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혼자 싱가포르 여행기
홍콩 소야 소스 치킨 라이스 앤 누들
Hong Kong Soya Sauce Chicken Rice & Noodle
지난 8월, 눈길을 끌던 기사 하나가 있었다.
한참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 관한 관심이 따뜻할 때였는데, 싱가포르에서는 단 돈 3,300원으로 미슐랭 스타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나름 솔깃한 기사였다. 주머니가 가벼울 예정이었던 백패커 여행자로서 반갑게 스크랩을 해두었더랬다.
그리고 11월, 나는 싱가포르 첫 식사를 할 장소로 망설임 없이 그곳을 선택했다.
홍콩 소야 소스 치킨 라이스 앤 누들은 차이나타운 콤플렉스 푸드센터 2층에 있다.
이른 시간이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인은 하지 못하고 짐만 맡겨둔 채로 차이나타운을 향해 걸었다. 5 footway inn project boat quay의 장점 중 하나는 위치가 참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차이나타운까지 걸어가려면 한 바가지의 땀을 쏟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관광지는 모두 도보로 다닐 수 있다. 처음 싱가포르의 도심을 걸었을 때는 온갖 건축물과 풍경이 새로운 덕분에 걸으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채로운 건물의 형상은 아담하면서도 정갈했다. 꽃과 나뭇잎마저도 마치 이 도시의 커다란 계획을 위해 피어났다는 듯 조화롭게 어울린다.
철저한 계획 하에 탄생한 도시라는 점을 골똘히 생각해보면 싱가포르란 참 영리한 나라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무엇을 보고 좋아할지, 정확히 예상하고 그 포인트를 건드리고 있으니까.
구글 지도를 따라 차이나타운 역까지 닿았다.
사실 고개를 돌리는 족족 새로워서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고 눈에 쓸어 담느라 이 거리가 그렇게 멀고 힘들었다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정작 몸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미 온몸에는 방울방울 땀이 맺혀있었다. 정말 미치도록 더웠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겨우 차이나타운 콤플렉스 푸드센터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건물이 컸는데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한국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대다수 중국인이었던 데다가 그들은 흘끗 보기만 해도 전부 현지인이었다.
싱가포르는 외식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듣기로는 현지인들도 집에서 식사하는 것보다 밖에서 해결하는 편을 더 선호한다고 하는데 다만 알다시피 이곳의 물가는 비싼 편이 아닌가. 그러니 현지인들에게는 식사만큼은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그런 배경 속에서 발달한 것이 바로 싱가포르의 푸드코트, 호커센터다.
이곳에서는 놀랍게도 단 2 싱가포르 달러(약 1,6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가 있다.
각종 과일 주스조차 최소 천 원으로 쪼옥쪽 들이킬 수 있다.
설탕 잔뜩 들어간 그런 거지 같은 주스 말고, 그 자리에서 과일 뭉텅이째 갈아주는 진짜 생과일주스 말이다.
차이나타운 콤플렉스 푸드센터. 혼밥이 아무리 한국에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조차 문화로 단단히 정착해버린 듯 흔한 풍경이었다. 간단히 밥을 해결하고 싶은 현지인들이 곳곳에서 식사 중이었는데, 푸드 스톨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이곳에 눌러살면서 스톨마다 한 번씩 맛을 보고 싶었을 정도.
홍콩 소야 소스 치킨 라이스 앤 누들은 2층 125번 스톨
간판마다 숫자가 쓰여있는데 그것을 보고 찾아가면 된다.
10시 오픈이라고 들어서 넉넉히 9시 30분쯤 도착했다. 어쩐 일인지 북적북적할 줄 알았던 스톨 앞이 이상할 정도로 한산했다.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여기 주문 어떻게 하면 되나요? 라고 물어봤는데 고개를 들어서 자세히 보니 그분이 바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찬한멩 할아버지였다. 잠깐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손가락질로 큐(queue), 큐, 라고 선한 미소로 대답을 해주신다. 처음엔 무슨 말이지? 했는데 영국령이었던 싱가포르에서는 기다리라는 말을 큐(Queue)라는 영국식 언어로 표현을 하더라.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Queue라고 쓰여있는 표지판 뒤로 거의 한 20m는 되어 보이는 줄이 기다랗게 뻗어있었다. 욕부터 나왔다. 그럼 그렇지,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과연 어디가 끝일까 헤아리면서 줄의 가장 끝까지 가보는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잠깐이지만 그 웃음 안에서 '너 같은 여행자 많이 보았다'의 의미가 보였다. 터줏대감처럼 대기 중인 그분을 보아하니 아마 이 스톨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단골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스톨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있는 기다란 대기줄
그 상태로 한 시간 반 정도를 대기했다.
어떤 정성으로 밥을 푸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짜증도 났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그야 한 끼에 2달러니까. 게다가 스트리트 푸드로는 이색적으로 미슐랭 스타까지 받았으니 그 음식의 품격 또한 느껴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찾아오면서 땀으로 수분을 다 쏟아버렸는지 목이 몹시 말랐다. 혼자 찾아온 나는 줄을 봐줄 사람도 없고 해서 미친 듯이 갈증을 느껴도 대기선만큼은 절대 벗어나지 않았다.
참고로 푸드코트에서는 물을 제공하지 않는다. 별도로 구입을 해야 한다는 사실.
한 시간 반 만에 밥을 받고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난 정말 중국 음식을 못 먹는다. 그 특유의 중간이라고는 없는 맛이 나와는 좀처럼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이 음식도 첫 한 입에 간장 + 중국의 맛이 확 와버려서 순간 이거 어쩌지 엎어버릴까, 싶기도 했었지만 놀라운 건 그런 고민을 잠깐 하는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릇의 바닥까지 싹싹 긁고 있는 나를 의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뭐랄까, 분명 보편적인 입맛을 건드리는 풍미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맛있었다! 까지는 아니었는데 맛깔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비위가 약한 나는 향이 강한 중국 음식 한 그릇 다 먹어본 기억이 없지만 이 음식은 어디까지나 예외로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러니까 스톨이 오픈하기 전부터 청소하고 밥을 안치고 닭을 굽고(?),
그 조막만 한 공간에 직원만(아마도 가족으로 보인다) 다섯 명이 넘었는데 여전히 요리를 진두지휘하는 분은 찬한멩 할아버지였다. 사실 그 프로페셔널한 자세야말로 한 그릇의 치킨 라이스보다 더 진하게 기억에 남아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