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인천공항에 이르게 되는 삶.
파도가 이쪽으로만 향해 있는 건지 잊을 만 하면 공항으로 쓸려와 있는 요런 인연(혹은 마음)이 다 절묘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무려 5개월 만에 인천공항을 다시 찾았다. 리무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출국장으로 들어오니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분주한 사람들이 여전했다. 다들 어디로 떠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난 오늘 도쿄로 간다.
타고 갈 비행기는 피치항공이다. 그것도 심야 비행으로.
솔직히 겁 난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하네다에 도착해서 첫 번째 숙소가 있는 히가시긴자까지 움직여야 하는 그 길과 시간이 까마득하다.
비행 출발 시간은 밤 10시 40분이었다.
뒤적뒤적 찾아보는 블로그마다 피치 못할 때 타는 게 피치항공이라는 멘트가 공식처럼 달라붙어 있길래, 설마 그렇게까지 개차반일까 싶었는데 이번엔 운이 따라준 모양이다. 다행히 연착으로 열 오르게 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갈 때는 아무 일이 없었는데 돌아올 때의 비행기에서는 인생 난기류를 만나게 되면서 썩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 이건 좀 심각한데? 싶을 정도로 흔들리면 어지간한 경우, 차분하고 명확한 방송이라도 해주지 않나. 피치항공은 같이 겁먹었다는 듯한 목소리와 알아듣기도 힘든 발음으로 중얼중얼 지지직거리다 끊기는 게 전부여서 그 새벽 비행기에서 잠도 못 자고 환장만 했었다.
바글바글. 누구라도 온 건가 목 빼고 쳐다보니 정형돈과 안정환이 서 있었다. 그들도 어디를 가는 모양. 떠나기 전 오프닝 토크를 하는 중인 듯했다. 발권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김성주 님도 합류해 있었다. 정형돈 님은 TV에서 볼 때와 머리카락 한 올까지 똑같아 화들짝.
와이파이 도시락
도쿄에서는 포켓 와이파이를 들고 다녔다.
유심도 잠깐 고민했으나, 어차피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더 편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티몬에서 와이드 모바일 와이파이 도시락 9일 예약 이용권을 21,600원에 구입해 두었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인천공항 1층으로 내려가 와이파이부터 픽업했다.
티몬에서 받은 카톡 문자 / 인천공항 1층에 7번 출구 옆에 있는 와이파이 도시락 센터. 여기서 예약 이름을 말하고 픽업 및 반납하면 된다.
뉴욕 여행에서는 포켓 와이파이 때문에 대단한 열불 수행을 했었는데(터질 때보다 안 터지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이번 도쿄 여행에서는 무척 만족스럽게 사용했다. 가까운 나라여서 그런지 안 터지는 경우가 한 번이 없었다. 뭐, 배터리가 살짝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인 셈 치고.
와이파이 도시락 / 충전기, 어댑터(고속 및 일반 충전용으로 USB를 꽂을 수 있는 포트가 2개나 있다.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심야 비행인데 또 설렌다고 공항에 6시 반쯤 도착해버려서 발권도 당장 하지 못했다.
(밤 10시 40분 비행에 카운터 오픈은 저녁 8시 10분쯤 한다) 출국장에서는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커피 앳 웍스로 올라와 커피만 들고 세월아 네월아.
한국문화거리에 있는 커피 앳 웍스.
이번 여행은 너무 금방 다가왔다.
두 달 전쯤, 그러니까 티켓을 구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무엇이라도 해놓지 않겠나, 싶었는데.
난 그렇게 여행을 다녀보고도 자신에 대해 과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봐야 할 영화가 아직도 수두룩 하다. 막상 도쿄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봐야 할 것조차 보지 못한 채 멍하니 시간만 보내다 돌아오면 어쩌나 울컥.
하, 아직 떠날 준비가 안됐는데 이걸 어쩌지.
게이트 오픈 전. 심야 비행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한낮처럼 많았다. 10시 40분 출발에 게이트 오픈은 10시 25분.
처음 이용하는 피치항공. 떠나기 전 연착에 대한 불만의 글을 많이 보았는데, 이날은 다행히 5분 정도 늦은 출발을 했던 것 같다. 좌석 간의 간격도 2, 3시간의 비행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굳이 갸우뚱했던 걸 하나 짚어보자면 방송을 너무 중얼중얼 거린다는 것 정도라고 할까. 기장이든 승무원이든 큰소리로 말해줘야 상황에 대한 파악을 할 텐데.
