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웨딩 촬영기 2 (천국편)

참 안 맞는 부부

by 오렌지양



셀프 웨딩 촬영기 2 (천국편)

앞서 지옥편에서 우리는 제주도의 폭설에 정신줄을 놓고 카메라와 펜션 사태에 서로 잡들이만 실컷 하다 싸우고 지쳐 잠들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틀, 이틀 안에 웨딩 사진으로 쓸만한 걸 어떻게든 찍어가야 했는데 카메라와 삼각대가 남남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좋은 퀄리티의 사진을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우리는 '한 프레임 안에 사이좋아 보이게 같이 서있기만 하자!'를 목표로 잡았다.


# 행운의 여신과 함께한 셀프 웨딩 촬영

그런데, 뜻밖의 연락이 왔다.

평소 남편하고 친하게 지내는 카메라 감독님이 우리를 위해 결혼 선물이라며 제주도에 사진작가를 섭외했다며 '웨딩 스냅사진 전문 작가 3시간 무료 이용권'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다음날.

다행히 폭설이 잦아들었고 우리는 아침 일찍 사진작가님을 만났다.

빅뱅의 태양을 닮은 감독님과 스냅사진을 촬영하러 다녔는데 날은 춥고 옷은 얇고 발 딛는 곳마다 눈과 빙판이 날 반겨주고... 더 밝~게 웃으라고 하는데 너무 추워서 입이 돌아갔나? 싶다가 나중에는 내 입이 바닥에 떨어진 건 아닐까 한참을 찾기도 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알아본 성이시돌 목장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생각보다 영~ 사진이 잘 안 나와서 사진작가님이 아는 장소로 그냥 가달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숨겨진 비밀의 장소(!)로 우리를 이끌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세우시더니 웬 도로 한 복판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논밭?!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님이라 확실히 다른 게, 사진이 잘 나오는! 구도가 좋은 장소를 알고 계셨다. 거기서는 어떤 포즈를 취해도 사진이 멋지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감탄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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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찾아갈 수 없는 곳, 대체 여긴 어디일까?


눈이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무릎까지 푹푹 들어오는데 발랄하게 뛰면서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야 했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왜 결혼을 한다고 했지?'라는 후회를 했다.

나는 추워 죽겠는데 남편은 정장에 코트를 걸쳐서

혼자 '난 안 춥지요~~'하며 놀려대는데 이걸 죽일까 살릴까,

눈에 파묻으면 아무도 모를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촬영 장소에 비하면 이곳은 양지바른 따뜻한 곳이었다.

협재 해수욕장은 와~ 진짜 와~~~ 우와~~~ 허, 참!!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힐 뿐이다.

너무 추우면 말문이 막힌다. 거기다 구두까지 신어서 모래에 굽이 푹푹 들어가고 시린 겨울바람에 바닷바람까지 콤보로 불어오니 안나의 렛 잇고~ 렛 잇고~ 겨울 왕국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온몸에 감각이 사라져서 눈코입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를 정도의 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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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오빠, 내 눈코입 잘 붙어있어?

남편 : 응, 애석하게도 잘 붙어있네

나 : (빠직) 혼자 코트 입으니까 좋아? 안 추워?

남편 : 넌 지방이 많으니까 따뜻하지 않아?

나 : (죽이까?)......오빠, 오빠 수영 잘한다 그랬지? 바다 수영도 잘해?"


다정해 보이는 사진 속 우리의 대화는 대략 이랬다.


소복이 쌓인 눈 덕분에 인생 샷에 버금가는 사진이 탄생했지만... 사진을 꺼내볼 때면 그 날의 한기가 몸소 느껴져 파르르 떨린다. 천사와도 같은 사진작가님 덕분에 우리는 성공적인 셀프 웨딩을 마쳤고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셀프 웨딩 촬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 셀프 웨딩, 직접 겪은 자의 조언

우리는 주변에 제주도에서 셀프로 웨딩 촬영한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1.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돈 아낄 겸 여행할 겸 셀프 웨딩을 선택했지만

항공비, 숙박비, 식비, 소품비 등등 다 합치면 못해도 백만 원은 들었다


2. 생각보다 결과물이 별로다

남들이 찍은 셀프 웨딩 사진은 엄청 예쁜데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 남편은 영상학과 출신의 PD인데도 남편이 찍은 사진 보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지나가는 제주 어멍이 더 잘 찍으실 듯...


3. 생각보다 전문 사진작가의 퀄리티가 뛰어나다. (단 시간제로 짧게 이용할 것을 추천)

우리가 인터넷으로 찾은 장소와 현지에서 웨딩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작가님들이 아는 장소는 정말 달랐다. 그분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짜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분들의 노하우에 녹아있는 히든카드이다.

인터넷으로 찾은 무슨 꽃동산, 무슨 해수욕장, 무슨 길, 무슨 목장 이런 게 아닌!

사진작가들은 진짜 사진이 잘 나오는 구도가 좋은 장소를 알고 있다.

(내가 사진 찍은 장소는 인터넷으로 찾았을 때 절대 알 수 없는 장소였다))


그러니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워서 완벽한 구도로 사진직을 찍을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4~5시간 시간제로 계약해서 사진을 촬영해라.

베스트 컷 10장만 건진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된다.


그리고 요즘에는 다들 핸드폰으로 간단한 포토샵을 할 줄 아니까 원본을 받아서 스스로 포토샵 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사진 보정 어플을 이용해서 갸름하게, 갸름하게, 갸름하게를 온 전신만신에 했는데 원본 화질이 워낙 좋아서 수정 후에도 사진이 하나도 안 깨졌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수정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종아리의 알을 '갸름하게로 다 날려버렸다!!)


4. 생각보다 많이 싸운다

셀프 웨딩 촬영 = 전쟁터

싸우기 딱 좋다. 이거는 뭐,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싸우라고 싸움판을 벌이는 것이다.

싸우기 싫다면 모든 것이 세팅되어있는 스튜디오에 가서 행복하게 촬영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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