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야마 여행기
지난 홍콩 여행 이후로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인천공항.
심야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귀국하던 날 밤만 하더라도 올해 여행은 여기까지 일 듯, 이라며 스스로 선을 그어버린 채 안타까운 마음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삶의 본성인지도. 그리고 성숙이라는 표현은 이것을 무던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어울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영화 인디에어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라서 멈칫. 조지 클루니가 공항에서 한참을 올려다보며 나래이션이 쫘악 깔리던 바로 그 장면. 이 영화, 결코 뻔하지 않은 결말이라서 좋았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저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또 다른 사람의 것에 맞출 필요가 없다고. 그런 흔한 위로를 흔하지 않은 결말로 전해준 특별한 영화.
이번 여행에서 동행하게 될 분들과 출국장에서 잠시 모여서 자료까지 건네받은 다음
간사이 공항에서 다시 모이기로 하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
집에서 가져온 노브랜드 콜드브루 / 출국 수속까지 마치고 면세 코너를 돌아다니는데 루이비통 모델로 레아 세이두가 떡하니. 한때(어쩌면 지금도?) 가장 좋아하던 여배우다. 그녀가 나온 모든 잡지를 모은 시절이 있었다. 막내 때는 회사에서 컬러 프린트로 화보를 한 뭉치 뽑다가 다음 날 걸려버려서 혼난 기억도. 힉. 물론 지금은 그 정도의 앞뒤 가리지 않는 행동쯤이야 얼마든지 자제할 수 있을 만큼(만) 그녀를 좋아한다.
여행을 몇 번째 다니는 건데.. 싶지만 사실 그 목적지에 가서 여행하고 돌아오기까지. 이 세 가지의 행동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보아도 좋다. 분명 경험한 적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행만 마치면 몇몇 세세한 정보들을 기억에서 선별하여 삭제하는 모양인지. 비행기에 커피를 들고 탈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듯이 굴었다니까.
목적지가 어디든 대한항공만 타면 항상 틀어 놓는 것이 프렌즈다. 불안할 때 꼭 챙겨 보는 시트콤. 이제는 정신적인 가족 혹은 친구라고 해도 좋을 정도. 여행을 갈 때 항상 한 시즌을 골라서 휴대폰에 담아 간다. 그리고 씻을 때와 같은 공백의 시간에 틀어 놓고는 한다. 그럼 마음이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진다. 아무래도 이 시트콤과의 추억이 기억이 미칠 수 있는 끝부분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시간 20분 정도 비행 후
간사이 공항에 무사히 도착. 이 공항을 밟은 최근이 언제였더라, 2015년 12월의 일이었던 것 같다. 늦가을 교토를 여행할 때였지 아마?
그때를 추억하려고 하니 마음이 또 울렁울렁 꿀렁꿀렁.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려고 하면 그게 좋은 기억이든 그렇지 않은 기억이든 항상 마음에 멀미가 인다. 이 감정이 뭔지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은 있는데 아직은 표현해낼 수 있을 만큼 글이 무르익지가 않아서 이번에도 다음으로 미룬다. 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