이륙 후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불을 꺼주더라.
그런데 여행의 설렘일까 걱정일까, 도통 잠이 오지가 않는 거다. 이럴 줄 알고 휴대폰에 이것저것 영화를 담아오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무것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 창밖만 하릴없이 내다보는 수밖에.
날개 밑으로 희끄무레 보이는 구름들이 순간 바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위를 바투 유영하고 있는 느낌. 아니, 그런데 왜 잠이 안 오는 거냐고.
떠나는 날 비가 내렸다. 창가 자리에 앉아 번쩍이는 날개와 그 주변의 희미한 밤 구름을 주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 밤 12시 45분쯤 하네다 공항 도착.
그동안 나리타는 가보았지만 하네다 공항은 처음이다.
사실 밤에 도착해서 공항을 구경할 정신은 없었다. 대신 도착하자마자 한 가지. 영화가 스치듯 떠올랐다는 것 정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 아키라는 동생 유키를 묻어주기 위해 아이를 담은 캐리어를 끌고 하네다 공항을 찾아온다. 평소 비행기를 보고 싶어 했던 동생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함이다.
여기가 바로 그 영화 속 공항이었다.
첫 번째 숙소를 고르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대부분 신주쿠나 시부야처럼 주요 명소 근처의 호텔을 잡는 것이 일반적인 선택인 듯 보였지만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찾고 있었기 때문에 새벽 시간 체크인이 가능한 곳을 고르는 일이 여간 어려운 점이 아니었다. 그렇게 검색에 물 쓰듯 시간을 들이부은 다음에야 어렵게 선택한 곳이 히가시긴자역 부근의 더 프라임 팟 긴자다.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새벽 3시에도 받아주는 넉넉한 체크인 시간 때문.
체크인 시작 시간: 04:00 PM
체크인 마감시간: 03:00 AM
체크아웃 마감시간: 10:00 AM
하네다 공항 심야 리무진 버스 티켓 구입하는 곳. 입국장 방향으로 나와 BUS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티켓 구입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방향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그래도 모르겠다 싶으면 사람들이 쏠려서 나가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나가면 된다.
더 프라임 팟 긴자 숙소가 히가시긴자 역 가까이에 있어서 직원에게 먼저 히가시긴자까지 가는 버스를 물었다.
그런데 긴자행 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별 수 없이 그 표를 구입해야 했다. 출발도 새벽 2시란다. 이러다 히가시긴자 역에는 새벽 3시 즈음에 도착하는 건 아닌지 순간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심야 리무진 긴자행 버스. 새벽 2시에도 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서울도 비가 내리더니 도쿄도 비가 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비 내리는 도쿄는 처음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이 비가 곧 서막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그곳에 머무는 9일 중에서 7일은 늘 비와 함께였기 때문에.
다행히 30분 만에 긴자역에 도착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건 긴자역에서 히가시긴자 역까지 걸어가는 그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여자 혼자 걷기에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말이지. 그런데 상상으로만 그려 본 어두운 거리의 위치에, 현실에는 빗물에 닦인 말끔하고 밝은 도로가 놓여 있었다. 조금은 긴장이 누그러진다.
긴자역에서 내리자마자 그 앞에 택시가 줄지어 서 있는 스탠드로 다가갔다.
가장 첫 번째 줄의 택시 기사님께 더 프라임 팟 긴자라는 숙소를 가려고 한다고, 히가시긴자 역까지 나를 데려다 달라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대단히 친절하게도 이 거리면 택시를 탈 필요가 없으니 걸어가는 게 좋겠다고 말을 한다. 지도를 가리키며 길까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새벽의 말끔한 긴자 거리. 어느 어스름한 골목과 밤길을 상상하며 걱정했지만 실상 두려움에 가까운 위험은 느끼지 못했다. 그 새벽에도 차가 많이 다닐 뿐만 아니라, 길도 워낙 밝다.
긴자에서 히가시긴자까지 10분 정도 걸었을까?
새벽 2시 40분쯤.
드디어 첫 번째 숙소, 더 프라임 팟 긴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