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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루 Nov 08. 2019

대만 일주 중입니다

Taiwan #1 Kaohsiung

아마도 실시간 여행기.


그 경험으로부터 평균 반나절 이후에 남기는 글이니 기억과 감정의 생생함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써온 그 어떠한 여행기보다도 왜곡 덜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가오슝의 한 스타벅스.

이직을 하고 정식 발령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당분간은 어려울지도 모를 장기 여행을 떠나왔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유럽을 생각했다가, 아냐. 차라리 경비를 쪼개서 마련하고 싶었던 카메라 하나를 사자, 해서 그 예산은 다시 절반으로 쪼개졌고, 남은 돈으로 아시아는 갈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저곳을 고민해보다가 결국 대만이 최종 목적지 되었다.

사실 이왕이면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고 싶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주는 해본 경험이 있어서 베트남 태국 일주는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발령 전에 얼굴이 타는 건 싫다는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로 탈락.


기존에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고는 싶고 예산의 한계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기준에 들어맞 곳 익숙한 대만이었다. 타이베이와 타이중은 가봤, 이번으로 세 번째 대만 여행이. 가오슝에서 타이중, 타이베이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총 11일 동안 일주를 해볼 계획이다.

가오슝에는 이틀 전에 도착했다.

건기라 비 한번 내리지 않는 맑은 하늘이지만 자외선이 유난히 강해 반나절만 걸어도 얼굴이 타는 느낌이 드는 그런 날씨다.


사람들은 이 더위에 긴팔에 선글라스 끼고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아마도 이런 날씨에 피부를 보호하는 나름의 생활 지혜이리라.

사실 다른 데를 선택할걸.

후회도 했다. 지금도 장소 선택의 아쉬움이 없다고는 못한다. 다른 곳은 아니고, 다만 유럽에 대한 아쉬움 정도랄까. 

익숙함 때문일 거다. 이거, 경험한 적 있는 것 같아. 라며 움찔움찔 유사 기억이 떠오르는 느낌 차마 모르는 척하지를 못한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서 나의 숙제는,

그 모든 느낌을 받아들이고 대만을 있는 그대로 누리는 것이다. 내 삶과 경험이 좋든 좋지 않든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연습. 아직까지는 아무 맛이 없는 미지근한 물과 같지만 그 끝맛은 달지 혹시 아랴.


대만에서의 첫 기억은 엄마와의 타이베이 여행이었다. 두 번째는 잡지 취재차 방문한 타이중 여행. 그리고 세 번째인 지금은 혼자서 대만 일주. 과거는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간이 기억을 윤색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마 지금의 여행 또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것다. 그러니 나는 현실을 즐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번 여행이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전에는 한없이 좋았던 경험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행에 대한 열정이 조금은 식어버린 걸까, 새로움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버린 걸까. 내 자신이 심드렁한 상태에 잠시 시무룩했지만 이곳에서 종일 할 수 있는 게 사진 연습과 생각뿐인지라, 내내 걸으며 그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보니 문득 한 가지 결론은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좋았던 게 싫어진다면 싫었던 게 좋아질 수도 있겠, 라는 것. 그냥 유연하게 받아들이자. 이제 그걸 연습할 필요가 있다.

무얼 하든 익숙함이 느껴지는 이곳 대만에서 그 나름의 즐거움과 새로운 취향을 찾아볼 생각이다. 별난 커피도 마셔보고, 안 먹던 음식도 먹어보고, 안 가던 가게에도 들러보고.


지금의 대만일주도 실시간으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이것도 처음해보는 시도이니 추후에 어떤 경험으로 남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도 다 해보는 거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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