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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루 Mar 24. 2017

타이거에어타고 싱가포르에서 랑카위로

여자혼자 말레이시아 여행기

오늘은 랑카위로 떠나는 날.

오전 7시쯤 옆 칸 여자의 짐 싸는 소리에 퍼뜩 눈이 떠져 평소보다 여유롭게 아침을 시작했다.


비행은 타이거에어로 싱가포르 발 랑카위행 오후 12시 15분이다.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 정도면 늦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뿌듯함으로 서두를 것 없이 샤워실로 향했다. 그런데, 딸깍 하드 렌즈 통을 열어본 순간 곱게 끼워져있어야 할 오른쪽 렌즈가 온데간데없었다. 잠이 덜 깬 건가, 한동안 현실 부정하다 서서히 위기감이 장벽처럼 몰아닥쳤다. 문제없을 것 같았던 말레이시아 여행의 첫날이 시작부터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싱가포르가 나를 보내는 것이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 오른쪽 눈을 숨겨버리다니.

뭐, 결론을 말하자면 혼자서 한 10분 헤매며 광기를 부리다 극적인 장소에서 기적적으로 찾았다. 그 작고 작은 하드 렌즈를 말이다. 지금도 심장이 배꼽까지 떨어지던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눈이 없는 여행이 다 무슨 소용이람. 물론 안경을 챙겨 오긴 했지만 이건 최후에나 마지못해 꺼낼 수단이었다. 더운 날 콧등 위 안경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조식까지 말끔히 챙겨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이 숙소는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친 후 싱가포르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에도 다시 한번 머물 예정이라서 어떤 아쉬움도 없이 돌아설 수 있었다.


이제 차이나타운 스테이션에서 창이 공항으로 출발한다.


지하철이 잠시 멈췄을 때 이때다 싶어 찍은 내부 사진




창이공항
Singapore Changi Airport


싱가포르에 도착하던 그날의 새벽이 어제처럼 선명했다.

그때는 이곳을 무사히 여행한 후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는 날이 어쩐지 아득하게만 느껴졌었는데 벌써 그것이 오늘이 되어 버렸다. 그 사이 나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어느덧 여행의 part 2가 시작되었다. 시간도 아마 2배로 빠르게 흘러가게 될 테다.

그냥 직감으로 안다. 말레이시아에서 머무는 일주일이 결코 긴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창이공항


터미널 2에서 게이트부터 확인하고 출국 수속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들이 내 출국 카드를 가져가 버렸다. 이건 싱가포르 입국 시 제출하는 입국 카드에서 보관용으로 떼어주는 일부인데, 여행자가 지니고 있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때(즉 싱가포르에서 출국할 때) 다시 제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난 말레이시아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와 이곳에서 한국으로 출국해야 하는 일정이라 지금 이 출국 카드를 가져가 버린 것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당황스러웠었다.


그곳에 서 있는 직원을 붙잡고 이러저러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건 돌아오는 날 얼마든지 다시 작성하면 되는 거라고. 에고.



게이트로 향하기 전에 커피부터 찾았다.

다행히 커피빈이 있길래 한국에서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마시던 캬라멜 블렌디드를 주문했다. 모자 같은 풍부한 생크림을 얹어주겠지? 라며 한껏 부풀어있는데 처음엔 내 음료가 아닌 줄 알았다. 상상 속 풍성한 생크림이 밋밋한 우유 거품으로 꺼져있었다. 여기.. 스타일은 이런 건가 보다.


왼쪽: 창이공항 내 커피빈. 출국 수속 후 게이트로 가는 길에 있다 / 오른쪽: 캬라멜 블렌디드(6.8싱달), 그리고 헤나 받은 다음날의 내 손등은 이랬다.


이제 출국 수속은 마쳤는데, 정작 귀찮은 짐 검사 구역이 보이지 않았다. 우선 해당 게이트 앞으로 찾아갔다. 문득 걱정이 앞섰다. 설마 싱가포르 같은 나라가 짐 검사도 하지 않고 승객들을 태우지는 않겠지.


이런 시스템은 처음이었다.

창이공항에서는 게이트 내에서 짐 검사를 했다. 그러니까 보딩 시간이 되면 닫혀있던 게이트가 열리면서 한 사람씩 짐 검사를 한 후에 게이트 내부의 라운지로 들여보내 주는 것이다.


왼쪽: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날, 급하게 말레이시아 여행책을 샀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했다. 진드막하니 펼쳐서 읽어볼 시간 자체가 없었던지라. 대부분 즉흥적으로 다녔다.


