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혼자 싱가포르 여행기: 게스트하우스 숙소 후기
싱가포르에서의 첫째 날 숙소는 게스트하우스 그 자체보다도 테라스 경치가 더 유명한 5 Footway Inn Project Boat Quay(보트키 점)이다. 이곳은 체인으로 운영되는 게스트하우스로 보트키 지점 외에 차이나타운과 안시앙에도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는데 그래 봤자 아침 8시 반이었다.
얼리 체크인을 혹시나 기대해봤지만 저렴한 숙박비에 그런 자잘한 혜택까지 상상하는 내가 다 신기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당연히 안된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도 체크인 전에 샤워 시설 이용은 가능했다. 다행히도.
5 footway. inn project boat quay
체크인: 오후 3시
체크아웃 오후 12시
입구에서 문 옆에 있는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준다. 이후에는 숙소 룸카드를 찍고 출입하면 된다.
문을 열자마자 나타나는 되지도 않는 높이의 가파른 계단. 나는 그나마 짐이 백팩 하나였기 때문에 오르내리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캐리어와 기타 짐을 한가득 이고지고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또 다른 가족을 보니 정말이지 코끝이 찡해지는..
여기서 체크인을 하면 된다. 직원에게 백팩 안에 노트북이 있으니까 살살 다뤄달라고 당부를 했는데 알겠다고 대답을 하자마자 쿵 내려놓더라. 뭘 들은 거야 대체.
한국인 여행자들이 자주 묵는지 한글로 적힌 규칙 사항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묵었던 11월은 아무래도 여행 비성수기라 그런지 이곳에서 한국인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참고로 헤어드라이기는 리셉션에 말하면 빌려준다. 체크인 전에 샤워시설을 먼저 이용하는 나 같은 사람이 헤어드라이기를 쓸 곳이란, 저기 위 사진에 보이는 애플 모니터 밑 콘센트에 꽂아서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화장실이나 샤워실엔 콘센트가 없다.)
덕분에 나는 전 세계인이 체크인하는 리셉션 바로 옆에서 머리를 말렸더랬다.
테라스, 갤러리 76
이 숙소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궁금해할 테라스는 갤러리 76에 있다. 조식도 이곳에서 챙겨 먹으면 된다.
갤러리 76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테라스가 눈에 들어오고, 그다음으로는 곳곳에 놓여있는 테이블이 보인다. 내가 갔을 때는 한산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이 앉아 있었고, 테라스에는 4, 5명 정도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경치를 보고 있었다.
테라스에서 본 낮의 풍경
테라스는 두 곳이다. 테라스 내부에 있는 계단이 아래층 테라스로 이어지는 구조
테라스로 나가기 전, 테이블 옆으로 조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각종 식기와 커피 기계가 준비되어 있다. 난 조식 포함으로 예약을 했지만 단 하룻밤 묵어보고는 모든 입맛이 뚝 떨어져 조식을 먹지 않았다.
조식 시간: 06:30am - 10:00am (갤러리 76, 테라스에서)
싱가포르 여행을 다니면서 참 자주 보았던 천장의 선풍기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백화점이나 몰에서는 당연히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지만, 서민들의 발걸음이 더 잦은 웬만한 호커 센터나 빌라들은 보고 있기만 해도 90년 대 어린 시절을 모락모락 떠오르게 만드는 이런 선풍기들을 사방에서 틀어 놓고 있다. 처음에는 가뜩이나 끈적이는 습함에 미적지근한 바람까지 더해져 몹시 성가시기도 했지만, 여행의 끝자락 무렵에는 결국 이 선풍기의 존재가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샤워하는 공간과 화장실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하루 동안 내가 이용한 것은 여자 전용 샤워실(female shower). 먼저, 샤워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한 편이었다. 내가 너무 최악을 상상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싱가포르를 단 반나절만 돌아다니다 들어와도 이 샤워실보다 더러워진 건 내 몸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연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별도의 실내화는 주지 않는다. 그러니 샤워실에서 신고 돌아다니기 편한 슬리퍼를 미리 준비해오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이 더러운 바닥을 맨발로 다녀야 하니까. / 그런데 화장실. 온종일 찌린내가 진동을 한다. 특유의 냄새가 뜨거운 공기 위로 밀착을 해버렸는지 좀처럼 냄새가 나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이 화장실이 가기 싫어서 자기 전에는 목마름도 견뎠다. 코끝에 냄새가 달라붙기라도 할까 봐 황급히 벗어나게 되었던 화장실.
