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느껴지는 상큼한 가을 공기, 오랜만에 도시산책을 나섰다.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서촌 골목을 걸어 오르니 성곽길 초입이다. 모노톤의 자그마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윤동주 문학관>이다. 소박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시인을 표현하는 듯 했다. 동선을 따라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니 건물의 구조가 독특하다. 어느 건축가의 표현처럼 '공간으로 지은 시(詩)' 같았다.
이 문학관 건물은 시인과 어울리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폐기된 수도가압장을 윤동주의 시상과 연관하여 의미있게 변모시켰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돕는 곳이다. 살면서 우리 영혼에도 가압장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더운 여름을 지나며 느슨해 졌던 마음이 오늘 하루의 여유로움으로 내일을 향한 가압이 가능할까?
시인의 자취를 모아 놓은 실내를 벗어나 외부의 공간으로 나왔다. 하늘을 열어 놓은 中庭의 전시실이다. 물탱크 윗부분을 개방한 ‘열린 우물’로 하늘, 바람, 별, 구름이 함께 한다. 벽면에는 마치 벽화를 그려 놓은 듯 물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니 구름이 흘러가며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파란 가을 하늘과 물때의 얼룩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생각했다. ‘닫힌 우물'은 물탱크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침묵과 사색의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어둠 속에 앉아서 시인의 시세계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시 몇 편을 찾아 나직이 읇조려 보았다. 잠시 시인의 마음으로 들어가 나를 우물에 비추어 보았다.
자화상 自畵像 portrait는 말 그대로 ‘스스로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다. 이 단어는 라틴어 ‘porttahere’ 의 의미인 ‘끄집어내다’, ‘밝히다’ 에서 유래되었다. 살면서 순간순간 우리는 거울에 비친, 물에 비친,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와 마주하게 된다. 내가 아는 ‘나’ 이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나’를 보기도 한다. 삶에서 때때로 나를 모른 체 하고 지내고 싶은 시간이 있다. 이런 순간이 쌓이면 ‘내가 모르는 나’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의 시에는 거울이나 우물을 통한 자기성찰이 많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 자기 성찰이 있었나? 다시 중정으로 나와서 시인의 삶을 생각하며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 본다. 또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내 마음 속에는 그리움이 있고, 추억이 있고,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고 그리고 꿈을 가진 내가 있다. 건물을 나와 시인의 언덕에서 다시 한번 시인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