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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리 Oct 09. 2021

코로나의 중심에서 육아를 외치다

 코로나 베이비의 돌잡이


     <잠잠이의 돌잔치에 초대합니다.>
초대받으신 여러분은 멋지게 차려입을 필요도, 선물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빈 손으로 오시면 됩니다. 바쁜 일이 생겨 돌잔치에 오시지 못할 거 같다고요? 암요, 암요, 이해하고 말고요! 잠잠이의 돌잡이가 궁금하거들랑 나중에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하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돌잔치 장소가 어디냐고요? 여러분이 앉은 바로 그 자리! 침대 위, 화장실 안, 공원, 지하철 안, 와이파이만 터진다면 어디서든 돌잔치에 참여하실 수 있어요. 코로나19 락다운(lockdown) 사태를 고려한 신 개념 '인스타그램 라이브 돌잔치'를 열었거든요!



    약 세 달에 걸친 락다운이 다음 주면 드디어 끝이 난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코로나 백신 2차 접종률이 70%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락다운 제한도 이번 주가 마지막이다. 집에서 반경 5km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도, 산책이나 야외 활동은 한 시간만 허용 가능한 것도, 한 가정 당 한 명만 장을 보러 갈 수 있는 것도 이젠 끝이다. 물론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에 한에서 말이다.


    애초 한 달만 시행될 거라던 락다운은 두 달이 되고, 세 달이 되었다. 잠잠이의 돌잔치를 열 수 있을까, 없을까 맘 졸이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돌잔치는 잘 치렀다. 우리 집 부엌 식탁 위에서 말이다. 시야가 탁 트인 드넓은 공원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하고 파란 풍선과 종이비행기를 나무에 매달아 꾸미려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한식 업체는 어디가 좋다던데, 호주 가족들이 먹을만한 한식은 뭐가 있을까, 돌잡이는 영어로 해야 하나'하는 등의 돌준맘(돌을 준비하는 엄마)이 응당 해야 할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대신 한국식 돌상을 대여하고, 서양 문화인 케이크 스매싱을 위해 케이크를 주문 제작했다. 삼각대 위에 휴대폰을 고정하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켰다. 돌잔치에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면 장소 협찬, 포토그래퍼, 하객 맞이, 테이블 세팅, 사회자, 헤어 메이크업 외에도 모든 스태프 목록이 나와 남편의 이름으로 도배될 것이다. 어쩐지 씁쓸한 뒷 맛이 돌지만 휴대폰 두둑이 돌잔치 영상과 사진을 남겼으니 됐다. 이게 다 코로나 베이비의 운명인 거겠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 중 태어난 '코로나 베이비.' 잠잠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그즈음이다. 시드니에서는 코로나의 존재를 마치 바다 건너 다른 나라만의 일인 양 여겼지만 얼마 못 가 시드니에도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졌다. 시드니가 속해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에는 '락다운'이 시행됐고, 산책, 운동, 쇼핑, 출퇴근과 같은 활동에 제한이 생겼다. 이러한 제한은 외식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고, 나는 내가 일하던 카페에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됐다. 하루 한 시간 내로 산책이나 야외 운동은 가능했지만 어느 임산부가 맘 편히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을까. 당시에는 거리를 나가면 마스크를 쓴 사람보다 안 쓴 사람이 훨씬 많았을 때였다. 임신하면 좋은 것도 많이 보고, 좋은 데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던데. 태교 여행은커녕 택배 찾으러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였으니 코로나 베이비의 인생은 시작부터 참 예측불가다.


    코로나 베이비의 육아 역시 쉽지 않다. 코로나 베이비의 IQ가 일반 아기들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한창 많은 걸 보고 배울 시기에 한정적인 장소에서 한정된 사람들만 마주하고 매일 똑같은 놀이를 반복하니 예견된 결과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져 말을 배우는 속도도 더뎌졌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락다운까지 겹쳐 집 근처 공원 나가는 것도 특별한 이벤트가 되고 말았으니. 촉감놀이니 소근육, 대근육 발달 놀이니 뭐니 해서 놀이 생각하느라 골머리도 앓고, 육체적 정신적 체력도 진작에 방전됐다.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산이니 들이니 돌아다니며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이 시기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조차 아직 잠잠이 한 번 안아보지 못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나저나 잠잠이는 명주실을 잡았다. 재미로 두 번 더 진행한 돌잡이에선 각각 축구 공과 엽전을 잡았다. 더러는 '에계? 고작 명주실?'이라며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일단 오래 살고 봐야 운동선수가 되든 부를 누리든 뭘 하든 하겠지. 코로나 시대에 장수보다 좋은 게 또 어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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