방 후기: Single Bed in Standard Quadruple Dormitory Room
방은 룸키를 찍고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그러고 보면 보안은 괜찮은 편이었다.
Single Bed in Standard Quadruple Dormitory Room. 1층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은 침대 밑에 달린 서랍을 라커로 사용하면 되고, 2층 침대 이용자는 방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나름 큼지막한 라커를 사용하면 된다. 이것도 룸키로 여닫는다.
예약한 방은 Single Bed in Standard Quadruple Dormitory Room이었다. 한 방에 네 명까지 묵을 수 있는 방으로 여자만의 방이 아니라 남녀 공용 방이었다. 그런데 내가 묵었을 때에는 네 명 모두 여자였다. 조금 불편하게도 2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이 두동강날 것처럼 삐거덕삐거덕 거리는데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침대와 침대 사이가 밀접하게 붙어 있었다.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건 갈색 나무 대기 하나가 전부. 그러니까 내 바로 옆의 2층 침대에 묵는 사람의 발 그 밑에 내 머리를 누여야 하는 구조? / 자리마다 옆에 자잘한 소품을 넣어 놓을 수 있는 공간과 콘센트가 있다. 콘센트를 사용할 때는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버튼을 줄러야 전기가 들어온다.
방에서 내다본 전경. 결과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전경이었다. 내내 커튼이 닫혀있기도 했고 숙소 바로 앞에서 진행 중인 공사가 시종일관 드르르륵거려서 일부러 내다보지 않게 된 것도 있고.
체크인을 하면 룸키를 받고 그에 대한 보증금 20 싱가포르 달러를 내야 한다. 그리고 이때 받는 영수증을 체크아웃할 때 룸키와 같이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룸키 보증금: 20 싱가포르 달러
그리고, 테라스 야경
오른편으로는 마리나베이 샌즈가 보이고, 왼편으로는 엘진 브리지 Elgin Bridge가 보인다. 내가 이 숙소를 예약하면서 상상했던 로망 중 하나는, 여기 테라스에 앉아 맥주도 한 잔 마시면서 다음날 여행 일정을 계획한다든지 혹은 당일에 있었던 여행 기록을 정리하며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마리나베이 샌즈와 가든스바이더베이에서 실컷 싱가포르의 야경을 만끽하고 돌아온 나는 숙소에서까지 다시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그저 잠만 자고 싶었다.
그냥 들었던 생각인데, 보면 야경도 정말 예뻤고 이것이 숙소를 선택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기에도 그 가치란 충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빡센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도 그 야경을 다시 즐기게 할 만큼 대단한 경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가격에 비하자면 과분한 야경일 수 있지만.) 특히나 이보다 더 멋진 싱가포르의 밤을 열심히 즐기고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체크아웃하는 날
밤새 러시아 티내이저 두 명이 배려도 없이 시끄럽게 소곤대는 바람에 예정보다도 늦게 잠들었다. 숙소 밑에는 부어라 마실 수 있는 펍이 주르르 나열되어 있는데 신기하게도 여기서 떠드는 소리들이 마치 내 옆에서 주고받는 대화인양 또렷하게 들려왔다. 늦은 저녁시간까지 공사가 이어지기도 했고. 그러니까 바깥 소음에 대한 방음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황급히 체크아웃을 했다. 다음 숙소는 차이나타운 역 근처에 위치한 시크 캡슐 오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