첫 번째로 짐 검사를 마치고 라운지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빳빳해진 마음가짐을 잠시만이라도 풀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빠뜨린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되새겼다. 그때 목걸이에 관한 문제가 떠올랐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몸에 지닌 금제품이 있다면 풀어주는 게 좋다는 주의 사항을 어딘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말레이시아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아직은 어떤 곳인지 모르는 나라니까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목걸이를 스르르 끌렀다.





드디어 타이거에어 탑승.

싱가포르 저가항공으로 창이공항에서 랑카위까지 가는 직항 편 중 가장 저렴했다. 스카이스캐너에서 약 42,000원에 예매했다.


검은색 가죽 의자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편하게 잘 이용했다. 어차피 한 시간 반 거리인데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운 좋게 창가 자리를 잡은 덕분에 하늘만 쳐다보며 여행을 예열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타이거에어



탑승 후 주변을 둘러보는데 시야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 옆에 앉은 아랍인도 그렇고 대체 뭐가 궁금한지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한 번씩 따끔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즐겁게 받아넘겼다. 모르는 척하면서. 이때부터 시선에 적응하는 연습을 했다. 어차피 이 연습을 발판 삼아 랑카위에서 말라카에 이르기까지 더한 시선도 다양하게 받아쳐야 했으니까. 물론 이것은 호기심, 관심, 호감이 뒤섞인 좋은 시선만을 말하는 것이다.


메뉴판. 저가항공이라 주전부리에 무료가 없다.


말레이시아는 준비하는 기간 동안 뒤척인 시간이 가장 길었던 목적지다.


스스로 만든 질문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여자 혼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한 나 같은 의존적인 사람도 이 여행을 해낼 수 있을까? 여기에 테러 운운하는 뉴스들은 여행 계획을 후회하는데 완벽한 보탬이 되어주고는 했다. 동남아시아까지 넘어왔다는 기사들만 유독 눈에 띄길래.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부류가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들은 독립적이면서 당차고 열린 친화력을 가진 대단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은 오히려 이것이 여행을 결정하게 된 주된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 없을 것이라생각하는 그런 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인가?


 질문에 대한 답이 알고 싶.



이런저런 생각하다 쿨쿨 졸다 보니 어느덧 창밖으로 초록빛 섬들이 덩어리째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왔다. 랑카위.




랑카위 국제공항
Langkawi International Airport (LGK)


공항인지 버스 정류장인지, 아담하고 정겨운 랑카위 공항


하늘이 맑다.

좋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이곳에서 나를 압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었으면.



숙소는 마리 게스트하우스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인데, 보통 다른 여행지라면 한인 운영 숙소란 최후에 고려할 장소였을 테지만 랑카위는 예외였다. 지하철도 버스도 없는 데다가 렌트를 직접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건 여자 혼자라면 더욱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기 위해 한인 운영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심적으로 큰 의지가 됐다. 언제든 말이 통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든든함이라고 해야 하나.


공항 내 택시 예약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심칩을 사야 했다.


싱가포르의 싱텔 Singtel 처럼 말레이시아에서는 디지심 Digi 이 좋다기에 이것만 생각하고 왔다. 게다가 마리 게스트하우스 숙박 예약 시 받은 각종 할인 쿠폰에 디지심 할인 혜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출국 수속하자마자 공항 출구에 있던 통신사에서 디지심을 물어봤다. 그런데 피식피식 웃더니 마감됐단다. 잉?

지금 오후 1시 반도 안됐는데 무슨 마감?


그러더니 유심을 살 수 있게 와주겠다며 맞은편 메이시스 Maxis를 판매하는 카운터로 안내해준다. 짜고 먹는 영업 같으니라고. 우겨서 살 수는 없어서 별 수 없이 메이시스 유심칩 7일에 600Mb 패키지(30링깃)를 샀다. 일주일간 굉장히 불만족스럽게 잘 사용했다. 인터넷도 이렇게 느려서야. 심지어 터졌다 끊겼다 반복하는 경우가 상당히 잦아서 지도 검색하다 소비한 시간도 무시 못 했다. 디지심은 사용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메이시스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메이시스 유심 선택 사항


유심 구입하고 환전까지 마친 후에야

마리 게스트하우스에서 픽업 나오신 분을 찾아 돌아다닐 여유가 생겼다.

만나기로 한 장소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찾아갔다. 이곳에서 한국인은 드물기 때문에 찾기도 쉬웠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드디어 숙소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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