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와카야마 프롤로그
3박 4일 간 와카야마 여행(실은 출장)을 다녀왔다.
며칠 전 뭉쳐야 뜬다에서 와카야마 편이 방송되던데, 내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바로 그곳이 시간 차를 두고 화면을 타고 있는 걸 보니 이게 다 뭐라고 기분이 좋아지던지. 물론 끝까지 챙겨보지는 않았다. 이미 다녀온 곳이지만 어쩐지 그 장소를 즐기는 화면 속 또 다른 이들에게 금세 질투를 느끼게 될 것 같아서.
첫 날은 고야산에서
한 번의 여행을 하나의 글로 정리하는 것만큼이나 까다로운 일은 없다는 것. 뼈가 시리게 실감하는 요즘이다.
원고를 쓰면서도 이거이거 밑천이 다 드러나겠다며(만약 밑천이란 게 있다면) 며칠을 앓는 소리로 끙끙.
아무래도 글과 자존감이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나의 경우에는.
느낀 게 분명 하나 이상은 있었을 텐데 그걸 들여다보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고 할까.
생각을 찾아내어 글로 치환하는 것은 곱절로 어려운 일이었다. 많이 써본다고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크게 실망도 했더랬다.
이래저래 성장의 길은 아프기만 하구나.
스님이 동동동 따라주신 기린 맥주와 함께. 고야산 사찰 음식 쇼진요리.
템플 스테이는 처음이었는데
고야산 호온인 료칸에 머물며 이것저것 쓸어온 기억의 조각들이 몇 개 있다.
하나는 그 밤에 본 청명한 달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침 잠결에 들은 말간 종소리였으며,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의 시끄러움을 비낀 깨끗한 고요함이었다고 해야 하나.
성향 상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라
겉으로는 멍하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시간에 새로운 음악 하나를 더 채워 넣으려고 아둥바둥하는 게 나라는 인간이다. 그토록 떠내려가는 시간에 놓이는 걸 못 견뎌하는 내가 고야산에 머무는 동안에는 말끔하게, 정말 깔끔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번역 작업도 하다가 중단). 이불 위에 드러누워 천장만 바라보기도 했고 실내 히터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적어도 한 번은 글 걱정을 하긴 했다만 책임은 미안하지만 귀국 후의 나에게 미뤄두는 것으로.
아침에 본 머리맡의 가을 문양. 이런 이미지 하나하나가 와카야마를 이루는 커다란 기억의 틀이 됐다. / 여행에서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야식 시간. 게다가 단짠 조화까지 기가 막히게 챙겨 주셔서 감동도.
구마노규 스키야키 / 고야산 곤고부지
죽은 사람을 집어넣으니 다시 살아났더라는 그곳, 츠보유 온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기도 하다. 색감이 정말,
츠보유 온천이 있는 유노미네 마을에서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주민 어르신 몇 명을 제외하고는 우리 뿐이었던 기묘한 분위기의 마을.
자유 여행으로 왔더라면 몇 시간이고 머물다 갔을 그런 장소라고 해야 할까나.
냇가의 형태로 흐르는 미온의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흡족한 미소가 만면에 방긋.
그러니까 바다 건너 여행이라고 해서 대단한 경험 만이 추억을 구성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
유노미네 온천마을
나치의 폭포로 가는 길
나치의 폭포까지 가는 길은
산을 타야 했기 때문에 범상치 않은 일정이었던 것은 맞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나했던 건 더더욱 아니었고, 뭐랄까.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잡념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과정처럼 느꼈다고 할까.
그 길 위에서의 기억이 희미한 걸 보면 아무래도 비워낸 게 있기는 한 모양이다.
나치의 폭포
돌이켜보면 인연이 닿은 그 모든 여행지를 사랑하려고 했던 것 같다. 뭐, 의식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그렇게 필연적으로 흘러간 느낌.
훗날 아, 거기 좋았지. 라고 말할 수 있기를 스스로 바랐기 때문인지도.
두 번째 숙소 호텔 우라시마. 밤새 들려오던 태평양의 파도소리. 밤에는 사알짝 섬뜩하기도 했지만 아침에는 이 소리 덕분에 하루의 시작이 충만했다. 눈을 뜨자마자 파도소리를 듣는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지, 몸소 실감한 최초의 경험이기도 했으니까.
토레토레 시장
그런 의미에서 와카야마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한 건
두 번째 날 밤, 그때부터였다.
산단베키 동굴에서 소리 담기
순백의 시라하마 해변 / 센조지키의 절경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느끼는 오묘한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역시나, 다녀온 다음에야 또렷해졌다.
지금도 여행 중 몇가지 장면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재생해 보고는 하는데 그 인연이 다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
딱 내 입맛! 진하디 진한 카페 카게로우의 아메리카노 / 엔게츠도
엔게츠도를 찾은 날은 구름이 태양을 가려버린 그런 날씨라 석양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지금도 깊은 애석함으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이번 여행의 방점은 이곳이었다는 사실.
둑에 걸터 앉아 발 밑으로 아찔한 태평양의 바닷물을 느끼고 있을 때,
평소에 잘 듣지 않던 음악의 선율이 귓가에 자연스레 들려왔다. 엇, 이건 뭐지? 싶어 그 자리에서 노래를 찾아 들었는데.
여행과 어울리는 음악을 만나지 못해 감정 정리도 살짝 어질어질하던 참에 이 노래 하나로 정리가 싸악 끝. 얼마나 행복했는지.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순간이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
그야말로 음악과 여행을 하나로 수렴시켰던 완전한 기억 중 하나였으니까.
둑에서 본 발 밑의 풍경
와카야마 성
세 번째 날 밤은..
누가 뭐라고 하든 내게는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었는데 글쎄다.
호텔 1층에 있는 패밀리마트에서 그 밤에 마실 커피를 고르고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게 되었는데.
텅 비어 있던 거리의 이미지. 걷는 내내 움직이는 차 한 대를 보지 못했고, 지나가는 사람 또한 한 명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 도시에 살아 움직이는 건 단 두 사람 뿐이었던 그런 느낌.
흠, 이건 아무래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도 모르겠다. 언제쯤 깨어날테냐.
세 번째 호텔 다이와 로이넷 와카야마에서
11월은 이 여행의 기억을 손난로처럼 활용했다.
엔게츠도에서 찾은 음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눈을 한 번 질끈 감아,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 4일 간의 감정을 음미했다.
설렜던 지점에서는 다시 설레고, 웃었던 부분에서는 다시 한 번 기뻐하고. 사실 내가 여행 음악에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좋은데 말이지.
모미지다니 정원
한 번의 여행이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 삶이 변하고 사람이 바뀌는 그런 거창한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경험의 변화라고 해야 할지.
그러니까 나의 경우에는 그리웠던 감정들을 오랜만에 경험하고, 자존감도 살짝 높여 온 기회였던 것 같다.
이 작은 공간에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일일이 펼쳐놓을 수는 없지만, 다만 지금도 헷갈리는 건 이 감정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아직까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 마치 영화의 열린 결말처럼.
속히 지나가는 일상의 시간을 길게 늘여서 순간을 천천히 음미해보는 것.
새삼 와카야마에서 느낀 여행의 혜택이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