... 저기 그게.... 우리 사진을 못 찍어"

"....? 왜? 카메라가 있잖아"

"그게....."


난감해하는 남편, 상황인즉슨!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해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이걸 고정시켜주는, 즉 연결 역할을 하는 슈 마운트라는 장비를 깜빡하고 안 들고 온 것이다! 한 마디로 이게 없으면 삼각대와 카메라는 합체가 될 수 없고 우리 둘이 손을 꼭 잡고 서있는 사진은 길가는 사람이 찍어주지 않는 한 절대 찍을 수가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드아!!!

폭설사태에 이미 정신을 놓았는데 서울에서 제주까지 이고 지고 겨우 들고 온 장비가 쓸모없다는 걸 안 사실에 또다시 정신을 놓고야 말았다. 우리의 정신줄은 어디로~ 어디로~


# 숙소 = 지옥으로 가는 길

우리는 모든 걸 포기하고 예약한 숙소로 갔다.

'그래, 잠이라도 잘 자자'


근데 하필 예약해 둔 숙소가 저 깊~~ 은 산골짜기에 있는 곳이라서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가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정신줄을 두 번이나 놓아서 더 놓을 정신줄도 없는데 자꾸만 우리의 정신줄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진정 이것이 셀프 웨딩 촬영의 현실이란 말인가...


우리는 거의 탈진 + 포기 + 살려주세요 상태로 빙판길에 차를 끌고 산길을 달려서 (너무 미끄럽고 앞이 안 보여서 10km 속도로 기어가듯이 달렸다) 장장 2시간 만에 숙소로 도착했다. 드디어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극 현실주의 부부의 콘셉트에 맞게 또 다른 지옥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 가는 것에만 급급해서 마트에 들러서 먹을거리를 하나도 사지 않았고 근처에 가면 뭐라도 있겠지~ 하고 갔는데 근처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고! 끙끙대며 힘들게 도착했건만! 결국 시내에 있는 마트를 가기 위해 또다시 한 시간 가량을 떠돌아야 했다.


그렇게 온갖 생쇼를 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밤 11시쯤 되었다.

사 온 음식들을 부랴부랴 펼쳐 놓고 배를 채우고 펜션에서 대충 사진 몇 장을 찍고 우리는 지쳐 잠들었다.

다행히 다음날 눈이 그쳐 햇살이 예쁘게 비추었고

그제야 본격적으로 셀프 웨딩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ps. 처음에는 남편이 카메라 장비를 깜빡해서 내가 아주 잡들이를 잡들이를~

물 만난 고기처럼 남편을 달달 볶았는데

막상 내가 예약한 펜션이 산골짜기에 있는 걸 확인하자

남편이 그때부터 나를 잡들이를 잡들이를~~~

서로 잡들이만 하다 온 셀프 웨딩 촬영이었다.



keyword
이전 04화신혼집에 찾아온 깜짝 손님, 바...바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